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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개정 논란 유감



  학교문법이라는 단어가 있다. 원래 학술적인 의미에서 '문법'이란 다양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의 방식을 분석하고 기술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학교문법'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장차 자라나야할 청소년들에게 규범적인 말하기 방식을 설정하여 가르치도록 만든 텍스트이다.

이런 학교문법은 '국정' 교과서에서만 배울 수 있으며 본질적으로 '다양성'보다는 '획일성'을 담고 있다.

교과서는 근대 민족국가가 공인한 이데올로기 장치이다.

교과서는 한 국가 혹은 사회가 획일적으로 정한 하나의 기준을 강요하며, 따라서 사회 재생산의 가장 결정적 도구가 된다. 소위 교과서 편찬에 관여하는 식자층들은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민주사회의 교과서 편찬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공정성'과 '객관성'이다.

그러나 과거 국정교과서만 존재하던 시절에는 단 하나의 텍스트에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기가 무척 곤란했다.

오히려 위정자의 입맞에 맞게 '왜곡'되거나 '개작'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지금 중고생들의 필독시나 다름없는 김수영의 시나 황지우의 시가 한 때는 교과서에 실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시대가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인문계 과목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특히 '사관'에 따라 기술 자체가 달라지는 '국사' 과목은 언제나
주목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교육과정 개편으로 기존의 국사 과목에서 '근현대사'가 분리되어 나왔을 때 김대중 정부 이후의 편향된
시각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런 편향을 시정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바로 다양한 교과서의 도입과 학교의 자율적 선택이다.

자격있는 몇몇 출판사에서 교과서를 편찬하고 이를 국가에서 검토하여 인증하는 방식이다.

즉 학교의 재량에 따라 소위 '우편향' 교과서든 '좌편향' 교과서든(실제 이렇게 편향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지만) 선택하여 가르칠 수 있는 셈이다.

문제는 최근 일어나고 있는 교과서 개편 논란이 바로 특정 출판사의 교과서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정권이 바뀌니 과거 독재시절의 향수에 젖은 분들이 한소리 좀 내시려는 모양이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하시더니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인 '다양성'마저 싹을 도려내려
하고 있다.

학계에서 특별히 문제조차 삼지않는 멀쩡한 역사 교과서를 갑자기 극우 편향으로 바꾸라고 난리법석이다.

국방부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요청을 받고 25개항의 교과서 개정의견을 냈다.

통일부는 ‘햇볕정책’이라는 용어를 ‘화해협력정책’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한나라당과 뉴라이트 단체들은 극우 입맛에 맞게 교과서를 뜯어고치려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국방부의 요구는 압권이다.

"교과서의 '전두환 정부는 권력을 동원한 강압정치를 했다'는 서술 내용을 '전두환 정부는 친북적 좌파의

활동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내용으로 수정해야 한다.

제주 4·3사건을 당초 '좌익세력의 반란'으로 표기해 달라."고 한다.

민주화에 동참한 대다수 국민들을 친북좌파로 만들어 버리고, 제주에서 죽어간 3만여 명의 죄없는 목숨을
좌익세력으로 단정지어 버린다.

편향된 것으로 따지자면 이만큼 편향적인 표현도 없다.

  그래 어차피 수구세력들이 이야기하는 소위 '좌파'들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만든 극우 편향의 교과서를

배웠음에도 군사독재에 저항했다.

그리고 수구세력이 말하는 소위 좌편향 교과서로 배웠던 학생들이 청년이 되어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다.

결국 지금의 교과서와 관련된 논란을 일으키는 인물들은 바로 학생들이 아니라 그들을 가르치고 훈계하려는
오만한 어른들이다.

이번 논란의 핵심이 진정 가르쳐야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아니라,

지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한 못된어른들의 고질병이 도진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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