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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30 18:12

느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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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병술년 새해가 밝았다. 늘 언제나 그렇게 느껴지듯 말많고 탈많던 지난 한 해
는 그렇게 31일의 마지막 햇살과 함께 기억으로 침잠해갔고, 우리는 또 새로운 달력을
벽에 걸어야 했다. 비록 새해를 맞은 우리의 발걸음은 여전히 무겁고 답답할 지라도
말이다. 더군다나 올해는 가칭 ‘한영 상호 방문의 해’가 아닌가. 국가와 국가, 사회
와 개인이라는 단절된 고리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야 한다.
‘바다 건너’라는 포립된 공간 속에서도 모두들 그렇게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는가?
비록 감정의 골이 패이고 먼지가 일더라도 결국은 사람내 풀풀 풍기며 마주 보아야 하
는 그런 공간이기 때문에 말이다.
지난 한 해의 마지막은 국내에서나 국외에서나 끝마무리가 그리 살갑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의 충격은 쉽사리 정리될 것 같지가 않다. 그
의 연구가 잘 되어 난치병 환자들의 소원을 풀 실마리를 제공하고 생명공학의 선두 주
자로 국가적 위상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소원했다. 하지만 그 기대와 소
망은 일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그로 인해 국민들의 마음에 큰 생채기를 남겼다. 부끄
러운 일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목적지상주의가 너무 팽배되어 있다. 21세기는 생명공학의 시대이기
도 하다. 이 영역의 성공 여부에 따라 미래사회의 국가간 주도권이 달려있다 해도 과
언이 아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괄목할만한 연구성과와 선점이 필요했고 피말리는
시간 싸움을 하였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성급함은 위험한 유혹의 손짓에 굴복하였고
, 그 결과 하루 아침에 국민적 영웅이 날개가 꺾인 채 추락하고 말았다. 성급하게 앞
서가려다 오히려 발목이 잡혔다. 동족방뇨(凍足放尿)격이 되어버린 셈이다.
황교수 사건은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주고 있다. 그래서일까. 조선의 대표적인 의주
거상(巨商) 임상옥(林尙沃)이 죽기 직전 남긴 경구가 유달리 생각나는 것은 어떤 연
유일까. 그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면서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고 하였다. 사람은 물처럼 항
상 수평을 유지하고 저울과 같이 올바른 평상심이 있어야 하는데, 재물을 독점하려는
어리석은 재산가나 정직하지 못한 재산가는 언젠가는 그 재물로 인해 파멸을 맞게 된
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남긴 말에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
다.
이 뿐만 아니라 최근 우리는 해외 동포 사회에 불어닥친 일련의 사건들로 자성의 시간
을 가질 기회를 가졌다. 단순히 패거리 다툼으로 치부할 수 없는 어느 정도 사회의 변
화와 구조적인 추이를 반영한 문제였기에 더욱 우리는 치열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 모두의 문제요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다. 서로 너무들 말만
앞서 나갔으며 이를 완화할 시스템도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벌써 잊혀져 가는 지는
모르겠지만 ‘달튼’ 사건 덕분에 해외 거주 한인 공동체의 이해관계를 보장하는 시스
템이 절실히 필요함을 그 어느 해보다도 절실히 느낀 한 해였다. 언론, 한인회, 그리
고 바로 지근에 살아가는 이웃들 간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며 원활한 의사소통을 보장할
장치들에 대한 논의가 올 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한인회가 점점 발전
해 감에 따라 그 성격도 명확히 규정되어야 하며 이에 따른 시스템과 정관의 보완 및
수정 작업도 이루어 져야 함은 물론이다. 동시에 천공의 성처럼 붕떠있는 기구가 아니
라 개개인의 삶의 치열한 공간 속에 파고들어야만 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데 너무 우리는 성급했었다. 그렇기에 우리를 되돌아 볼 시
간이 부족했고 시간이 걸리고 진지한 성찰과 합리적 판단이 필요한 일은 뒤로 미루기
일쑤였다. 한인사회에 오랫동안 내재된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더는 뒤로 미룰
수가 없게 되었다.
우리 사회가 좀더 진지해지고 성숙해져야 한다. 그러나 소용돌이치는 시대적 탁류와
경쟁사회에서 오히려 여유를 갖고 한 박자 느림의 자세는 가질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말을 잘하고 겉이 화려한 사람이 우선시되는 잘못된 인식이 너무나 확산되어 있다. 정
치도 모든 문제를 대화로 풀어나가며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상생의 정치가 펼쳐
져야 한다. 수년 동안 침체된 국민경제의 회복을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
현시점에서 국내외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가 척결되고 정의로운 사회가 절실히 요구
된다. 부정적 요소는 단절되고 정화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좀더 수준높은 도덕성을
확립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쌓았다할지라도 도덕성이 결여되었다면 치명타
를 입을 수 밖에 없다. 도덕성은 진실과 성실을 수반한다. 이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
지 않는다. 기성세대는 물론 자라나는 차세대에게 목표제일주의보다 참다운 인간 생활
을 위한 인간성 강화 재교육 과정이 필요하다. 선진 시민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정신적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눈부시게 발달할지라도 이는 우리
사회가 더불어 살아가는 밑거름이요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정말 새해에는 한 박자 느
림의 자세로 우리 사회가 활기차고 살맛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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