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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2008.05.12 20:57
방송작가, 플로리스트, 그리고 꿈꾸는 젊음의 이야기 – 라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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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기에, 그리고 그로 인해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 살아 숨 쉴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10년이나 되는 방송작가의 경력을 뒤로 하고, 또 다른 세계에서, 또 다른 꿈을 꾸는 아름다운 젊음의 이야기를 들려줄 라인남 씨를 만나보았다. 라인남 - 대학에서 경영학 전공 - SBS 방송 아카데미 수료 - 1998년 SBS ‘클릭 꾸러기천국’으로 방송작가 데뷔 - SBS ‘한선교 정은아의 좋은 아침’, ‘특집 콘서트’ - KBS ‘감성매거진 행복한 오후’, ‘남희석 최은경의 여유만만’ - MBN(매일경제TV), 채널V(음악 전문 채널) 등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 - 현재 런던 McQueens Flower School 플로리스트 과정 수료 후 인턴 중 한인신문: 오늘 이렇게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방송작가의 이야기, 그리고 또 다른 도전을 하는 젊음의 이야기를 통해 좋은 이야기 나누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라인남: 네, 제게도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는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인신문: 많이 알려진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신, 10년 경력의 방송작가 출신이신데 처음에는 어떤 경로로, 또 어떤 동기로 방송작가가 되셨는지요? 라인남: 어렸을 때부터 방송에 호기심이 많았고, 특히 당시에는 라디오가 상당한 인기가 있었던 터라 일찍부터 라디오 PD를 꿈꿨습니다. 물론, 대학에서 전공은 방송과 전혀 상관없는 경영학을 전공했지만요. 방송에 대한 꿈을 간직해오던 중 아무래도 아무런 배경이나 연고 없이 PD가 되기는 어려운 것 같고, 그러다가 방송에서 제가 그나마 바로 참여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작가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대학 4학년 2학기 무렵 방송 아카데미를 수료하면서 아는 선배 언니와 함께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작가 데뷔를 했습니다. 한인신문: 방송작가하면 딱 떠오르는 게 글을 잘 써야 할 것 같은데, 글 쓰기를 원해 잘 하셨는지, 또 좋아하셨는지요? 라인남: 아무래도 글 쓰는 걸 좋아했다기 보다는 방송 자체를 좋아했다고 볼 수 있겠죠. 저는 개인적인 성취감 때문에라도 일을 하면서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었는데, 사실 워낙 최고들이 모여있는 곳이다보니 제가 글 쓰기에 그렇게 재능이 있다고는 못느꼈습니다. 그런데, 사실 많은 분들이 방송작가 하면 글 쓰는 사람으로만 알고 계시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글 쓰기는 방송작가 업무의 한 부분일 뿐, 전부라고 할 수 없습니다. 글 쓰기와 방송은 참 다르거든요. 방송작가는 글 쓰기는 물론, 관련자 섭외 등 방송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업무를 담당해야 한답니다. 따라서 방송작가를 마치 소설가처럼 단지 글 쓰기만을 하는 직업으로 볼 수는 없겠지요. 한인신문: 10년이라는,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방송작가 일을 해오셨는데, 특별히 좋았던 점이 있었다면? 라인남: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겠지만, 일을 하면서 발견한 것은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일에도 저마다의 노하우가 있으며, 또 그 내면에는 언제나 치열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방송작가의 세계 역시 마찬가지였죠. 방송작가를 하면서 좋았던 점은 일의 특성 상 아무래도 또래에 비해 다양한,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일반인부터 연예인, CEO, 장관에 이르기까지 참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훌륭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을 좀 더 돌아보고, 가꾸어 나갈 수 있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한인신문: 그렇다면 단점은 어떤 것이었나요? 라인남: 이렇게 말씀드려도 될 지 모르겠지만, 저는 방송작가가 마치 3D 직업의 하나로 봐도 될 만큼 고단한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 편의 방송, 비록 그 분량은 짧을 지라도, 또 모든 요소들이 제대로 갖춰진 방송을 정해진 시간까지 완성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한답니다. 당연히 고단한 체력싸움을 수반하며, 대부분의 경우 주말이나 자기 시간을 갖기가 참 어려운 직업입니다. 마감의 공포, 정말 맛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한인신문: 방송장가를 하시면서 만났던 가장 인상 깊었던 한 사람을 꼽으라면? 라인남: 사실, 그 동안 연예인들도 많이 봐왔지만 가장 인상에 남는 분은 MBN 매일경제 프로그램 시절에 만났던 김석동, 당시 재정경제부 차관보입니다. 높은 지위에 참 많은 것을 갖춘, 훌륭하고 뛰어난 분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겸손하시고 바른 인격을 지닌 분이셨기에 참 인상깊었습니다. 그 분 외에도 여러 CEO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운영하는 사업체의 규모를 떠나서 확실히 CEO분들은 다른 사람과는 다른 아우라를 지니고 있었고, 저마다 배울 점들이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한인신문: 방송작가로서 저지른 가장 큰 실수가 있다면? 라인남: 실제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정말 아찔했던 순간이 있었는데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 한참 유행하던 시절, 당시 파티쉐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가 올라갔었죠. 그래서, 실제 파티쉐을 초청해 출연시키는 프로를 기획했는데, 섭외하시는 분의 실수로 출연자분이 방송일을 일주일이나 뒤로 착각하고 계셨던 거죠. 바로 다음날이 방송인데, 출연하시기로 한 파티쉐분이 출연을 못하시게 되고, 정말 눈 앞이 깜깜하더군요. 정말 하늘의 도우심으로 제가 아는 지인 가운데 마침 파티쉐분이 계셔서 무사히 방송을 마칠 수 있었답니다. 한인신문: 그러다가 방송작가 일을 그만두게 되신 이유는? 라인남: 제가 방송작가 일을 1998년부터 2007년까지 했는데, 정말 어느 순간부터 글 쓰는 일이, 방송 일이 싫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10년 가량 되는 긴 시간을 너무 앞만 보며 마치 경주마처럼 달려왔던 게 탈이 난거죠. 댐이 있으면 적당 물을 흘려 보내주면서 수위를 조절해야 하는데, 그걸 꾹꾹 채우기만 하면 언젠가는 탈이 나서 넘쳐 흐르는 것처럼, 저 역시 재충전이 너무 없었던 거죠. 그러면서도 좋은 프로를 하게 되거나 몸값이 올라가면 또 그렇게 끌려가고, 고민하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방송 일을 하다보니 어느새 겉으로 보여지는 이미지에만 치중하게 되고, 때로는 가식적이게도 되고, 그렇게 연출된 생활이 제 천성, 그러니까 적성과는 또 다른, 천성과 안맞는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인신문: 그러다가 꽃에는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라인남: 참 고민을 많이했습니다. 대부분의 젊은 여성들이 29세 즈음부터는 일을 하다가도 결혼으로 방향이 맞춰지는데, 그것도 무조건 계획대로만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가 31세 때 유럽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유럽 사람들이 꽃을 참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저거 배워보면 어떨까 해서 한국에서 잠시 취미로 배우던 중, 아예 외국에 나가서 본격적으로 배워보자 해서, 또 평소 외국 생활도 하고 싶었고, 그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제게 안식년과 갚은 휴식을 주고 싶어서 평소 관심이 많았던 런던에 플로리스트 공부를 하러 오게 되었습니다. 한인신문: 개인적으로 플로리스트는 어떤 것 같으신지? 라인남: 플로리스트의 일이 결코 쉽다거나 단순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정말 다양하고 깊이있는, 말 그대로 공부를 통해 만들어지는 방송에 비하면 스트레스는 덜한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 제가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어쨌든, 제게는 정말 새로운 도전인 만큼, 너무나 재미있고, 또 만족하고 있습니다. 한인신문: 젊은 세대들에게 방송작가가 상당히 선망되는 직업 가운데 하나인데, 방송작가 지망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라인남: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언제나 화려함이 큰 일일 수록 그 뒤에 숨겨진 고통과 인내의 과정 또한 크다는 것을 반드시 직시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저 웃고 즐기는 1시간 짜리 방송일지라도, 그 방송을 만들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주일씩 밤을 세우기도 하는 게 방송 일입니다. 소수를 제외하고는 금전적인 보상도 그리 크다고 할 수 없고요. 따라서, 정말 이 일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각오, 진정 본인이 뜻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허황되게 뛰어들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 본인의 적성과 천성에 맞는다면, 방송을 통한 성취감을 맛보길 원한다면, 그리고 노력과 인내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다면, 젊은이로서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한 일이라는 얘기도 하고 싶습니다. 한인신문: 마지막으로 라인남 씨의 꿈은? 라인남: 저는 지금 이렇게 꽃을 배우면서도, 이것을 통해 유명해 진다거나 큰 돈을 번다는, 대단한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실, 방송 일은 평생토록 하기가 어려운 일이었는데, 저는 제가 할머니가 되어서도 꽃을 통해 자식이나 손주들에게 일하는 모습, 변함없는 열정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런 게 참 소중할 것 같아요. 때로는 무모해 보이고, 때로는 실익이 없어 보이는 일들이 실제로는 무엇보다 가치가 있는, 소중한 일일 때까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실, 저도 어렸을 때는 명품가방 하나 장만하는 게 참 행복했는데, 지금은 여권에 도장 하나 더 찍히는 게 너무나 행복하네요. 아무쪼록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고, 언제나 꿈과 열정으로 아름다운, 그런 젊은이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인신문: 오늘 좋은 얘기 들려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멋진 젊음을 변함없이 잘 가꾸어 나가시길 응원합니다. 한인신문 전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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