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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저널: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너무나 반갑습니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기자일 외에 음악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세계적인 음악인을 직접 뵙게 되어서 너무나 영광입니다. 특히, 최근 한국 뮤지션 유니의 음반작업을 주관하신 바, 한국인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오늘 흥미롭고도 유익한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먼저 음악인으로 성장할 수 밖에 없었던 가정환경과 어린시절에 대한 얘기부터 들려주세요.

리차드 나일스 (이하 리차드): 네, 저 역시 유니와의 작업을 통해 한국에 깊은 관심과 호감을 갖고 있던 차에 이렇게 인사드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너무나 반갑습니다. 제 어린 시절부터 얘기해 보죠. 아버지 토니 로마노는 가수이자 기타리스트, 그리고 작곡가였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프랑크 시나트라, 빙 크로스비 같은 당대 최고의 가수들과 작업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늘 저희 집을 방문한 위대한 음악가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과 친숙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죠. 아버지 자신이 정규 음악 교육을 받은 음악학도가 아니었기에 저 역시 별도의 레슨을 받거나 하는 형식적인 교육을 받지는 앖았습니다만, 그 속에서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듣고 이해하는 법을 자연스레 익혔습니다. 어머니 팻 실버 라스키 역시 여배우이자 극작가였고, 이후 새아버지가 된 제시 라스키 2세 역시 유명한 ‘십계’, ‘삼손과 데릴라’와 같은 영화들을 집필한 극작가였습니다. 이렇게 예술가들로 둘러쌓인 환경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저 역시 음악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유로저널: 세계적인 편곡자이자 음반 프로듀서(제작자)로 활발한 활동을 하셨는데요.

리차드: 70년대 후반 미국에서 버클리 음대를 졸업하고서 런던에 정착하려 왔을 때만 해도 원래는 작곡가가 되고 싶었는데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편곡을 요청하더군요. 제가 지닌 음악적인 감각으로 자신들의 음악을 보다 나은 음악으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제게 돈까지 지불하면서요. 당연히 저는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나아가서 제가 편곡하길 원한다면 제가 제작까지도 직접 하게 해달라고 그들에게 제안했습니다. 제가 편곡한 좋은 음악이 다른 제작자의 작업으로 인해 별로인 결과물로 나오는 게 싫었거든요.

유로저널: 그 동안 폴 매카트니, 레이 찰스, 제임스 브라운, 티나 터너, 머라이어 캐리와 같은 팝 가수들, 그리고, 팻 매스니, 밥 제임스와 같은 재즈 뮤지션들, 심지어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도 음악 작업을 같이 하는 등 그야말로 세계적인 음악인들과 함께 했습니다.

리차드: 네, 정말 감사하게도 훌륭한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할 기회가 제게 주어져 왔습니다. 그들과의 작업을 통해 저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지요. 사람들은 제게 항상 폴 매카트니와의 경험에 대해 많이 물어보더군요. 제가 이전에 작업한 성공적인 음반으로 인해 소개를 받은 폴이 제게 먼저 연락을 해서 프로젝트를 제안했습니다. 아직 발표된 적이 없는 20곡의 노래들을 오나성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만났는데 제게 그의 바로 직전 음반에 대한 평을 묻더군요. 그런데, 솔직히 저는 그 음반이 별로였고, 그래서 솔직하게 그 음반은 실험적이었을 뿐, 당신의 음반으로는 최고의 작품은 아니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폴이 하는 말이 사람들은 늘 자신한테 ‘잘한다, 좋다, 최고다’와 같은 칭찬만 늘어놓는데 진실을 얘기해줘서 제게 고맙다고 하더군요. 그와 작업을 하던 중 지금은 세상을 떠난 당시 그의 아내 린다 매카트니에게 선물로 레코드판을 만들어서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이미 CD 시대였는데도요. 저한테 그 부탁을 한 게 목요일밤이었는데 다음 주 월요일에 바로 녹음을 원하더군요. 상당한 작업을 거쳐야 하는 일인데, 폴은 정말 느긋하더군요. 제 아이디어와 계획을 들어보고 상의하자고 했는데도 저보고 알아서 하라고 하면서 자기는 이제 퇴근(?)해야겠다고 가버렸습니다. 저는 월요일 아침까지 한 잠도 못자고 작업을 했고, 월요일 오전에 폴은 자신의 파트만 녹음하고서 나머지 작업은 역시 저보고 알아서 하라고 하면서 자기는 이제 퇴근해야겠다고 또 가버리더군요. (웃음) 여기서 위대한 음악가와 아직 부족한 음악가의 차이가 있습니다. 위대한 음악가는 늘 느긋하고 함께 작업하는 사람을 믿고 마음껏 재능을 발휘하도록 맡기는데, 부족한 음악가는 늘 불안해하고 함께 작업하는 사람이 못미더워서 계속 확인을 하거든요. 어쨌든 폴과의 작업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고, 이후 그 음반을 건네받은 린다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제게 고맙다고 하더군요.

유로저널: 그렇게 편곡자이자 제작자로 성공하면서도 재즈 기타리스트로서의 연주 활동 역시 쉬지 않았습니다.

리차드: 다양한 음악을 다루고 있지만 재즈는 제게 가장 소중한 음악입니다. 사실, 재즈는 관객이 한정되어 있는 만큼 어떻게 보면 돈을 버는 음악이 아니라 돈을 잃는 음악입니다. 저 역시 큰 재즈 밴드를 운영하다가 적자를 봤었지요. (웃음) 그러나, 아무리 제가 다른 장르의 음악에서 성공한다고 해도 재즈는 계속 할 것입니다. 이미 재즈 기타리스트로서 두 장의 음반도 만들었고, 여전히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게 즐겁습니다.

유로저널: 최근에는 신인 뮤지션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하면서 한국인 뮤지션 유니의 음반 작업을 주관했습니다.  

리차드: 네, 저는 늘 새로운 음악과 새로운 감성을 지닌 새로운 뮤지션들을 만나고 또 그들과 작업하고 싶습니다. 유니가 바로 그 좋은 예입니다. 그녀의 뛰어난 음악적 테크닉과 작곡력을 보고서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그녀의 음악에 대한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고 싶었지요. 유니의 음반은 정말 자랑스러운 음반입니다. 그녀의 음악은 독특한 융합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팝 보이스면서도 음악의 멜로디는 어덜트 컨템포러리 재즈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클래식 피아니스트 출신이지요.

유로저널: 특별히 아시아권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리차드: 아시아권 음악의 퀄리티는 매우 우수합니다. 특히, 한국, 일본, 태국에는 우수한 뮤지션들이 많았습니다. 다만, 부족한 점이 있다면 너무 서양 음악, 뮤지션을 모방한다는 것이지요. 자신만의 창조성, 독창성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시아의 아티스트랑 작업하다 보면 그들의 재능은 매우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그 사운드는 서양의 어느 유명 뮤지션을 흉내낸 듯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아시아의 밥 딜런, 아시아의 마이클 잭슨, 아시아의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필요 없습니다.

유로저널: 그렇다면 특별히 한국의 음악 산업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리차드: 제가 보고 들은 게 전부는 아닐지라도, 일단 제가 한국 음악 산업에 대해 지금까지 발견한 것은 음악 산업 구조가 뮤지션의 창조성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기획사가 권력을 발휘하여 너무 많은 부분을 통제하다 보니 뮤지션이 개성을 발휘할 공간이 부족해 보입니다. 그리고, 워낙 특정 장르나 특정 스타들에 대한 편중이 심하다 보니 다양한 음악성과 개성을 지닌 창조적인 아티스트들이 설 무대가 없습니다. 반면, 한국팝의 스타일과 화려한 비주얼은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쏟아낼 수 있으며, 무엇보다 그것들은 관객들을 즐겁게(entertain) 합니다. 음악에 대한 제 생각은 음악은 즐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매우 뛰어나고 창조적인 음악가들이 많은데, 저는 이들이 가급적 많이 해외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문화사회에 진입해 그들 고유의 개성이 살아있는 제 3의 작품을 내놓아야 합니다.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는 아프리카 전통 드럼 연주자가 런던에 와서 아프리카 전통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 아프리카 전통 드럼 연주자가 런던의 재즈클럽에서 영국인 기타리스트와 듀엣을 하는 것입니다. 이미 한국의 유니가 런던에 와서 저화 함께 새로운 음악을 선보인 것처럼 새로운 실험에 대한 모험이 필요합니다.

유로저널: 음악 교육 분야에도 상당한 애정을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리차드: 제 어린 시절과 비교했을 때 요즘에는 음악 교육이 너무나 취약해졌습니다. 특히, 전통과 기초가 너무나 간과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음악 학위 과정 수업을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수강생은 18~30세 학생 250명이었습니다. 이들 중 절반이 자신을 싱어송라이터라고 규정했고, 특히 대부분이 소울, R&B 음악을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 소울, R&B의 창시자격인 레이 찰스나 아네사 프랭클린을 아는 학생은 채 열 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요즘 세대들은 과거의 위대한 음악들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과거에 대한 대한 지식 없이는 미래로 갈 수 없습니다. 과거의 훌륭한 음악들을 듣고 창조적인 미래의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데, 과거의 음악을 안들으니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과거의 음악을 모방하는 우를 범합니다. 그래서 제게는 신세대를 가르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현시대 음악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내가 늙었기 때문이 아니라 요즘에는 제 귀와 감성을 자극하는 새로운 음악을 못듣기 때문이지요. 저는 정말 저를 놀래키는, 도전을 주는,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음악을 듣고 싶습니다. 젊은 뮤지션 지망생들에게 왜 음악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안타깝게도 이들은 대답을 잘 못합니다. 단지 유명해지고 싶어서라고 합니다. 음악을 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도, 고민도 없는 것이지요. 최근 제가 팻 매스니에 대한 책 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유로저널: 말씀하신 것처럼 최근 세계 최고 재즈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인 팻 매스니를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을 발간했습니다. (팻 매스니는 리차드 나일스가 미국 보스톤에 위치한 버클리 음대를 다니던 시절 버클리 음대의 강사였으며 이후 함께 음악작업을 하기도 했다)

리차드: 그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뮤지션이란 무엇인지, 뮤지션이 음악을 대하는 자세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와 같은 기초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습니다. 9살 소년 팻 매스니를 하루에 10시간씩 기타 연습을 하게 만들었던 원동력이 무었이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제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불과 19세의 나이에 버클리 음대에서 이미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기타 사운드를 창조한 인물인 만큼, 사람들에게 그의 음악을 향한 창조적인 열정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대부분 뮤지션을 인터뷰한 서적은 얼마나 많은 여자랑 잤느냐, 어떤 악기를 쓰느냐와 같은 질문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 뮤지션이 갖고 있는 음악의 개념, 철학을 다룬 서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제가 집필한 팻 매스니 인터뷰는 단순히 자극적인 가벼운 이야기도 아니고, 단순히 음악의 테크닉에 대한 얘기만도 아닌, 음악의 개념과 창조성을 교육하기에 좋은 책입니다.

유로저널: 마지막으로 본인의 음악에 있어서 동기부여가 되는 것은?

리차드: 어려우면서도 쉬운 질문이군요. 제 음악의 동기부여는 결국 제가 말하려는 것입니다. 많은 뮤지션들이 음악적 테크닉은 좋은데 그 음악을 통해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음악을 합니다. 저는 제가 말하고 싶은 것, 제가 듣고 싶은 것을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해 음악을 합니다.

리차드 나일스 공식 웹사이트: www.richardniles.com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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