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저널 : 먼저 술의 유래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조정형 선생 : 신은 ‘물’을 만들고 인간은 ‘술’을 만들었다는 말이 있지요. 술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인류의 형성과 더불어 원시 시대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출현되었으며, 글자가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존속되었다는 것은 은(殷)대의 유적에서 술 빚는 항아리가 발견된 사실로도 증명됩니다. 술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기술한 고서들을 살펴보면, 전설적·신화적인 내용이 많은 반면 꽤 사실적으로 기술한 내용들도 있습니다.
사냥과 채집으로 생활하던 시대에도 이미 과일주가 있었는데, 과일은 조금만 상처가 나도 과즙이 새어 나오게 되고, 이 과즙들이 모여 천연발효가 이루어져 쉽게 술이 될 수 있었지요. 간혹 아프리카의 탐험기에서는 나무 뿌리 밑에서 이러한 과즙술을 주워 먹고 코끼리가 휘청거리며 달아나고 멧돼지가 술에 취하여 아무 데나 몸을 부딪히는 내용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유럽에서 과실주의 일종인 포도주가 크게 발전되어 왔는데 포도는 자체적으로 쉽게 술이 되는 성질이 있어, 기원전 6000년 전부터 포도주를 빚었던 흔적이 발견됩니다.
유로저널 : 세계 곳곳마다 문화와 환경에 맞는 전통술이 있을 텐데, 몇 가지 소개해 주시겠어요?
조정형 선생 :'원숭이술'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보름달 아래 원숭이들이 바위나 나무 둥치의 오목한 곳에 잘 익은 산포도나 머루를 달 밝은 보름밤에 넣어두고 다음달 달 밝은 보름밤에 찾아와서 술을 마신다는 이야기는 여러 나라에서 발견됩니다. 일례로 일본 문헌을 보면, 시미즈 세이이찌란 사람은 젊어서 입산수도하여 오랫동안 산중생활을 하는 중에 원숭이들과 사귀게 되었는데, 그들이 술을 담가 먹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산 속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도토리와 머루를 이용하여 만든 도토리술과 머루술이었지요.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도토리는 씹어서 담그고 머루는 그냥 담근다는 것이었는데, 원숭이들도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입 속의 효소를 이용하여 당화 발효시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머루는 자체 당으로 자체 효모에 의해 발효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만한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니 놀랍지요.
벌꿀은 물만 타면 쉽게 발효되는 과당과 포도당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우연히 자연적으로 채취한 꿀을 물에 타서 마시고 그대로 두었더니 어느새 발효되어 술이 되는 것을 발견하고 '벌꿀주'가 등장하게 되었을 것으로들 추측하고 있습니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신혼 부부가 한달 동안 벌꿀술을 마시는 풍속이 있는데 허니문(honey moon)이라는 단어도 여기에서 유래하지요.
그런가 하면 유목 민족에게는 유주(乳酒)가 있지요. 마유(馬乳)를 저어서 그대로 며칠 두었다가 걸러서 마시는데, 그들은 이 마유주를 음료수처럼 쉽게 만들어 마셨으며 벌꿀과 섞어 놓아 자연적으로 도수 높은 술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인류는 자연발생적으로 원시적인 술을 얻어 음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농경 시대에 들어서면서는 곡물주를 빚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하였지요. 위서(魏)음류국전에 의하면 ‘곡식을 씹어서 술을 빚는데 이것을 마시면 능히 취한다’고 하였습니다. 능히 취할 수 있다는 표현으로 미루어 주도는 그리 높지 않았을 것이고요. 이러한 술을 지봉유설에서는 처녀들이 만들었다 하여 ‘미인주’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곡식을 씹어서 술을 빚는 모습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유구국(지금의 일본 오키나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처녀들이 모여서 사탕수수 줄기로 이를 닦고 바닷물로 입 속을 가셔 내고는 쌀을 씹어 술을 빚었던 것입니다.
미인주는 가장 원시적인 곡물주로 조상의 제사에 쓰이며 지금도 일부 부족들이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이후 누룩이나 맥아를 이용하여 당화 발효시켜 술을 빚는 방법이 차차 발전하게 되었지요.
유로저널 : 우리 전통주도 그에 속하겠군요. 한국의 전통주를 굳이 정의하자면요?
조정형 선생 :술은 알콜1도 이상의 음료를 말하고, 이 중에서도 전통주란 예로부터 전승되어오는 우리 고유의 원리를 이용해서 만든 술입니다. 대표적으로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술이 있지요. 또한 농림수산식품부가 우리 전통식품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지정한 우리 농산물로 빚어지는 술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유로저널 : 전통주를 가양주라고도 부르던데 그건 무슨 뜻인가요?
조정형 선생 :조선시대 양반집은 으레 자기술이 있었습니다. 저희 집의 경우에는 이강주가 가양주였고요. 저희 6대조가 완주부사를 지냈는데, 당시에는 행정이 집에서 이뤄지는 일도 많고 사택에서 정치를 논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민원인이나 정치를 논하는 자리 등 손님이 자주 드나들다보니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일도 일상적이었습니다. 장 담는 일, 김치 담그는 일과 함께 술 빚는 일이 부녀교육의 한 축을 담당할 정도였죠.
약주를 빚어서 맑게 걸러진 것은 고급손님에게 대접하고 탁한 것은 논으로 보내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강주는 약주에 울금, 계피, 배, 생강을 넣어 맛을 업그레이드 시킨 것으로 특히 고급손님에게 대접하였던 술이지요.
일제시대에는 가양주가 밀주로 몰리기도 했지만 집안에서 제사용, 대소사용으로 꾸준히 계승해오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상업화도 된 것입니다. 다른 전통주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많습니다.
유로저널 : 전통주의 종류는 몇 가지나 되고 대표적인 술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조정형 선생 :우리나라 전통주 이름은 300여 가지가 있는데, 최남선의 조선문답지를 보면 우리나라 3대 명주로 이강고(梨薑膏. *이강주는 이강고를 계승한 술임), 호산춘, 감홍로를 꼽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이강주는 조선시대 세시풍속집 ‘경도잡지’와 ‘동국세시기’에 제조기술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는가 하면, 조선시대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발간된 《임원16지 林員十六志》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조선주조사 朝鮮酒造史》 등에도 제조방법과 특징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고종 때 한미 통상조약 체결 당시 국가를 대표하는 술로 동참했다는 기록도 있고요.
유로저널 : 전통주의 주 재료는 무엇인가요?
조정형 선생 :전통주를 빚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쌀과 누룩 그리고 물이 필요합니다. 쌀을 잘 씻어 고두밥을 짓고 여기에 누룩과 물을 섞어 항아리에 담으면 열이 오르며 술이 괴지요. 요즘 젊은이들은 누룩을 접해본 적이 거의 없지요? 술이 만들어 지려면 곡식이나 과일을 알코올로 발효시켜줄 도우미가 필요한데, 우리술에서 이러한 도우미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누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