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
||||||||||||||||||||||||||||||||||||||||||||||||||||||||||||||||||||||||||||||||||||||||||||||||||||||||||||||||||||||||||||||||||||||||||||||||||||||||||||||||||||||||||||||||||||||||||||||||||||||||||||||||||||||||||||||||||||||||||||||||||||||||||||||||||||||||||||||||||||||||||||||||||||||||||||||||||||||||||||||||
|
||||||||||||||||||||||||||||||||||||||||||||||||||||||||||||||||||||||||||||||||||||||||||||||||||||||||||||||||||||||||||||||||||||||||||||||||||||||||||||||||||||||||||||||||||||||||||||||||||||||||||||||||||||||||||||||||||||||||||||||||||||||||||||||||||||||||||||||||||||||||||||||||||||||||||||||||||||||||||||||||
|
유럽전체
2008.04.07 20:11
사랑을 노래한 30년, 듀엣 해바라기의 이주호와 함께 (1)
조회 수 3798 추천 수 0 댓글 0
'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이주호 작사/작곡, 해바라기 노래 ‘사랑으로’ 중에서 ‘주옥 같은 노래’라는 표현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노래가 지닐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간직하는 노래들을 가리켜 우리는 주옥 같은 노래라고 말하곤 한다. 대중 가요로는 유일하게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89년도에 발매된 음반의 수록곡) 대한민국의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준 노래 ‘사랑으로’를 만들고 부른 듀엣 해바라기의 리더 이주호, 어느덧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해바라기와 함께한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유로저널이 이주호와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에 앞서 해바라기의 노래들은 익숙할 지라도 가수 해바라기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는 독자들을 위해 해바라기의 역사를 소개한다. 많은 분들이 해바라기를 현재와 같은 2인조 통기타 듀엣으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 해바라기는 혼성 4인조로 시작한 팀이었다. 1970년대 초반 당시 명동의 카톨릭 여학생회관에서는 젊은 음악인들의 모임이 있었다. 이들은 통기타가 주를 이루는 포크음악을 바탕으로 창작곡을 발표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의 음악을 감상하기도 하며, 함께 어울려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던 일종의 음악 모임이었다. 초반에 이 모임을 인도하던 이는 다름아닌 대한민국 포크계의 대부 김의철이었다. 그러다가 1975년 이 모임을 주도하던 이정선과 이주호, 한영애, 김영미를 주축으로 본격적인 4인조 해바라기가 결성되기에 이른다. 해바라기라는 팀 이름은 당시 이들이 모임을 갖던 장소였던 해바라기홀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그리고, 1977년 드디어 이들은 해바라기 1집을 음반을 내놓는다. 자연을 담은 노랫말과 이정선, 이주호가 빚어내는 화려한 통기타 선율, 그리고 혼성 화음이 어우러지는 노래들이 담겨있는 해바라기 1집은 당시 우리 가요계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말 그대로 기념비적인 음반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1집 음반 발매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주호가 군에 입대하게 되고, 그 자리를 채운 이가 바로 이광조였다. 그리고 이들은 1977년 2집을 내놓았으며,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2집 음반을 마지막으로 4인조 해바라기는 해체되지만, 이후 유학길에 오른 뒤 가요계에서 자취를 감춘 김영미를 제외하고 이들 해바라기 출신들은 우리 가요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이정선은 ‘신촌 블루스’를 거치면서 한국적인 블루스 음악을 내놓았고, 솔로 음반들을 발표했으며, 대한민국 기타 교본의 대명사인 ‘이정선 기타교실’을 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한영애 역시 블루스 뮤지션으로 ‘누구 없소’, ‘조율’과 같은 노래들을 발표했고, 이광조 역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등으로 사랑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주호가 이끌고 있는 현재의 2인조 해바라기는 어떻게 탄생할 것일까? 이주호의 군 제대 후 4인조 해바라기는 해체 상태에 있었고, 이주호는 자작곡 ‘행복을 주는 사람’이 담긴 솔로 음반을 발표하면서 음악 활동을 재개하지만, 솔로 보다는 듀엣을 하고 싶었던 이주호는 그린빈스 출신의 유익종과 함께 듀엣 해바라기를 결성하게 된다. 우리에게 친숙한 현재의 듀엣 해바라기의 탄생이었다. 1982년 듀엣 해바라기의 첫 음반이 발매되었으나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 뒤에 유익종과 헤어지고 흰고래 출신의 이광준과 듀엣을 이루어 발표한 2집이 ‘모두가 사랑이에요’를 필두로 음반의 거의 모든 노래들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본격적으로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다. 2집 음반에는 ‘모두가 사랑이에요' 외에 ‘이젠 사랑할 수 있어요’, ‘그날 이후’, ‘어서 말을 해’, ‘사랑의 시’, ‘행복을 주는 사람’ 등 말 그대로 주옥같은 해바라기의 노래들이 담겨 있다. 이후 3집에서는 다시 유익종과 듀엣을 이루어 ‘사랑은 언제나 그 자리에’, ‘내 마음의 보석상자’, ‘너’ 같은 노래들을 통해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1989년 발표된 ‘사랑으로’는 국민가요로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어느덧 해바라기라는 이름으로 음반이 발매된 지 3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해바라기는 주로 라이브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때문에(해바라기는 미사리 무대에도 거의 서지 않는다) 방송만을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활동을 많이 안 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열린 음악회’나 ‘콘서트 7080’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간간히 만나는 반가움도 있지만. 이들은 대중 가수로서는 드물게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및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단독 공연을 가진 바 있으며, 90년대 초반 한국 가수로서는 드물게 유럽 순회 공연을 가진 바 있다. 2001년에는 키예프 국립 오케스트라와 ‘For the Peace’ 음반을 녹음했으며, 세계 3대 테너 중 한 명인 호세 카레라스는 전 세계의 노래들을 담은 자신의 음반 ‘Around the world’에 한국 노래로 ‘사랑으로’를 택해 직접 한국어로 불러 발표하기도 했다. 이렇게 수 많은 사연과 업적,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들 가슴에 피어오르는 주옥같은 노래들의 추억과 함께한 해바라기의 중심에 서 있는 이주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유로저널: 30주년 기념 음반과 공연 준비로 한창 바쁘실 텐데, 이렇게 유럽에 계신 우리 교민들을 위해 귀한 시간 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한 해 동안에도 많은 가수들이, 많은 노래들이 우리들을 찾아왔다가 떠나고, 잊혀지곤 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변함없이 지내온 해바라기가 건네는 깊은 울림은 남다른 의미를 주는 것 같습니다. 이주호: 유럽에 계신 교민 여러분, 이런 기회를 통해 인사 드리게 되서 너무나 반갑습니다. 십수년 전 유럽 순회 공연 당시의 아름다운 기억들이 스쳐 갑니다. 떠올려 보면 그렇게 오래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유로저널: 몇 년이면 잊혀지는 노래들, 잊혀지는 가수들이 속출하는 요즘과 같은 시대에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한결같이 지내온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으신가요? 이주호: 글쎄요, 아마 30년을 목표로 부담감을 갖고 있었더라면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겠죠. 그냥 매 순간 음악을 사랑하고, 소리를 탐구하면서, 내 가족, 내 형제, 내 민족과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생각과 느낌들을 정리하고, 그렇게 노래를 만들고, 또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기고, 노래를 통해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일들에 보람을 갖고 지내다 보니 어느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긴 세월을 지나 왔는데도 여전히 부족한 것 같아요.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 자리는 더욱 늘어가는 것 같고, 그래서 노래를 통해 그 사랑을 전하고 있지만, 불러도 불러도 언제나 부족한, 그래서 가슴이 다시 뜨거워지고,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영원히 해야 하는 한 가지가 바로 사랑인 것 같아요. 다음 회에 계속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