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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전체
2008.04.14 06:27
사랑을 노래한 30년, 듀엣 해바라기의 이주호와 함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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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저널: 4인조 해바라기 해체 후 유익종과 함께 듀엣 해바라기를 새롭게 결성한 이래로 이광준, 심명기, 현재 파트너인 강성운에 이르기까지 몇 번의 멤버 교체가 있었던 것을 두고 많은 이들이 그 이유를 궁금해 합니다. 이주호: 그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바람이 불어오고, 또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만났다기 보다는, 그냥 그 시간, 그 자리로 불어오는 바람처럼 내게 다가와 자연스레 만나졌기에 함께 노래 했고, 또 그러다가 다시 지나가는 바람이 되어 떠나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지나가는 바람이었어도 또 다시 내게 불어왔기에 다시 함께 노래할 수 있었던 시간들도 있었고요. (유익종과는 1집, 3집을 함께 작업했고, 이광준과는 2집, 4집, 5집을 함께 작업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강성운 씨는 어느덧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저와 함께 한, 가장 오랜 시간 제 곁에 머물고 있는 바람이 된 셈이네요. 유로저널: 지난 30년간 수 많은 노래들을 직접 창작해 오셨는데, 곡을 쓰실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으시는지요? 이주호: 곡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많은 영감을 얻게 되는 것은 자연이겠지요. 그 자연에는 우리네 삶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고. 그 자연을 통해 얻어지는 생각과 느낌들, 그리고 내가 속한 나라, 우리 민족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곡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유로저널: 어린 시절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뮤지션이 있다면? 이주호: 제게 가장 훌륭한 음악적 스승은 아무래도 제 어머니(당시 학교 음악 교사셨던)가 되겠지요. 음악에 한참 심취했던 시절에 영향을 받은 뮤지션은 CSN&Y(크로스비, 스틸즈, 내쉬 앤 영: 1968년 David Crosby, Stephen Stills, Graham Nash, Neil Young이 결성한 포크록 그룹), 밥 딜런, 제임스 테일러 같은 외국 뮤지션들이 있었고, 우리 나라 뮤지션으로는 김민기, 한대수 같은 선배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유로저널: 한창 노래 가사에 대한 사전검열로 음악에 대한 상당한 제재가 있었던 시절에 혹시 이러한 검열을 피해 가사를 바꾸거나 했던 적이 있으셨나요? 이주호: 당시 김민기로 대표되는 선배 세대가 워낙 제재를 받던 터라 저 역시 노래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들, 특히 나라를 향한 이야기를 저항과 도전을 담아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외견 상 사랑 노래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 내 나라, 내 민족과 치열하게 고민하고,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을 은유로 담아내야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어서 말을 해’ 같은 노래는 얼핏 남녀의 사랑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실은 당시 있었던 언론 통폐합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노래랍니다. ‘너는 너는 바보야, 그를 잡고 말을 못하면 너는 바보야. 사랑한단 한 마디 그를 잡고 말을 못하면 떠나가 버려. 어서 말을 해. 흔적 없는 거리 거리 마다 말 못하는 사람들뿐이야. 정만 주면 무슨 소용 있나, 가고 나면 울고 말 것을. 미워하면 무슨 소용 있나, 가고 나면 후회 할 것을.' - 해바라기 2집 ‘어서 말을 해’ 유로저널: 참 많은 노래들을 만들고 불러 왔는데, 그 중에서 본인께서 가장 아끼는 노래 한 곡을 선정하라고 한다면 어떤 곡이 될까요? 이주호: 그 동안 만든 노래들이 발표된 곡과 발표되지 않은 곡을 합치면 500여 곡이 넘지만, 그 중에서 제가 가장 아끼는 노래라고 하면 아무래도 ‘사랑으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으로’는 제 모든 노래의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계속해서 노래를 만들겠지만 ‘사랑으로’만큼 제 가슴에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하는 노래를 또 만들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유로저널: 본인의 음악을 떠나서, 30년 전의 음악과 지금의 음악을 비교해 본다면 가장 큰 차이점은 어떤 것이 될까요? 이주호: 음악이라는 것은 그 시대의 삶,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예전 우리들의 음악은 다소 부족하고, 어려웠던 생활 가운데서 만들어진 음악이기에 음악 안에도 부족한 부분이 있었지만 동시에 그 속에 우리가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부유한 시대가 만들어낸 요즘의 음악은 세련되고 기계로 편하게 만든 발전된 음악임에도 너무나 꽉 찬 듯해 음악 안에서 우리가 쉴 공간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유로저널: 이번에는 조금 가벼운 질문을 드려볼까요.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 연주, 노래를 하시는 뮤지션으로서 본인의 노래를 노래방에서 직접 불러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주호: 아주 특별한 사람들과의 만남의 자리나 아주 특별한 부탁을 받은 경우, 정말 드물게 불러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노래방이라는 곳을 거의 가지 않기 때문에 더욱 드물죠. 또 노래방 반주에 맞춰 노래를 하면 제가 직접 부르는 노래와는 다른 감성의, 다른 노래가 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제 노래만의 순수성이 퇴색될 수 있어서 가급적 잘 안 부르는 편입니다. 유로저널: 여태껏 음악을 해 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다면? 이주호: 음악하는 순간은 언제나 행복해서 대답하기가 어려운데… 그래도 가장 행복했던 특별한 순간을 꼽으라면 ‘사랑으로’를 만들고 나서 부르면서 기뻤던 순간을 꼽겠습니다. 멜로디를 먼저 만들어 놓고 나서 노랫말이 잘 써지지 않던 차, 우연히 집에 액자로 걸려 있던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는 성구를 보고서 노랫말을 완성하고, 멜로디에 맞추어 부르는데 눈물이 한없이 쏟아지면서 기뻐했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아! 이거로구나!’하면서 새로운 음악의 탄생을 만끽하는 것, 그건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는 행복이었습니다. 유로저널: 그렇다면 가장 마음 아픈 순간이 있었다면? 이주호: 노래하면서 가장 마음 아픈, 힘들었던 순간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채 1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계약이 되어 있어서 업소에서 노래를 불렀어야 했던 때였습니다.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가운데 노래를 부르기가 너무나 힘이 들더군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업소에서 거의 노래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비록 돈을 안받더라도 적어도 내가 진정 노래하고 싶을 때 노래할 수 있는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다음 주 마지막 회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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