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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2009.05.18 19:32
<파독광부 45년사> 를 편집출판한 유상근 편집위원장
조회 수 2465 추천 수 0 댓글 0
45년 전 1963년 12월, 당시 파독광부 500명 모집에 약 4만 6천명이 응시하였다. 실업률 28%로 일자리가 귀하던 몹시도 가난했던 시절, 한국의 피끓는 젊은이들 247명은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아 광부로 서독에 도착하였다. 그 후 매년 독일에 나온 파독광부들은 1977년까지 약 14년간 모두 7,936명. 이들은 지하 1450 m, 섭씨 35도의 어둡고 뜨거운 막장에서 그들의 젊음을 가족들과 조국을 위해 불살랐고, 힘겹게 벌은 그들 월급의 대부분을 조국으로 송금하였다. 당시 국민소득 70달러에 불과하였던 조국이 이제 세계경제 14위의 선진대열에 오르기까지 이들의 땀과 눈물과 청춘이 그 거름이 되었다. 파독광산근로자 단체인 재독한인글뤽아우프회 (회장 성규환)는 올해 5월에 <파독광부 45년사> 를 발간하고 지난 5월 9일 Essen시에서 약 400명이 모인 가운데 노동절 행사와 더불어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깔끔한 흰색 표지에 „파독광부 45년사“ 라는 제목이 씌어져있고 그 바로 아래에는 (1963-2008) 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의 연대가 표시되어 있다. 표지 한 가운데 독일 지형이 그려진 지도 안에 약 300여 명의 재독한인들의 역사사진이 들어있다. 목차만 12쪽에 달하는 것을 보고 자료수집과 기록정리에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이고 애를 썼는가 알 수 있었다. 제 1장 광부역사 시작에서부터 제 2장 박정희 대통령 방독, 제3장 한국근로자 서독진출, 제4장 파독광부 제2의 도약, 제5장 사단법인 재독한인글뤽아우프회, 제6장 파독광부 적립금과 연금, 제7장 한독교류 (개인), 제8장 재독한인단체 등으로 이어져 제 18장 기록과 사진으로 보는 45년 역사에 이르기까지 장장 564쪽에 걸쳐 지난 45년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약 반세기에 이르는 파독광부들의 역동적인 삶의 발자취들을 담은 책을 편집발간한 유상근 편집위원장을 만나 이 역사책이 나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유로저널 : 안녕하세요? <파독광부 45년사>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언제부터 책 발간작업을 준비하셨습니까? 유상근 : 지난 2007년 7월, 재독한인글뤽아우프회 총회 때 이 발간사업에 대한 계획이 발표되었고 2008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자료수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으로는 십년 전부터 자료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시간날 때마다 다른 분으로부터 자료제공도 받고 인터넷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지요. 유로저널 : 그때부터 이미 언젠가 책을 내려고 준비하셨는지요? 유상근 : 1997년에 이상호 회장 재임시에 이미 „파독광부 30년사“ 를 글뤽아우프회에서 발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30년사가 바탕이 되었지요. 제가 1999년 글뤽아우프회 회장직을 물러나며 언젠가 기회가 오면 다시 역사기록책을 발간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였지요. 마침 2007년 성규환 회장을 중심으로 한 집행부에서 이 일을 추진하면서 제가 편집출판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유로저널 : 이번에 몇 부를 발간하셨으며 발간 소요경비가 얼마가 들었습니까? 유상근: 한국의 한 출판사에서 2,000부를 발간하였습니다. 노동부에서 파독광부적립금 중 발간비를 3천만원을 받아 발간하였는데 이 금액으로는 상당히 부족하였지만 편집진들은 사명감으로 이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만일 이 책을 판매목적으로 발간한다면 후원처의 광고를 게재하여야 하는데 역사적인 자료가 되는 책이기 때문에 기업광고를 싣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생각하여 비매품으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유로저널 : 책 발간을 축하하는 축사는 어느 분이 써주셨습니까? 유상근 : 이영희 노동부 장관과 최정일 주독대사, 한국산업개발연구원 백영훈 원장, 재외동포재단 권영건 이사장, 재독한인총연합회 이근태 회장, <한독교섭사>를 발간한 서울법대 최종고 교수님 들이 축사를 써주셨습니다. 유로저널 : 책의 편집은 누가 맡아서 하셨습니까? 유상근 : 문흥범님과 교포신문사 나복찬 기자님이 수고하셨고, 제가 편집을 맡아서 하였습니다. 이 분들은 파독광부로 오셨지만 대학출신으로서 실력이 있으신 분들이지요. 유로저널 : 45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일이 쉽지 않으셨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책을 발간하신 감회가 어떠십니까? 유상근 : 2세들은 이 작업을 할 수 없고 1세대 가운데 누군가가 반드시 이 작업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글뤽아우프회에서 이 사업을 하기로 하고 성규환 회장이 이 발간사업을 제가 맡아서 하도록 하여서 단체에서 하는 일이라 맡아서 하였는데 무식한 자가 용감하다고 겁없이 이 일을 맡았다가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제가 좋아하는 글쓰는 일도, 다른 아무 일도 못하고 all stop인 상태로 이 일에만 매달려야 했으니까요. 산고를 치르고 아기를 출산시킨 느낌입니다. 부족한 점이 있지만 십년 후쯤 이 책에 대한 평가가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유로저널 : 독일에는 언제 어떤 동기로 오시게 오셨습니까? 유상근 : 저는 1971년 6월 9일, 2차 파독광부 60명이 독일에 올 때 나왔습니다. 그때는 너나 할 것없이 살기가 힘들었지요. 제가 고등학교 3학년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6남매중 제가 장남이었는데 호주가 되어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이 컸지요. 제대 후에 대학을 못가고 작은 한 업소를 개업하여 일하다가 파독광부 모집을 보고 응시하였지요. 유로저널 : 처음에 독일에 오셔서 일하신 곳이 어디입니까? 유상근 : Oberhausen 루르지방 공업단지에서 일하였습니다. 그 때 그곳에서 함께 일하던 광부들은 1만여 명이었는데 그 중 한국인 광부들은 약 120명에 달하였지요. 원래 체중 60kg 이상이어야 자격이 되는데 저는 체중미달이어서 첫번 째에는 합격하지 못했다가 한달 후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유로저널 : „글뤽아우프“ 라는 뜻이 무엇인지 설명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유상근 : „Glueck auf“ 라는 말은 지하막장에 들어갈 때 사고없이 다시 무사히 올라오라는 광부들 사이의 독일어 인사말이지요. 이 말을 그대로 저희 단체의 이름으로 쓰기로 결정하여 지금까지 재독한인글뤽아우프회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회원들의 친목을 위해 결성되었는데 현재 회원수는 1200명에서 1400명 정도입니다. 유로저널 : 광부로 3년간 계약기간을 마친 후 독일에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유상근 : 독일정부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직업교육 프로그램이었던 Muenster Programm 이라고 하는 2년 단기코스의 용접배관 기술교육을 받고 쾰른에서 1985년까지 약 11년간 근무하였습니다. 그 후 1985년부터 2003년까지 전통공예품을 파는 자영업을 하였지요. 1990년 초부터는 매년 프랑크푸르트 소비재박람회가 열릴 때마다 자체 전시장 부스를 설치하고 사업을 할 정도였는데 한국의 IMF 때부터 이 사업이 사양길에 들게 되었어요. 전통공예품이란 생필품이 아니라 선물용품이라서 그 나라 경기에 굉장히 민감한 사업이지요. 그리고 그 때부터 전세계적으로 컴퓨터를 비롯한 IT 제품들이 등장하면서 이 사업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유로저널 : 파독광부로 오신 분들 중에 독일에서 돌아가신 분들은 몇 분이십니까? 유상근 : <파독광부 30년사> 에 1996년까지129명이 사고나 병 등 여러가지 이유로 고인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지금까지 약 300명이 독일에서 고인이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유로저널 : 한인 2세들을 포함한 지금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유상근 : 지금 젊은 세대들은 ‚보릿고개’ 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릅니다. ‚보릿고개’ 라는 말은 겨울을 보낸 농부가 보리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긴 봄을 보릿고개라고 말하였지요. 그렇게 어려운 시절이 있었는데 부모님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고 나 하나만 충족하면 된다는 이해타산적인 생각이나 삶의 자세는 변화되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역사책을 읽고 1세대들이 얼마나 가난과 역경을 헤치며 도전적인 삶을 살아왔는지 오랜 세월을 두고 생각하며 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유로저널 : 종종 교포신문이나 우리신문에서 시 작품을 올리신 것을 읽었는데 언제부터 시를 쓰셨는지요? 유상근 : 저는 고등학교도 실업계를 다녔는데 그때 써클활동을 하며 시를 썼지요. 그런데 지난 30년간 단절기간 후에 사업을 축소한 후 시간날 때 문득문득 시를 다시 쓰게 되었어요. 그리고 교민사회가 메말라가는 것 같아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교포신문이나 우리신문에 제 시를 보내서 올리곤 했습니다. 이번 <파독광부 45년사> 에도 파독광부로 오셨던 장해남씨의 "Glueck auf" 라는 시를 비롯한 세 분의 시 작품을 실었습니다. 유로저널 : 앞으로 하시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유상근 : 제가 그동안 한국을 방문하면서 느낀 것이 있는데 농촌지방에 폐교된 건물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도시로 인구이동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폐교를 이용하여 한독간 문화교류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테마학교를 만들어 농촌지역같으면 그 지역의 특산물, 바닷가일 경우에는 갯벌이 유명할 경우, 그 곳에 며칠간 머물며 그 인근의 유적지를 탐방한다든지 자연탐방을 하며 테마체험을 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독일인들이나 재독교민, 한인 2세들이 그곳에 가서 문화교류를 하는 일이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여 이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유로저널 : 이 책을 발간하신 후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유상근 : 파독광부들은 3년을 계약하고 독일에 왔지만 대부분이 다시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3년만 고생하면 집 한 채 정도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독일에 왔지만, 근무하는 동안 대부분의 월급을 조국으로 송금하였고 조국에 돌아가 일자리를 다시 얻기도 힘들었고 또 직장이나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나이들이었지요. 그 당시 계약기간을 마친 후 파독광부들은 캐나다, 미국, 유럽 각국 등 다른 나라로 떠나거나 독일에 남아 기술교육을 받고 생산공장에 들어가는 등 제2의 삶의 길을 택하는 과정이 복합적이었습니다. 독일에 남은 광부근로자들을 간호협회만 빼고는 수도 없이 많은 재독한인단체나 협회를 만들어 교민사회를 이끌어오는 주축이 되었지요. 그런데 저희들 대부분은 30대 초에 독일에서 근무를 하였기 때문에 정년퇴직 후 독일정부에서 받는 연금은 20대부터 일하여 40년 이상 근무한 독일사람들이 받는 연금에 비해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조국이 어려울 때 독일에 나와 청춘을 바치며 외화를 벌어들였던 광산근로자들에게 한국정부에서 당연히 보조를 해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점에서 관계당국이나 담당자 여러분들의 배려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1997년부터 2년 동안 재독한인글뤽아우프회 회장을 역임하며 한국이 IMF 로 어려울 때 재외동포들이 한국에 송금하는 운동을 벌인 공로로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2003년에는 재독한인 세계상공인총연합회 초대회장을 맡으며 세계한상대회를 개최하여 재독한인상공인들과 조국을 연결시키는 활발한 교류를 가졌다. 현재 유럽한인총연합회 자문위원이며 쾰른한인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유상근 편집위원장. 약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하며, 체중미달로 독일로 왔고 지금도 똑같이 그 때 체중이라고 말하는 그이지만 만 26세의 젊은 나이에 독일에 와서 지난 38년간 재독한인역사의 굵직한 일들을 해내고 있는 그의 역량이 앞으로도 계속 뻗어나갈 것이라는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 유로저널 독일지사 유 한나 기자 (hanna21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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