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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 찬 바람이 부는 계절입니다. 지난 한 해를 달려오면서 지친 영혼과 마음을 달래며 한 번쯤 메마른 감성에 단비를 뿌려주고,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사색에도 잠겨보는 12월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12월 인터뷰는 ‘예술가의 겨울’이라는 주제로  예술가들의 작품 소개와 함께하는 특집 인터뷰 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한 편의 예술작품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하게 합니다. 한 편의 예술작품은 우리가 달려가는 길에서 잠시 벗어나 휴식을 갖게 합니다. 평소 일상에 쫒기며 가까운 갤러리나 박물관, 가까운 공연장이나 극장조차 방문하기 어려웠던 여러분들에게 이번 ‘예술가의 겨울’ 시리즈를 통해 조금이나마 행복한 휴식을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지면을 통해서, 또 저희 유로저널 웹사이트를 통해서 우리 한인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감상하는 기회를 가져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첫 순서로 이번 시간과 다음 시간에는 조각가 송바다 님의 이야기와 작품세계를 전해드립니다.  

* 조각가 송바다 님은 영국에서 캠버웰 (Camberwell College, 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조소과 (Sculpture)를 졸업한 뒤, 브릭스턴(Brixton)에 있는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며, 다양한 전시회를 통해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유로저널: 안녕하세요! 12월 ‘예술가의 겨울’ 특집 첫 순서로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독자분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조각의 세계에 대해 흥미로운 얘기 부탁드립니다. 먼저 어떤 계기로 조각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부터 시작해 볼까요?

송바다: 안녕하세요! 제 작품들과 함께 이렇게 제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대미술은 커녕 미술의 ‘미’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엄청난 호기심이 발동되어 거액(?)의 입장료를 내고 그 유명한 전시회 ‘센세이션(Sensation)’을 관람하게 되었던 게 시작입니다.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나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같은 ‘젊은 영국 예술가들(YBAs:Young British Artists)’의 작품들이 전시되었고, 그 충격적인 내용들 때문에 수십만 명의 일반 대중들을 한 때의 ‘예술감상(?)’ 속으로 끌어들인 전무후무한 전시회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작품들을 마주하며 제가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상상력을 동원했지만 마치 제 머리가 거꾸로 회전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것들은 제가 사는 세계와 동떨어진, 마치 어떤 불가사의한 암호들로 가득찬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접한 인상적인 현대조각 전시회는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에서 열린 루이스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의 개인전이었습니다. 한참 훗날 제가 직접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에서야 그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지금도 그 때의 곤혹스러웠던, 그래서 잠못이루었던 밤들을 기억합니다. 조각에의 보다 구체적인 관심은 헨리무어(Henry Moore)를 공부하면서 였습니다. 한 번은 런던에서  찾을 수 있는 무어의 모든 조각들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제 작품 세계의 변화만큼이나 많이 변화한 현재의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에는 아침에 도시락을 싸들고 가서 그곳의 직원들과 함께 퇴근(?)할 정도로 무어의 조각 작품들을 그리고 또 그리는 작업을 미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한 동안 조각에 빠져있다 보니 다른세계는 더 이상 보이지도 않았죠.

유로저널: 영국에는 언제, 어떤 계기로 오게 되셨는지요?

송바다: 약 10년 전 친구들과 함께 유럽을 여행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여행지인 런던에서 3일을 머무르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부모님 앞에 여행 가방을 내려놓으며 선언(?)을 했죠, “저 다시 영국에 갈거예요”. (웃음) 그리고 나서 정확히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늦은 오후에  런던의 히드로 공항에서 제 몸의 두 배만한 가방을 앞에 두고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 제 자신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던 게 생각이 나는군요. “제대로 한 일 년만 놀아보자”고요. (웃음) 그저 한 일 년쯤 외국생활을 해보겠다는 게 저의 모든 꿈이었죠. 그러다 보니 세상이 온통 즐겁더라구요. 아침에 일어나면 주인집 아주머니와 겨우 몇 마디의 영어를 더듬거려야 하는 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영어학교에서 공부하는 그 당시 대부분의 친구들처럼 어떤 영어시험 점수를 만들어야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마치 제 삶의 한 부분을 떼어내서 어떤 특별한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녹여버린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죠. 영어학교 수업을 오전에 끝내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찾을 수 있는 모든 미술관, 박물관, 영화관 그리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들을 쑤시고 다녔습니다. 오로지 즐기겠다는 야심찬(?) 목표 아래서 런던은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전시해 놓은, 마치 하나의 커다란 박물관 같았어요. 자연스레 눈과 마음을 열게 되더라요. 대영박물관을 저보다 많이 방문한 사람은 별로 없을걸요. (웃음) 한 8개월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조금 피곤해지더군요, 돈도 떨어져 가고. 현실을 보게 되었죠. 그리고 저에게 다시 이렇게 물었죠, “이제 그만 놀고 집에 가야지?” (웃음)

유로저널: 그래서 정말 한국으로 귀국하셨는지요?

송바다: 물론 아니지요, 그랬다면 제가 지금 여기 없겠지요. (웃음) 제가 돌아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계셨던 부모님의 기대감을 저버리고 저는 파운데이션(Foundation: 영국 대학 학사 입학 준비) 과정에 입학했습니다. 이후 학사과정 역시 예기치 않았던 기회에 주어졌습니다. 파운데이션 과정 중 과제물을 제출할 때마다 담당 교수가 놀라워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곤 했지만, 그렇다고 정식으로 예술공부를 지속할 생각 같은 것은 꿈 속에서 조차 없었어요. 단지 조금 더 예술의 세계을 이해하고 싶었을 따름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학교의 마지막 과제 중의 하나가 ‘포트폴리오을 만들고 어떻게 대학에 원서를 내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마지못해서 그냥 캠버웰에만 원서를 내고  집에 갈 준비를 했습니다, 더이상 핑계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가족 중의 한 명이 전화가 와서 하는 말이  “예술학교에 합격했다며, 하고 오지 그러니.” 하더라구요. 스스로 물었습니다, “어떻게?” 대답은 “얼떨결에” 더군요. (웃음) 어떤 비장의 결심과 준비도 없었던 입학 첫 날 캠버웰에서의 곤혹스러웠던 심정은 지금도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군요. 그게 마치 초등학교에 입학해야할 아이가 실수로 대학교의 교실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22명의 반친구들이 모두 영국인이었고 저 혼자 외국인이었죠. 그 다음날부터 바로 해야할 과제를 주더군요. A4 용지에 가득 적힌 검정활자들은 어떤 뜻을 전달하는 언어가 아닌, 내가 이해못할 어떤 그림의 일종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별히 계획성 있게 3년 과정을 준비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첫 학기부터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같이 해야했고, 매학기에 두 세번 정도 있었던 실질적인 작품 만들기는 이미 기성 작가처럼 ‘미술관에 가도 손색이 없을, 모든 것을 갖춘 작품’을 만들어야 했어요. 지금도 가끔 작업하기가 힘들 때면 그때 철을 이용해서 처음으로 만든 작품을 되새겨 보곤 합니다. 비록 ‘그게 어떤 것이었다’라고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어도 직감적으로 작품 만들기에 대한 ‘모든 것’을 그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이해해 버리지 않았나 생각되고, 그리고 그때부터 이미 저의 작품 경향의 틀이 잡혀진 것 같습니다.

유로저널: 조각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조각가들이 어떤 요소를 갖추어야 하는지요?

송바다: 작업의 내용에 따라 어떤 특별한 기술이 요구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철이나 청동같은 재료를 사용하려면 필수적으로 배워야할 게 용접이라든가 그것들을 자르는 기술 등등. 한 번은 아주 큰 청동을 이용한 작업을 했었는데, 그 과정을 익히는 과정이 보통의 상상을 초월하더군요. 만들고자 하는 작품의 형상을 진흙으로 빚기부터 제 몸 크기만한 석고를 만들고, 부수기, 청동 녹이기, 갈아내기, 광내기 그리고 용접하기 등등. 또 한 번은 흙을 이용한 조각을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 도자기실에서 몇 달을 썩힌 적도 있었고요. 프린팅를 이용한 작품도 있었는데 그 복잡한 과정을 제대로 습득하기 위한 과정은 실질적인 작품 만들기 이상의 인내와 사고를 요합니다. 또한, 자칫 오로지 기술들을 배우는 것에만 집착하게 되면 실질적으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닌, 장인적인 몰입 자체를 예술의 그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결과를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외에 새로운 작품을 만들 때마다 그에 따른 개인적인 자기만의 기술을 개발해야 하기도 하고, 제대로 된 자기 작품을 찍기위한 사진 기술의 습득도 필수입니다. 위에서 열거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 외에 예술가로서의 자질에 관한 훈련은 끊임없는 사고와 세상사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필요로 하는데, 저는 이런 것들 역시 자기 훈련을 통해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작품기획을 연구하거나 조사하는 것도 하나의 지속적인 훈련으로 나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현대조각을 하려면 일상의 모든 일과 자신의 작품세계를 동일시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 그 전날 작업실에서 하던 일이나, 혹은 그 전날 보았던 예술 작품들을 생각하는 것, 혹은 문득 일상에서 순간적으로 영감을 받은 것들을 생각하는 게 일과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것들 모두가 하나의 훈련과정이고, 교육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매일 어딘가에 가서 다름 사람들의 작품을 봐도 일 년 내내 다 따라가지 못 할 만큼 엄청난 미술의 보고가 런던이 아니겠어요? 그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그리고 감상을 이야기 하고, 친구들과 토론하고, 작업하고, 이런 것들이 결국은 이곳의 예술학교에서 다루는 일인걸요. 그래서, 제게는 작업이란 단지 구체적인 어떤 완성된 작품을 만들고 전시회를 하는 것 이상으로 여겨집니다.

[작품소개]
1. Chi-Bung (지붕) object & installation, 255 x 420 x 415cm, Newspapers, walking sticks & rubber bands.
2. Chaplin (채플린, details) overall Size: 173 x 89 x 39 cm, Korean Newspaper.

다음 회에 계속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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