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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인터뷰는 지난 달 11월 제 5회 런던한국영화제 참석 차 영국을 방문한 김지운 감독과 가진 인터뷰입니다.

유로저널: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원래는 연극 배우로 시작하셨는데, 어떻게 영화를, 또 연출을 하게 되셨는지부터 시작해 볼까요?

김지운: 영화는 원래부터 제가 참 좋아했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연극과에 입학해서 처음에는 연극 배우로 활동을 했습니다.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의 건달 역할도 맡았는데, 이후 지금까지 평생 건달로 살고 있습니다. (웃음) 배우라는 것이 참 매력적입니다만, 어늘 날 한 선배가 제가 출연한 공연을 5일 연속으로 보시더니 마지막 날 저희 공연에 대해 가혹한 비평을 하셨는데, 작품의 전체를 포괄하는 연출가의 시선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결국, 하나의 드라마를 결정짓는 사람은 바로 연출자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하지만, 당시 배우를 경험한 것이 훗날 연출가가 되어 배우들과 교감을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유로저널: 감독님의 공식 프로필을 보면 정식 영화 데뷔는 다소 늦은 36세에 하셨습니다.

김지운: 그렇게 연출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당장 현실적인 준비나 실천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선배들이 히피즘에 물들어서 뭘 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세상을 관조하고 비평하는데, 저도 그게 너무 좋아서 무위도식으로 10년이나 백수생활을 했습니다. 그 자유분방함과 게으름이 어찌나 멋있던지. (웃음) 자꾸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게 되고, 세상의 성공이 다 가짜 같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영화에 대한 꿈도 희미해지더군요. 그러다가 서른이 되었는데, 그 때는 정말 뭔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야겠더라고요. 과연 내가 영화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해야 했고,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비용을 마련해 세상에서 가장 활발한 영화도시인 프랑스 파리로 무작정 갔습니다. 5개월 간 무전여행을 하면서 100편이 넘는 영화를 봤습니다. 당시 파리에서 유학 중이었던 임순례 감독을 만났었는데, 제가 몇 년 동안 볼 영화를 벌써 다 봐서 굳이 영화로 유학을 할 필요는 없겠다고 했던 게 기억납니다. 그렇게 미치도록 영화를 보면서, 또 그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그 영화를 대하는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영화는 정말 해볼만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3년 더 백수로 지내다가 ‘프리미어’ 잡지를 보고 시나리오 공모전에 무심코 응모했더니 당선이 되었습니다. 신기하던 차 ‘씨네21’에서도 시나리오 공모전이 있어서 마감을 일주일 앞두고 5일만에 써서 낸 게 또 당선이 되더군요. 그게 바로 제 연출 데뷔작인 ‘조용한 가족’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제가 천재가 아닌가 싶더군요. (웃음) 원래 습작도 많이 하고, 여러 번 실패도 해봐야 하는데, 한 번에 바로 바로 당선이 되었으니까요. 백수생활 10년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했습니다. (웃음)

유로저널: ‘조용한 가족’은 당시 코믹잔혹극이라는 새로운 장르용어까지 만들어내면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작품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으셨는지요?

김지운: 몇 가지의 사건, 사고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하나는 불륜과 관련된 생매장, 그리고 그 생매장을 둘러싼 연쇄살인 사건이었고, 또 하나는 군부대 탈영병 때문에 저격병도 출동하고 총격전이 발생했는데 마침 지나가던 중국집 배달부가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었습니다. 왜 하필 거길 지나다 죽었을까 싶은 게, ‘황당한 상황에서 맞는 죽음, 죽음의 불예측성’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워낙 블랙코미디를 좋아했기에, 이러한 황당한 상황과 부조리한 설정을 통해 한국적인 토종 블랙코미디를 만들어보자며 ‘조용한 가족’을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운 좋게도 비평, 흥행 양면에서 모두 성공한 데뷔작이 되었지만, 상당한 모험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르, 지금은 톱스타지만 당시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 주연 배우들과 다수의 등장인물들, 열린 결말 등 그야말로 상업영화로서 피해야 할 것들을 모두 시도한 영화였으니까요.

유로저널: 감독님의 작품들을 보면 인상적인 미장센과 함께 감각적인 영상을 선보일 때가 많습니다.

김지운: 영화를 더욱 효과적으로 설명할 공간을 찾다보니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미장센이 강조되는 영화를 만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문학이 아니기 때문에 말보다는 이미지로 표현하는 게 중요한 장르입니다. 가령, ‘장화, 홍련’에서는 ‘벽지가 말을 한다’고 할 만큼 주인공의 끔찍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공간의 색채나 구도가 중요한 역할을 했고, ‘달콤한 인생’ 같은 경우 느와르 영화인 만큼 빛과 어두움을 통해 삶의 명암, 인생의 도약과 추락을 표현하려 했으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는 그 시대의 독특한 사회를 구성했을 만주의 초월적인 분위기와 끝없이 펼쳐진 벌판을 내달리는 남자들의 강렬함을 그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제가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고민하는 것은 이미지나 스타일이 아니라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로저널: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배우들인 송강호, 최민식, 이병헌, 이렇게 세 배우와 여러 작품들을 같이 작업하셨습니다. 이들에 대한 각각의 평을 간략히 부탁드립니다.

김지운: 세 명의 연기 스타일이 모두 다른데, 먼저 최민식은 소낙비 같은 배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를 일시에 거침없이 쏟다가 딱 멈추죠. 극중 인물에 대한 몰입이 잘 훈련된 정통 메소드 연기(Method Acting)를 하는 배우입니다. 반면, 이병헌은 이슬비 같은 배우입니다. 오는지도 잘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그 역할에 젖어있죠. 가끔은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표현하거나, 아주 작고 섬세한 연기가 요구될 때가 있는데, 이병헌은 그것들을 가장 근사하게 표현하는 배우입니다. 송강호는 그야말로 모든 종류의 비를 그 때에 따라 본능적으로 거침없이 뿌리는 영국의 비(?) 같은 배우입니다. 정해진 계산이나 의도가 아닌, 그야말로 본능적, 동물적 직감에 의존하여 연기하기 때문에, 그의 연기는 현실과 같은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유로저널: 대부분의 작품들이 주로 남자 주인공들이 중심이 되어 남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여성의 역할은 약하다는 느낌이 있는데요, 여성의 이야기를 해볼 생각은 없는지요?

김지운: 그건 아마도 제가 여성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고로 김지운 감독은 아직 미혼임) 그나마 여성이 주인공으로 부각된 ‘장화, 홍련’과 같은 경우, 물론 당시 신인 여배우들을 기용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영화를 마치고 유대감이 그렇게 잘 유지되기가 어렵더라고요. 물론, 임수정이나 문근영을 사석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는 합니다만. (웃음) 아무래도 남자 배우들하고는 영화를 마치고도 계속해서 편하게 만나면서 관계를 유지하기가 좋고, 또 영화제 같은 곳에 같이 다니기도 편하지요. 그럼에도 언제든 여성에 대한 좋은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면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여성의 이야기를 영화를 만들 것입니다.

유로저널: 이번에 런던한국영화제에서 선보인 ‘악마를 보았다’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복수극은 어쩌면 영화의 가장 진부한 소재일 수도 있는데, 과연 ‘악마를 보았다’는 다른 복수극과 어떻게 다른지요?

김지운: 기존의 복수극들은 대부분 복수의 대상에 대한 추격을 영화 전반에 걸쳐 보여주다가 결말에서 복수를 감행하면서 영화를 마칩니다. 그러나, ‘악마를 보았다’는 영화 시작 후 1시간도 되기 전에 이미 주인공이 복수의 대상을 잡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다음은 무엇인가?’라는 의문과 흥미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이 영화는 이후 주인공과 복수의 대상이 서로 복수를 주고받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또한, 대부분의 복수극은 그 복수 행위가 관객으로부터 충분한 공감과 동정, 도적적 구원을 얻지만 이 영화는 다릅니다. 주인공이 복수에 성공하는 동시에 결국 자기파멸을 초래하는 아이러니가 있죠. 결국 ‘완전한 복수는 없다, 복수에 성공해도 원수로부터 잃은 그것이 환원되지는 않는다’라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결국 복수는 자기만족인가?’라는 질문도 던지는 것이지요. 이 영화를 보실 때는 단순히 복수의 행위보다는 등장인물들의 감정 흐름에 보다 중점을 두고 보시면 이 영화의 복수극이 던지는 의미와 질문을 보다 깊이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유로저널: 한국에서 매우 드물게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을 만큼 잔혹한 묘사가 상당한 논란이 되었습니다. 굳이 그런 장면들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는지요?

김지운: 만약 평범한 복수극이거나 스릴러 영화였다면 어느 정도 생략된 표현법을 사용했겠지만, 이 영화는 고어 스릴러(Gore Thriller)라는 특정 장르를 표방한 영화입니다. 따라서, 피가 분출하거나 신체를 훼손하는 등의 장르적 특성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특히, 주인공이 원수에게 가하는 복수의 잔혹한 행위를 불편할 만큼 현실적으로 보여준 것은 주인공이 지닌 내면의 상처의 깊이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주연 배우들이 워낙 실감나는 연기를 펼친 점도 이 영화가 유난히 잔혹성을 현실적으로 전달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유로저널: 제한상영가 판정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런 영화가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논란도 있습니다만.

김지운: 김영진 영화평론가는 ‘악마를 보았다’가 과연 영화가, 또 문화가 어느 수준까지 사회를 얘기하고 표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담론을 제기했다고 평한 바 있습니다. 일단, 우리나라에는 제한상영가 전용극장이 없으니, 제한상영가 판정은 결국 영화를 상영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이 영화보다 더 끔찍하지 않나요? 영화를 만들면서 강력범죄 전담 형사들을 여럿 인터뷰했고, 또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잔인한 영화들의 수위를 충분히 참고해서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와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이 영화가 14세 이상 상영가를 받았거든요. 그들의 기준에서는 14세 이상이면 볼 수 있는 영화를,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상영하지 말라는 것이니... 정상적인 상영가를 승인받기 위해 제 스스로 제 영화를 검열하면서 자괴감마저 들더군요. 영화에 대한 심의가 일관적이지 못하면 창작자는 위축됩니다. 그리고, 설사 제한상영가 판정이 나더라도 신속히 후속조치를 해서 이를 만회할 기회를 줘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도 유연성이 없고 비현실적인 처리 절차를 두고 있으니, 창작하는 입장에서는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유로저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그야말로 대박 흥행 이후 보다 안전하고 흥행이 보장된 영화를 할 수도 있었음에도, 이렇게 위험부담이 높은 영화 택한 이유는?

김지운: 장르를 바꿔가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이야말로 영화를 만드는 재미입니다. 성공을 되풀이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데뷔작인 ‘조용한 가족’도 새로운 형태의 영화였고, 우리 영화계에서 제가 아니면 못 만들 것 같은 영화를 시도해보는 것, 그것을 통해서 한국영화의 스펙특럼을 넓혀가는 것이 개인적으로 정말 의미가 있습니다.

유로저널: 제작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이어 런던한국영화제에 두 번째 참석하셨습니다. 런던한국영화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김지운: 일단 런던에서 이러한 한국영화제가 열린다는 것 자체가 정말 근사한 것 같습니다. 영국/런던은 전통주의를 고수하면서도 문화적으로 전이적 역할을 하는 곳인데, 그 한복판에서 해마다 한국영화를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을 충족시키면서 상영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보통 해외에서 한국영화제가 열리면 대부분 한국인 관객들로 객석을 채우는데, 런던한국영화제는 현지 관객들의 객석 점유율이 90%가 넘습니다.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현상이죠. 이렇게 런던한국영화제를 통해 한국문화를 알리고, 한국영화의 팬이 생기고, 한국배우의 팬이 생기고, 나아가 아시아 대중문화예술 전파의 선구적 역할을 하는 교두보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렇게 다른 문화권을 가진 다른 인종들도 우리 영화를 주목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나라가 좋은 영화를 더욱 많이 만들어야 겠다는 의식을 갖게 합니다.

유로저널: 마지막으로 차기작 및 앞으로의 계획은?

김지운: ‘라스트 스탠드’라는 헐리우드 액션 스릴러 영화를 제가 연출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는데, 제가 기사를 낸 것은 아니고, 한국의 기자분이 외국의 영화 웹사이트에 언급된 내용을 번역해서 보도한 것이었습니다. 활발히 얘기가 오고가고 있지만, 영화라는 게 워낙 거대한 프로젝트인 만큼, 실제로 계약서에 서명하고 촬영이 들어가야 확정이 될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한국에서 봐 둔 시나리오들도 있고요.

유로저널: 오늘 바쁘신 일정 중에도 이렇게 시간 내주시고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영국 및 유럽에서 김지운 감독님의 작품들을 더욱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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