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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2009.10.20 08:35
'박쥐' 영국 개봉을 앞두고 런던을 방문한 박찬욱 감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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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에 대해서는 별도의 소개를 할 필요가 없을 만큼 그는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한국의 영화감독들 중 한 명이다. 박찬욱 감독은 신작 ‘박쥐’의 영국 개봉을 앞두고 런던을 방문했으며, 지난 6일 저녁에는 주영한국문화원에서 ‘복수는 나의 것’ 상영회와 함께 관객과의 Q&A 시간이 마련되었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 세계 및 연출 스타일이 워낙 개성이 강한 만큼 그는 늘 주목을 받아 왔으며, 그런 만큼 그에 대한 인터뷰들은 언제나 유사한 질문들로 일관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자의 뻔한(?) 질문 반복을 방지하기 위해 이날 다양한 관객들이 던진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답변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엮어보았다. 물론, 여기에는 기자의 질문도 포함되어 있다. (질문 6번 참조) ‘올드보이’가 영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만큼, 이날 많은 외국인들이 참석하여 박찬욱 감독에게 다양한 질문들을 던졌으며, 원래 30분으로 예정된 Q&A는 한 시간을 훌쩍 넘길만큼 흥미진진했으며, 박찬욱 감독은 다양한 관객들의 다양한 질문에 성실하게, 진지하게, 또 특유의 유머감각을 발휘하여 답변해주었다. 질문1: 첫 연출작을 만들면서 경험했던 것은? 박찬욱: 당시 저는 20대였고 영화를 만드는 경험도 부족했, 그야말로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당연히 제가 원하는 배우를 기용할 수도 없었죠. 제 첫 연출작의 주연배우는 유명한 가수로, 그가 너무 바빠서 촬영 전날 그를 처음 만났습니다. (유로저널 주: 박찬욱 감독의 첫 연출작은 ‘달은...해가 꾸는 꿈’으로 주연배우는 가수 이승철이었다) 그가 첫 만남에서 이 영화 줄거리가 뭔지 물어봤을 만큼 준비가 부족한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촬영이 진행되면서 주연배우와는 친해져서 친구가 되었습니다만. 당시 저의 문제는 배우에 대해 올바른 생각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당시 배우를 그저 감독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소품처럼 여겼습니다. 질문2: 차기작을 어떻게 구상하는지요? 박찬욱: 항상 다음 작품을 구상할 때는 이전 작품에서 아쉬웠던 점, 이전 작품에 비추어 보았을 때 다음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 때 그것들을 바탕으로 차기작을 구상합니다. 본격적으로 제 작품이 알려지기 시작한 ‘공동경비구역 JSA’부터 말씀드린다면,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문제는 분단 문제와 계급 문제라고 생각하는 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분단 문제를 다룬 뒤 계급 문제를 다루기 위해 ‘복수는 나의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송강호라는 배우와 두 편이 영화를 만들고 나니 그 다음에는 최민식이라는 배우와 작품을 하려 했는데, 그에게 적합한 정열적이고 강한 에너지의 영화를 찾다가 ‘올드보이’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 동안 너무 남성 중심적인 영화들만 만든 것 같고, 제 영화에 가득한 남성적 에너지에 실증도 나면서, 나이가 들면서 남자들의 에너지가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영화는 여자가 주인공이 영화 하겠다고 마음먹었고 ‘친절한 금자씨’가 나오게 된 것이지요. 질문3: 소위 말하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극 3부작이 만들어진 배경은? 박찬욱: 원래 세 편의 복수극을 만들려던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복수는 나의 것’ 이후 ‘올드보이’를 만든다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자들이 ‘복수는 나의 것’이 흥행이 안 되었는데 왜 또 복수극을 만들려는지 의아해 하면서 다소 비웃는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홧김에 ‘나는 복수극을 열 편도 만들 수 있다, 복수극 3부작이 기획되어 있다’고 발언했습니다. 원래 계획된 것도 아닌데 그렇게 공개적으로 발언했으니, 그 발언을 수습하느라 결국 실제로 복수극을 세 편이나 만들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복수극 3부작에 대한 계산이 완전히 없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 ‘복수는 나의 것’이 흥행이 안 되어서 잊혀지는 영화가 될까봐 걱정이 되었고, 그 이후 3부작으로 만들 경우 차기 복수극을 성공시키면 어쩔 수 없이 ‘복수는 나의 것’도 찾아보게 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복수극 3부작이라고 부르게 된 듯 합니다. 질문4: 차기작을 만들 때 한국 영화계에서의 특별한 위치를 의식하는지, 외국에서의 반응을 의식하는지요? 박찬욱: 한국 영화계 안에서의 저의 위치, 저의 역할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의식해본 적이 없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이전 영화에서 부족했던 면, 혹은 이전 영화에서 실증이 나서 다음 작품을 결정할 뿐입니다. 외국에서의 반응, 해외 관객들에게는 매우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외국에서 어떤 평가를 받느냐는 상업적인 면에서도 중요합니다. 제 영화들이 스타들은 많이 나와도 한국에서는 상업적으로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는 영화들인 만큼, 제작자들이 제 영화에 투자하면서도 겁을 냅니다. (웃음) 그래서 수출이 많이 되느냐의 여부는 중요합니다. ‘외국에서의 평가는 미래의 평가와 같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지금 당장은 한국의 관객들이 미처 보지 못한 부분들을 외국에서 발견 되기도 하고, 영화가 만들어진 지리적 위치를 벗어나야 오히려 그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것들이 잘 보일 수도 있습니다. 질문5: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상당히 폭력적이고 어두운데도 그렇게 심각한 상황에서 유머를 사용하는 의도는? 박찬욱: 어떤 분들은 제게 제 영화에 가득한 폭력, 어두움과 균형을 이루기 위해 유머를 사용하냐고 물어옵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그것보다는 어두움을 더욱 어둡게 만들기 위해 유머를 사용합니다. 공포, 고통, 슬픔,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과 하나가 되는 유머가 제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제가 영화를 만드는 목표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합니다. 부정적인 감정들은 거기에만 빠져 있으면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모든 사물을, 사태를 정확히 보기 위해서는 거리를 둘 필요가 있고, 거기서 유머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실, 씁쓸한 상황에서 유머를 구사하는 것은 영국인들이 가장 잘 하는 것 같으니 제 유머 방식은 영국인들에게 배웠다고 해도 될 듯 합니다. (웃음) 질문6: 일반적인 영화의 복수극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복수를 가해서 복수에 성공한다는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는 일단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이 모호하고, 피해자가 복수를 실행해도 여전히 고통스러우며, 그래서 마치 모두가 피해자, 모두가 패배자로 느껴집니다. 이것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는지요, 가령 ‘복수는 부질없는 것’, ‘용서해라’, 아니면 대안을 제시하려는지요? 박찬욱: 사실, 복수라는 소재는 닳고 닳은 흔한 것입니다. 심지어 굳이 복수극으로 분류되지 않는 작품들도 살펴보면 복수를 담고 있습니다. 가령, 애정영화라도 애인에게 차인 남자가 더 멋진 이성을 만나서 자신을 찬 애인에게 한 방 먹이려는 것도 일종의 복수가 되겠지요. 그런데, 3부작까지 하면서 복수극 영화를 만들 때는 단순히 복수에 성공한 통쾌한 분풀이로 만들 것이었다면 뭐하러 21세기에 복수극을 또 만들었겠습니까? 저는 그보다는 복수를 둘러싼 다양하고 복잡한 도덕적 감정들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복수는 지난 일을 가지고 거기에 대한 앙갚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의 행복과 쾌락을 포기하고 복수에만 몰두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복수를 실행한다 해도 실질적으로 돌아오는 이익은 없습니다. 물론, 누구나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을 제외한 어떤 동물도 실질적인 이익이 없는 복수라는 행위에 몰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복수를 둘러싼 복잡한 심리를 연구해보면 인간성이란 무엇인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복수극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친절한 금자씨’의 경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영화의 절반은 주인공이 복수를 준비하는 것을 보여주지만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복수는 타인들에게 넘기고 자기는 물러나서 타인들의 복수를 구경합니다. 즉, 복수극의 최종 단계로 복수극을 지켜보는 관객의 심리까지 다뤄보려던 것이었습니다. 질문7: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만든 배경은? 박찬욱: 영화의 출발은 단순히 사춘기의 제 딸도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었고, 일종의 로맨틱 코미디를 해보려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영화 중에서는 제일 흥행이 안 된 영화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든 외국에서든 제 이름을 보고 찾아온 관객들은 예상과 다르다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DVD도 나오고 TV에서도 방영되면서 그나마 이 영화를 다시 좋아해준 관객들이 생겨났습니다. 제게는 상당히 애정이 있는 작품으로, 누가 제게 이 영화의 팬이라고 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바보 같은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의 키스장면은 영화 사상 가장 귀여운 키스신이 아닐가 싶습니다. 오늘 하루종일 영국 매체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가디언지 기자가 이 영화를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해서 그 어떤 기자들에게 해준 것보다 최선을 다해 인터뷰에 응해줬습니다. (웃음) 질문8: 신작 ‘박쥐’를 만들게 된 배경은? 박찬욱: ‘사이보그지만 괜찮아’가 흥행이 잘 안 되어서 역시 관객들은 제게 강렬하고 어두운 얘기를 원하는구나 싶더군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사랑 얘기였는데, 정신병원의 환자들을 어린이들처럼 묘사해했고, 그래서 그들의 사랑에는 성적인, 관능적인 요소가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요소들이 포함된 사랑 얘기를 다시 하고 싶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박쥐’입니다. 질문9: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은 극중 주인공들에게 극도의 상황을 부여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박찬욱: 저는 제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가혹한 시련을 주고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고 싶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동차 타이어를 만들었다면 그 타이어가 잘 작동하는지 보기 위해서는 비포장도로나 사막과 같은 어려운 길을 달리게 할 것입니다. 인간성,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탐구해보기 위해서 저는 주인공들에게 최대한 잔인하고 가혹한 상황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가혹한 시련을 안겨주기 위해서 다음 작품에서는 주인공을 결혼 시켜볼까 생각 중입니다. (웃음) 질문10: 한국 영화감독들 중 개인적으로 질투를 느끼는 감독이 있는지요? 박찬욱: 봉준호 감독은 그의 집요함, 완벽주의가 혀를 내두르게 만듭니다. 그는 각본을 쓸 때 1년, 2년간 몰두하여 작업합니다. 촬영지 로케이션 등 모든 작업에서 그는 오직 그 작품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그의 영화에 여실히 드러납니다. 홍상수 감독은 어느 누구도 가지 못한 자신만의 영화 문법을 발명한 인물입니다. 김기덕 감독은 너무나 적은 예산으로 너무나 빨리 영화 만드는 재주를 갖고 있습니다. 그의 영화를 만드는 스피드는 아무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적은 예산으로 그렇게 생산적으로 영화를 만드니 그는 영화가 흥행이 별로 안 되어도 별 피해가 없을 것이고, 아마 흥행에 성공한 봉준호 감독이나 저보다도 경제적으로는 더 나을 것입니다. (웃음) 마지막으로 김지운 감독에게 부러운 것은 간단합니다, 그는 미혼입니다. (폭소) 오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국에서 개봉하는 ‘박쥐’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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