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 행위의 大家인 달리가 사라진지 20년이 지났다. 달리의 예술에서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
요즘 퐁피두 센터에서 달리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달리의 작품을 보기 위해 퐁피두 센타로 몰리고 있는 현상은 달리가 여전히 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마뉴엘 조베(Manuel Jover) ?
1979년-1980년에 퐁피두 센터에서 열렸던 달리 전시회는 그때까지 열렸던 전시회 관람객 숫자의 기록을 깨뜨렸다. 8십 4만명이 넘는 관객들이 전시실 앞에 줄을 섰었던 것이다. 그렇게 당시 76세였던 달리의 인기는 확인되었다. 달리는 영감을 받은 미친 화가로서의 역할 또는 천재적인 화가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었다. 달리는 당시 지성인들의 냉대를 받고 있었는데 초매스컴화된 그의 이미지와 작품들로 관중을 매료시킴으로써 그 냉대에 확실하게 대응했던 것이다. 당시 지성인들은 달리가 초현실주의 시기를 지나친 이후에 혼자서 진지한척 학문적인 예술의 길로 들어서서 낡은 방법을 고수하는 공식주의가 되었다고 비난하고 있었다.
달리는 존경받지 못하는 듯싶었다. 달리는 성공과 돈에 과도하게 집착했고 자기 노출을 심하게 했으며 때로는 영특하기도 했지만 허세가 너무 심해서 동정심이 일정도였다. 달리의 이와같은 성향은 일부 팬들에게 반감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더 못봐주겠던 것은 그의 정치적 입장이었다. 달리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스페인으로 돌아왔을때 달리는 절대군주제를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했었는데 그것은 프랑끼스트 체제에 대한 충성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늘 그렇듯이 그의 엉뚱한 성향으로부터 나온 발상이었다. 이러한 정치적 입장 표명이 그를 그가 마음 속 깊이 좋아하던 고향 까따로뉴(Catalogne)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허용해 주었다. 달리는 프랑끼스트 체제에 아부하기 위해서 어린시절의 절친한 친구인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가 1936년 프랑끼스트 일당에 의해 살해되었을때 아주 흡족하다고 말을 했고 1975년에는 ETA(Euskadi Ta Askatasuma=스페인의 바스크 사람들로 이루어진 무장 독립단체로 마르크스 이론에 영향받은 단체)의 멤버들을 사형시켜야 한다고 표명했다…
달리는 새로운 후원자인 프랑끼스트를 위하여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1930년대에 달리는 히틀러에게 열광하게되어 초현실주의 그룹으로부터 축출 당한다. 달리는 주로 권력이 많은 인물들을 좋아했으며 스스로를 超人間으로 생각하여 니체의 저서, ‘善과 惡을 넘어서서’ 속에 나오는 니체적 영웅으로 자처했다.
달리의 권력을 향한 열정은 그의 성적 환상 또는 과대망상증과 함께 성적 영역에 속한다. 그러한 증상들은 도덕관념이 없다. 내 속의 고리타분한 나도 존재할 권리와 표현할 권리가 있는 반면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괴물들도 존재할 권리와 표현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사회 속에서 존재할 권리와 표현할 권리가 있는 내 속의 고리타분한 나와 내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괴물들 그리고 사회적 약속들은 같은 성격을 지니지 않는다. 그들 사이에는 경계가 있다. 달리는 자신의 에고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같다…
이제 달리가 사라진지 23년이 지났고 그의 요란한 도발 행위들로 매스컴을 더이상 사로잡지는 못하고 있지만 반세기를 차지해온 그의 작품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작업을 할수 있게 되었다. 바로 그점이 20세기의 중요한 화가였던 달리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이번 전시회의 요지인 것이다.
달리가 바로 초현실이다 !
달리는 마그리트(Magritte)와 함께 많은 대중에게 있어서 초현실주의 화가의 전형이다. 달리는 초현실주의 운동이 국제적으로 인정 받게 되었을때 망설임없이 자신이 바로 초현실임을 주장했다. : ≪ 내가 바로 초현실주의이다 ≫
달리는 1929년에 초현실주의 그룹에 가담한다. 그리고 앙드레 부르똥과 경쟁하게 된다. 그리하여 앙드레 부르똥이 제창한 ‘자동이론 원칙’을 비판한다. 이’자동이론원칙’은 사람은 무의식으로부터 나온 자료들을 수동적으로 입력하는데 만족한다는 이론이다. 달리는 ‘편집광적 비판적 방법’이라는 그만의 고유한 방법으로 앙드레 부르똥에 맞선다. ‘편짐광적 비판적 방법’은 현실을 정신질환적 방법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세계를 정신질환적 대화 속으로 합병하여 현실세계를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달리의 이런 방법은 얼마 후에 정신분석학자, 쟉끄라깡에 의해 인정받게된다. 달리는 정신분석학 책들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현실자체보다 더 진실이었음을 알게되었다.
생각의 흐름 속에서 얻은 이미지로 그림을 그리면 보이는 세계의 세세한 면의 묘사까지도 가장 설득력 있는 그림이 된다.
달리는 사진적인 정밀함(그는 그림이 손으로 만든 사진이라고 말을 하곤 했다)과 때때로 강한 진실성으로 그 자신을 내면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표현했다. 독창적인 풍경이란든지, 엄푸르단 평원( plain de l’empurdan), 해변과 캡크르 의 바위들, 가족들의 유령 또는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동생의 유령, 초기 엘살바도르 달리, 다른 세계에 있는 자신의 분신, 어린아이같은 공포증 또는 병적 집착,성적 집착, 동성애적 자기 도취, 자위행위, 항문 성욕, 분뇨취미, 거세, 죄의식, 공격성… 간략히 말해서 정신분석 상담실의 의자에 앉아을때 말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지만 화가의 작품들 속에서는 폭로되기 힘든 것들이다. 달리의 내면적인 기록과 내면의 독특함 그리고 집착이 강하고 욕망이 많은 정확한 기질에 뿌리 박은 특성들은 대부분이 몽환적이어서 가슴을 떨게하며 관객들에게 현기증을 일을킨다. 드물게 그의 그림들은 꿈 속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숙명들을 표현해 내는데 그 꿈 속 세계에서는 표면적으로 가장 앞뒤가 맞지 않고 엉뚱하고 지저분한 것들이 거부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 넓이가 무한대로 늘어나고, 몸에서 물렁물렁한 돌출부가 솟아난다. 시간을 알지 못하는 공간 속에 시계들이 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달리
달리는 유럽에서 빠르게 성공했지만 대단한 명성과 富는 미국에서 얻게된다. 달리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있는 기간동안 대부분의 예술가들(특히 초현실주의 그룹 예술가들)처럼 부인 갈라와 함께 미국으로 피신했다. 달리는 미국에 있는 기간동안 그림을 많이 그리지는 못했지만 행동영역을 다른 부분으로 넓혔다. : 즉 영화( 달리는 1920년대 말에 루이 부뉴엘 Luis Bunuel과 협동작업을 많이 했고 하르포 막스 Harpo Marx, 알프레드 히치코크 Alfred Hitchcock, 월트 디즈니 Walt Disney와 함께 일했다.), 공연( 발레와 연극 공연에 장식과 의상), 사진( 사진가 필립 할스만과 함께 일했다), 광고, 삽화, 패션과 보석 영역이다. 1942년에는 ‘살바도르 달리의 비밀인생’이란 책도 출판했다.
또한 달리는 미국에서 갈고리같은 콧수염을 자신의 대중적 이미지로 만들었는데 그 갈고리같은 콧수염은 광신과 과대망상증 그리고 시끄러운 노출주의의 혼합물이다. 달리는 자신을 엉뚱한 언어와 이상한 억양의 말투를 가진 인물로 만들어 신문잡지와 텔레비젼을 통해 사복을 채우게된다. 달리는 매스컴을 이용하는 천재성을 발달시켰으며 정규적으로 달리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곤 했던 앤디 워올이 달리의 영향을 받는다.
달리가 ‘핵신비론’의 개념을 정립하는 것도 1948년 스페인의 까딸로뉴로 돌아오기 전의 미국에서이다. ‘핵신비론’은 르네상스에서 이어받은 고전주의와 핵물리학 그리고 가톨릭의 영성을 종합한 것이다. 신은 물질 속에 있다. 가장 작은 원자 속에도 신이 있다. 많은 수의 예수 그리스도를 뒤이은 그림 ‘레다아토미카( Leda atomica 1949), 공중에 떠 있는 마돈나와 달리가 그린 ,19세기의 아카데믹한 화가들이 그린 큰 기계 그림들과 다른, 큰 기계 그림이 이 새로운 美學을 표현한 그림들이다. 달리는 19세기의 아카데믹한 화가들 중에서 어니스트 메소니에(Ernest Meissonier)같은 화가를 찬미했다. 달리는 이제 더이상 프로이드나 라깡의 이론을 참고하지 않았다. 달리는 하이젠베르그( Heisenberg, Mecanique quantique 이론을 세운 사람) , 십자가의 성인 요한 또는 아빌라의 테레사 성녀를 참고로 하기 시작했다. 베르메르와 벨라스께즈의 완벽함에 사로잡힌 고전주의자 달리는 새로운 것에 대해서도 욕심이 많았던 것이다. 달리는 자기 그림에 다른 그림들에서 취한 것들을 병합해서 축소하여 그림의 표면에 단순한 효과를 주었다. 달리는 과학 이론에 관심을 갖고 홀로그래피같은 새로운 기술로 실험을 했다. 그의 예술은 이제 모든것이 뒤섞여 있는 마녀의 냄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피규에라(Figueras)에 있는 달리의 연극 미술관이 그 기념물이다.
늙어가는 달리는 영원히 살아 있을 방법을 과학적으로 모색하기도 했지만 현대 화가로 자처한 구원자 살바도르 달리는 피규에라에 있는 자신의 미술관에서 파라옹, 레닌, 마오쩌뚱처럼 자신의 향기를 피우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달리는 이렇게 그의 작품 한가운데 살아있게 될 것이다.
달리 전시회
장소 : 퐁피두 센터
입장료 : 13 유로
전화 : 01 44 78 12 33
기간 : 2012년 11월 21일 ? 2013년 3월 25일
프랑스 유로저널 이혜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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