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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전체
2014.03.25 23:00
“한국·이탈리아 수교 130주년” 기념의 해! “프란체스코 교황 방문의 해”! 이탈리아로 팔려간「조선인 노예 영령 추모 행사」 개최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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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탈리아 수교 130주년” 기념의 해! “프란체스코 교황 방문의 해”! 이탈리아로 팔려간「조선인 노예 영령 추모 행사」 개최되어 “한국·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이자 “프란체스코 교황 방문의 해”인 2014년을 맞이하여, 일본인에 의해 이탈리아로 팔려간 조선인 노예들의 외로운 영령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행사가 3월 27일 국내에서 최초로 (사)세계와이크시티연맹 (www.newworld6.com)주최로 서울 청계천 광장 소라탑 앞에서 개최된다. 특허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개최된 제 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노예12년”이 흑인 바이올린 연주자인 솔로몬 노섭의 자서전에 나오는 실화를 배경으로 제작된 것처럼, 이번 행사는 피렌체 출신의 여행가이자 토스카나 공화국의 페르디난도 1세 밑에서 공직을 맡았던 프란체스코 까를레티가 “1701년 에 공식 출간한 ”동서인도 여행기“에 나오는 조선인 노예 안토니오 꼬레아의 실화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본 행사를 주관하는 안토니오 꼬레아 추모 기념 사업회에서는, 첫째 4백년 전에 일본인에 의해 마카오 · 인도 고아항 · 유럽 대륙으로 팔려간 수많은 조선인 노예들의 존재를 국사 교과서에 수록하기 위해 네이버 카페에서 백만인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둘째 본 사업회에서는 조선인 카톨릭 순교자 124명의 복자 등극을 계기로 프란체스코 교황의 8월 방한이 확정된 금년에, 카톨릭의 조선 최초 포교의 역사가 124명의 복자들이 순교한 신유박해(1801년)가 아니라, 임진 · 정유재란(1592년~1598년) 기간에 일본 종군신부로 한반도에 처음 상륙한 스페인 라만차 지방 출신의 예수회 신부인 그레그리오 데 세스페데스 신부로 올라간다는 역사적 진실도 새롭게 조명할 계획이다. 셋째 408년 전인 1606년 7월 12일에 프란체스코 까를레티와 함께 이탈리아 피렌체에 도착한 조선인 노예 안토니오 꼬레아의 기구하지만 박진감 넘치는 삶을 새롭게 스토리텔링해서, 조선 선비의 문화와 역사를 해외에 널리 알리는 다양한 한류문화콘텐츠 (뮤지컬,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컴퓨터 게임) 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이미 2013년에 경상북도와 경주시가 실크로드의 도시 이스탄불에서 개최한 경주 세계문화 엑스포의 총감독이였던 표재순 배재대학교 한류문화사업대학원 석좌교수는 역사소설「안토니오 꼬레아」정준 작가와 함께 뮤지컬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인이 저지른 또 하나의 만행으로 기록될 조선 노예무역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까를레티의 유일한 저서인「동서인도 여행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도 대단히 드라마틱하다. 성공회 제 3대 조선교구장 이었던 트롤로프 신부는 동양문화 연구자로 명성을 떨치던 학자였는데, 그는 1만권이나 되는 조선 관련 문헌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단히 불행하게도 그는 1930년 11월에 일본 고베항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선박충돌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 후 일본의 역사학자인 야마구치 박사가 경성의 정동교회에 방치되어있던 1만권의 문서들을 열람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 ‘란디스 문고’를 보게 된다. 이 문고는 1890년부터 10년 동안 인천에 체류했던 성공회 신자이자 의사였던 란디스 박사가 수집한 동양에 관한 유럽인의 연구자료를 모은 것이다. 야마구치 박사는 이 문고 속에서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프란체스코 까를레티가 저술한 「동서인도 여행기」를 발견한다! 1932년 야마구치 박사는 자신의 논문 “임란중 포로의 행방 - 조선인 노예 매매의 예”에서 이탈리아로 팔려간 조선인 노예 안토니오 꼬레아의 존재에 대해 최초로 발표한다. 그런데 1932년 3월 경성 성공회 아뇰드 신부가 고인이 된 트롤로프 주교가 소장하고 있던 「동서인도 여행기」를 번역한 조선인 노예 안토니오 꼬레아에 관한 내용이, “일본 아시아 학회지”에 공식 발표된다. 이 처럼 일본역사학자와 성공회의 서양인 신부에 의해 자칫 역사 속에 영원히 묻힐 뻔한 일본인이 자행한 또 하나의 만행인 조선인 노예무역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러한 내용은 1965년 진단학회에서 발행한 “한국사 - 근세후기 편” 128쪽과 498쪽에 기록 되었다. 또한 이탈리아에서 발간한「동서인도 여행기」는 1964년에 미국에서 「나의 세계 일주기」란 제목으로 영문으로 출판되었다. 조선인 노예 안토니오 꼬레아의 존재를 최초로 발표한 일본 야마구치 박사는 자신의 논문에서, ‘조선의 해안가 마을에서 엄청난 수의 부녀자와 아이들과 늙은 남녀들이 일본에서 노예가 되어 헐값으로 팔려가는’ 비극적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 그리고 안토니오 꼬레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상세히 발표했다. “나는 12스키우드 (30엔)에 조선인 5명을 매입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세를 주고 인도 고아항까지 가서 4명을 풀어주었다. 그러나 한 사람은 피렌체까지 함께 왔으며, 그는 지금 로마에 살고 있는데 이름은 안토니오 꼬레아 이다.”
※ 까를레티의 책 사진 ◆ 그런데 1987년 영국 크리스티 경매장에 유럽의 명성 높은 궁중화가인 피터 폴 루벤스가 그린 채색 드로잉화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인물이 4백년 전에 유럽에 살던 조선인으로 밝혀져 큰 화제가 되었다. 이 초상화가 최초 출품될 때 제목은 고대 태국의 관리를 의미하는 “샴 대사” 였다. 그러나 한국의 복식 전문가들이 초상화의 주인공이 머리에 쓴 모자가 ‘망건’이고 의상은 조선시대 무인들의 평상복인 ‘철릭’이라는 사실을 고증하면서, 그림 제목이 “한복입은 남자”로 바뀌었다. 그 후, 이 초상화를 드로잉 경매 사상 최고가로 매입한 미국의 석유재벌인 폴게티 가문에서 LA의 폴게티 박물관에 소장할 때, 그림의 제목을 “코리언 맨 - 안토니오 꼬레아”로 최종 확정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한국인들은 프란체스코 까를레티의 저서에 나오는 안토니오 꼬레아의 초상화를 직접 보는 감격을 갖게 되었다.
※ 작품명 : 「코리언 맨 - 안토니오 꼬레아」 그리고 1980년 대 말에 KBS-TV 유럽 특파원 이성수PD에 의해 이탈리아 남북 칼라브리아 지방의 알비라는 산간마을에서 “안토니오 꼬레아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을 극적으로 취재하게 된다. 이성수PD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단숨에 취재하러간 그곳은 은회색 올리브 숲이 우거진 실라(Sila)산 기슭에 자리 잡은 조그만 알비(Albi)마을이다. 꼬레아 집성촌인 그 마을에는 많은 꼬레아들이 참여하는 ‘울리보 실라노’라는 문화단체가 있었다. 문화단체의 회원으로 활동하는 꼬레아들은 알비시에 건의하여 받은 예산으로 한국을 상징하는 태극기를 주제로 하는 ‘꼬레아 광장’을 만들고, 한국 여성과 이탈리아 여성이 서로 손을 잡고 있는 ‘만남의 탑’도 세웠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인처럼 매운 음식을 즐겨먹고 올리브나 오이 등을 소금물에 절여 돌로 보관하는 독특한 식습관과, 해마다 연말에서 신년사이에 약 열흘 남짓동안 한국의 정월대보름 풍습과 비슷한 커다한 모닥불을 피워놓고 밤낮으로 그 주위를 돌며 잡귀를 쫓는 놀이를 하는 것을 대단히 자랑스러워했다. 이탈리아 남부지방의 산간오지에 사는 이탈리아인들이 스스로 “안토니오 꼬레아의 후손”이라는 믿음을 굳게 안고 살고 있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 대단히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이처럼 프란체스코 까를레티의 저서 「동서인도 여행기」, 임진·정유재란 때 일본과 조선을 왕래한 예수회 신부인 세스페데스 신부와 프로이스 신부의 증언과 바티칸에 보낸 편지, 유럽의 유명한 궁중화가인 피터 폴 루벤스의 채색 드로잉 초상화「코리언 맨 - 안토니오 꼬레아」, 이탈리아 알비시에 있는 꼬레아 집성촌의 존재 등을 통해 4백여년 전에 일본인이 자행한 “조선인 노예 무역”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이제 “한국·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이자 “프란체스코 교황 방문의 해”인 2014년을 맞이하여, 인간의 존엄과 인권을 짓밟히고 짐승처럼 팔려간 조선인 노예들의 한 많은 영령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사업을 전개해 나가기 위해, 3월 27일 서울 청계천 광장 소라탑 앞에서 「안토니오 꼬레아 408」행사를 개최됨으로써 많은 관심이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사찰학춤 추는 백성스님 사진」 3·1절에 「조선인 노예 추모 퍼포먼스하는 정준작가 사진」 이탈리아 유로저널 김대균 통신원 eurojournal29@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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