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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2014.04.01 04:18
또 하나의 '한류', 미지의 개척자 이근태- 당신은 또 하나의 대한민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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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한류', 미지의 개척자 이근태- 당신은 또 하나의 대한민국 입니다. 맨 주먹 하나로 높기만 한 유럽의 벽을 깨트린 사람이 있다. Dr.Lee(이근태)가 그 주인공이다. 30여 년 전 불모의 독일 땅에 태권도로 씨앗을 뿌리고, 지금은 독일 전역에 70개의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근태 사범은 3대 인명사전의 하나인 Who is Who 에 힐러리 클린턴, 마이클 잭슨, 오프라 윈프리 등과 같이 등재되어 있을 만큼, 그의 명성은 자자하다. 소를 팔고 논을 팔아 그를 대학교에 보낸 부모 곁을 떠나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독일 땅에 오게 된 동기는 매형의 권유가 크게 작용했다. 끈기와 패기, 열정을 지닌 그의 성격을 잘 아는 매형은 독일 진출을 기회 삼아, 그의 삶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공대 토목과를 졸업한 그였기에 당시 한창 붐이 일었던 사우디를 가려다가 자신의 고향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했던 사범의 권유에 결국은 독일행을 감행했다. 당시에는 누구나 그러했듯이 3년만 고생하면 고향에 땅도 사고, 집도 살 수 있다는 신념으로 그 역시 지하 1000미터가 넘는 깜깜한 굴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그리며 열심히 일했다. 혹독한 도전의 공간에서 그는 일을 통해 독일을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했고, 체격이 크고 콧대가 높은 독일인들의 자존심을 꺾어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언젠가는 한국의 태권도로 그들을 사로잡으리라는 꿈을 막장에서도 잃지 않았다. 당시 영주권이 없으면 도장을 낼 수 없던 시절, 독일인의 명의를 빌리고 주위 한국인 동료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첫 번 째 도장을 열었지만, 잠시 한국에 휴가를 다녀오는 동안 독일인 동업자가 사기를 치는 바람에 그가 피땀 흘려 일군 도장을 삽시간에 잃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도장에서 아들과 함께 태권도를 배웠던 독일인 제자 아틸라 아탁의 도움으로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돈이었던 3만 마르크를 지원받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지금은 요양원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아틸라와 재회를 할 때마다 그는 늘 목이 메인다. 먼 아시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생면부지의 그를 끝까지 믿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아틸라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3년 동안의 광산 생활 중에도 그는 일이 끝나면 도장에서 살다시피 할 만큼 그의 인생에서 태권도는 그의 전부이자, 마지막 이었다. 태권도 9단, 쿵푸 10단, 국술원 9단, 해동검도 9단, 합기도 9단, 킥타이복싱 10단 총 56단의 단을 보유하고 있는 그는 그저 기술만 가르치는 사부가 아니다. 무엇보다 예를 가르치고, 자기 권리만 주장하지 않고 남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배려를 가르치고, 늘 힘든 사람을 도와주라는 상부상조의 정신까지 운동을 통해 가르친다. 그래서 그에게 운동을 배운 사람들은 우선 삶이 변하고, 남을 배려하고 인내하는 품성까지 바뀌게 된다. '마이스터 리'를 만나면 마음이 설레고 가슴이 뛰고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하다는 그의 제자들은 그를 통해 한국 무술을 존중하고, 인격을 성숙 시키면서, 사부님의 나라 대한민국을 가장 가고 싶은 나라로 손꼽는다. 그의 제자 중 하나인 마이코는 이근태 사범의 성을 따라 마이코 융, 리 라고 성을 바꿨을 만큼 그에 대한 제자들의 존경심은 상상을 초월한다. 마이코 엄마는 자신의 아들에게 Dr.Lee의 성을 허락한 이근태 사범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자랑스러워 하기까지 한다. 유명 스타를 능가하는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는 무술인이자 자선 사업가로 또한 유명하다. 그가 태권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척박한 독일 땅에서 지금의 열매를 맺기까지 받은 사랑을 사회에 다시 환원하기 위해 범죄예방 프로그램과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에 무술을 접목시키며 무료로 봉사를 하고 있다. 하노버 시 시장은 이런 그의 노력이 사회변화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문제아동들과 비행청소년들의 범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고마워 했다. 태권도를 배우면서 한국을 알게 되고, 무술의 정신 세계를 알고 한국을 존중하게 되었다는 그의 제자들과 부모들의 한결같은 칭찬은, 그가 제자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가치와 정신을 강조했기 때문일 것이다. 수십 년 전 아무 연고도 없는 독일 땅에서 한국의 얼과 정신을 남모르게 뿌린 그의 씨앗은 지금은 태권도를 사랑하는 독일인들의 신체적,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지난 해 한국에서 열린 국제무예올림픽 대회에 참가한 그의 제자들은 총 60개국이 참가한 대회에서 5 종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가 제자들을 통해 선보인 무술은 본국에서도 교과서가 될 만큼 빼어났고, 스승의 나라를 찾아간 그의 제자들은 대회에서 거둔 성과를 자랑하며, 한국을 널리 알리는데 앞장 서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이제 유럽인들은 태권도가 상대방을 이기고, 공격하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 기술에 앞서 인격을 수련하고, 상대방에 대한 예를 지키며 인격을 성숙 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서서히 알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무술 시범으로 깨트린 벽돌은 63빌딩을 능가하는 높이에 다다른다. 조국을 알릴 수 있는 자리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언제든지, 어느 곳이든지 달려갔기 때문이다. Dr.Lee! 그가 가는 곳에는 어김없이 태극기와 한글, 한국문화가 그곳에 있다. 대회가 열리는 대회장에서는 일단 태권도에 예를 표하고, 대회 장소로 들어가는 그의 제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천 미터가 넘는 지하막장에서 이제는 존경 받는 사범으로, 맨 주먹 하나로 동양인에 대한 편견을 깨트린 유럽인의 무술사부로, 움직이는 민간외교관으로 그의 태권도 사랑은 마침표가 없다. 두려움 없이 유럽에 맨주먹 하나로 건너온 그는 이제 64세 장년이 되었지만, 지금까지처럼 앞으로 전진하며 한국을 알리고,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영원히 도복을 벗지 않을 것이다. 광산 일이 끝나면 풀통과 광고물을 들고 다니며 곳곳에 태권도를 알렸던 그가, 이제는 유럽을 평정하며 Meister Dr.Lee로 우뚝 선 그의 열정과 노력은 우리 후세들에게도 자랑스러운 선조가 될 것이다. '당신은 또 하나의 대한민국 입니다'
독일중부 유로저널 김형렬 지사장(hlk195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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