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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간호사 연극단 ‘빨간구두’, 대학로서 모국방문기념 공연 펼쳐

베를린에서 온 편지, “파독간호사들의 타향살이 애환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 담아”



대한민국 경제건설의 방점을 찍었던 파독 간호사들이 4월 27일 흰 머리 성성한 노인이 되어 모국을 방문해, 특별한 공연을 펼쳤다. 파독간호사 연극단 ‘빨간구두’가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자신들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 ‘베를린에서 온 편지’를 열연한 것이다.


전원이 파독간호사로 이뤄진 ‘빨간구두’ 연극단은 2013년 4월 결성된 이래 독일 현지에서 4회 공연을 마쳤고, 이번 공연이 다섯 번째다.


이들이 열연한 작품은 ‘베를린에서 온 편지’로, 50년 전 독일로 떠나기 직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파독간호사들의 타향살이 애환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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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듬어진 연극인의 연출된 몸놀림이 아닌, 평범한 파독 간호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았기에 어눌한 감동이 눈물과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공연이 끝난 후에는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파독에 대한 궁금증을 실제 인물들에게 들어보는 순서도 마련되어 세대 간 소통의 좋은 시간을 가졌다.


빨간구두 김금선 단장은 “이 연극은 파독 간호사들이 직접 자기들의 삶을 연극으로 담은 내용”이라며 “파독 간호사들이 직접 펼치는 이번 공연은 타국에서 겪어온 지난 반세기를 추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공감의 장이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파독간호사 모국초청 지원사업을 주관한 함께하는 사랑밭 관계자는 "‘빨간구두’ 연극단은 이미 독일에서 4회나 공연을 올린 적이 있지만, 한국에서는 처음이고 한국어로 열연하는 것도 처음이라 매우 의미가 깊다”며, “파독 간호사들의 이번 공연과 모국방문으로 젊은 세대들에게 파독 역사 재조명의 기회를 제공하였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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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공연에는 가족 및 친지, 일반 시민 등 500여 관객들이 객석을 가득 채워 파독 간호사들의 무대를 축하했으며, 함께하는 사랑밭 홍보대사인 연극인 성병숙 씨가 사회를 맡았다. 함께하는 사랑밭 관계자와 하나금융그룹 관계자, 연극인복지재단 소속 배우들, 영화 ‘국제시장’ 윤제균 감독을 비롯하여 함께하는 사랑밭 홍보대사인 배우 장광, 오인혜, 이아린, 가수 백청강 등이 참여하여 파독간호사들의 고국방문을 축하하고,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을 보고 난 한 70대 관객은 “너무 감동적인 무대였다. 나도 파독간호사 출신인데, 옛날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다. 그렇게 못 살던 우리나라였는데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니 신기하고 기쁘다”며 “오랜만에 옛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고, 동료들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밝혔다.


빨간구두 연극단을 비롯한 파독간호사 일행은 또한, 지난 4월 23일부터 오는 30일까지 7박 8일 간 한국에 머무르며 고국의 아름다운 문화를 체험하고 그간의 애환과 향수를 달랬다.


파독간호사들의 이번 방문은 하나금융그룹이 주최하며 함께하는 사랑밭,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이 주관하고, 외교부와 롯데호텔, 재외동포재단, 주한 독일대사관의 공동 후원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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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온 편지> 주요 배우 프로필


1. 현자 역/ 김금선

2. 선례 역/ 김헌숙

3. 문자 역, 카타리나 역/ 최복님

4. 양자 역, 영순 역/ 정유선

5. 덕심 역/ 이묵순

6. 마기트 역, 라디오 역/ 박화자

7. 김천댁 역, 힐데브란트 역/ 조송자

8. 마리아 역/ 강주은

9. 의사 뮐러 역/ 우베

10. 종철 역/ 김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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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온 편지> 주요 스토리 - 20인


1. 김금선(배우)/ 간호원

- 1970년 마지막으로 온 파독 간호사. 올해 1월 정년퇴직.
- 한국에서 공부할 여건이 안된 소아마비 동생의 교육을 위해 파독 결정. 현 충북대 김용기 교수가 동생.
- 암 투병 속에서 오뚝이처럼 일어섬.
- 베를린 가야무용단 창단 멤버. 현 베를린 한글학교 무용반 지도
- 베를린 간호협회 회장 역임. 극단 <빨간구두> 대표.

2. 김영옥(초청)/간호보조원

- 고3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심. 어린 남동생 세 명이 있어서 돈 벌기 위해 독일행. 8살 위인 언니는 시집감.
- 시집 간 언니와 형부가 와서 아버지 장례식에 와서 살 궁리를 함. 당시 1년 동안 숙성으로 간호 보조원으로 보내는 케이스가 있어서 친척들에게 돈을 꿔서 다님. 1972년 10월 파독.
- 당시 독일에 살려면 독일 국적을 취득하는 게 낫다는 분위기였음. 한국 국적을 내놓았을 때가 가장 마음이 힘들었음
- 72년부터 83년까지 매달 한국에 송금. 이후는 용돈 식으로 자주 보냄. 한국은 경제적인 이유로 10년 만에 방문함.
- 아이 둘 키우면서 3교대가 힘들어 가정방문 간호사가 됨.
- 어린 시절 꿈이 화가였는데 지금은 서예를 배우기도 함.

3. 박말숙(초청)/ 간호원

- 9남매 중 막내
- 어릴 때부터 세계지도를 좋아했고, 선진국에서 공부하고 싶은 꿈. 미국에 가려다가 독일행. 대구 동산 간호학교 졸업
- 고향인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에 영국 사람이 지은 별장이 있었음. 선진국 사람들이 여름에 즐기고 감. 그게 부러워 선진국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함. 외국 나가는 방법은 의사나 간호원이 되는 길이었음. 그래서 간호학교 지원.
- 1976년 파독. 월급의 대부분을 외환은행을 통해 송금. 한국 월급보다 3배가 많았음.
- 10년을 일하고 아이 낳고 양육을 위해 직장 퇴직
- 15년 전에 한국 방문하고 이번에 오랜 만에 갈 기회.
- 공부에 대한 미련 때문에 나이 들어 독일 야간 고등학교 4년을 다닌 후, 2011년 베를린 자유대학 중국어학과 입학.
- 현재 가야무용단, 합창단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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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헌숙(배우)/간호원

- 아나운서나 기자가 꿈이었지만 한국에서 대학에 떨어짐. 그래서 간호사가 됨. 인천 출생.
- 경기 간호학교 졸업 후 병원 근무. 1970년 파독. 먼저 독일 간 친구 언니가 너무 좋다고 해서 무작정 지원함. 집안이 가난하진 않았지만 부유한 편도 아님. 6남매 중 둘째.
- 부모의 반대가 심했지만, 독일 보내 주지 않으면 수녀가 되겠다고 해서 간신히 독일 옴. 어머니가 헌숙을 잡아놓으면 미칠 것 같아 보내주었다고 함.
- 처음 독일 온 후, 병실 테이블 청소하라는 말에 분개해 독일 간호사들과 맞섬.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해서 독일병원에서 난리가 남.
- 독일 병원 내 한국 간호사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앞장 섬.

5. 김종숙(초청)/ 간호보조원

- 서울 이화여고 졸업. 대학 갈 자신이 없어 독일 행 결정. 본인 말로 가출이었음. 가정은 부유한 편이었음. 당시 유치원에 다닐 정도.
- 할아버지가 항일투쟁을 했고, 아버지와 큰아버지를 낳음. 큰 아버지 형제들은 잘 살았음. 어릴 때부터 비교됨. 큰집 언니는 숙대 부총장 역임.
- 집은 목포였는데 학교는 서울에서 다녔음. 친구랑 다시 목포에 내려와 간호보조원 양성소에 다님.
- 1972년 파독. 6개월 동안 집에 연락하지 않음. 처음엔 외로워서 죽으려고 수면제를 다량 먹음. 병원에서 골칫거리였음. 그래서 병원에서 3년 연장 비자를 내주지 않음. 그때 독일 남편을 만나 결혼함.
- 아버지가 제주농고 출신으로 수의사, 공무원 역임. 당시 여학생 잡지를 보내주기도 함.
- 그때는 외로웠고 힘들었음. 아침에 빵을 독일사람들은 하나만 먹는데 3-4개 먹었음. 늘 배가 고팠고, 정에 고팠음.
- 고국에 가고 싶은 마음은 많음. 하지만 이제는 다른 길이 없음. 여유가 없음. 블라우스 하나를 50유로 넘는 거 사본 적이 없음. 한국 젊은 사람들 사치하고 다니는 것 보면 세월 무상을 느낌.
- 현재 겨레얼 살리기 베를린 지부에서 봉사활동

6. 박화자(배우)/ 간호원

 - 충북 제천 보건소에서 일하다 해군 간호장교가 됨.
 - 진해 미군병원에서 일하면서 미국으로 갈 수 있었음. 미국은 그 당시 모두에게 로망. 그때 월남전이 터졌음. 월남전에서 돌아온 환자들을 돌봄. 밤낮 없이 일함. 팔다리 없어진 것은 보통이고 머리통 깨져서 온 사람도 많았음. 미군 병원에 있어서 의사나 간호사들이 미국 가라고 추천했음. 하지만 그때 비자가 굉장히 비싸고 오래 걸렸음. 우선 신청은 해놨다가 파독 간호사 파견 광고를 보게 되어 독일행 결정.
- 베를린 템펠호프 공항에 도착. 어떤 독일 여자가 왔는데, 등치도 크고 금발머리였음. 처음에는 무서워 보였음. 템펠호프에 내렸을 때 말을 못하니까 각각 교도소 수형자처럼 번호를 매겨주었음. 몇 번까지 그룹으로 배치해 이송. 각각 병원으로 이동하는데, 당시 아우구스트 빅토리아 크랑켄 하우스로 배정받음.
- 1970년 파독. 독일 오기 전 부채춤을 배움. 현재 우리무용단
- 아버지는 여기 오던 해에 돌아가셨음.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가 벌써 4년 됨.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왔고 동생이 울었음. 엄마가 계속 아팠지만, ‘화자한테는 알리지 마라’ 고 했다고 함. 그리고 돌아가셨다고 함. 부랴부랴 티켓을 끊어 한국에 감. 형제들이 어머니 입관식을 늦추고 기다림. 하루 후에 입관식 하고 장례 치름. 
- 독일남편과 결혼 16년 만에 이혼할 때 가장 힘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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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충순(초청)/ 간호원

- 적십자 간호학교에서 1년간 일함. 3년만 유럽을 보자고 해서 76년 독일행. 그게 40년이 됨.  당시 마지막 파독 간호사라 경쟁률 치열. 2015년 정년퇴직
- 처음에 왔을 때 월급의 80%를 한국에 보냄.

8. 이묵순(배우)/간호보조원

- 집안의 구속이 싫어 도피하고자 독일행. 어릴 때부터 165cm가 넘는 키에 얼굴도 좋아서 늘 동생이 보디가드.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지만 형제들이 3년만 있다 오게 하라고 설득해서 결국 독일 올 수 있었음.
- 비행기 안에서 도착하기 전에 한복을 갈아입으라 함.  비행기 안에서 번호를 나눠줌, 번호를 달고 내리는데 독일병원 간호과장이 나와서 번호를 불렀음. 누구는 어느 병원이라고 배치를 해줬음. 짐승들이 어디 팔려가는 느낌이 들었음.
- 1970년 독일 올 당시, 어머니가 9번째 동생을 낳음. 독일 오자 해방된 느낌. 동생들 위해 돈을 송금하긴 했지만 돈 모아서 여행가는 것에 관심이 많았음.
- 언어가 힘들어 눈치보며 독일 간호사들보다 2배 일을 함. 한국에서 간호사 생활을 안해보았는데 눈치 보고 함.
- 자유를 누리고자 72년 자동차를 한인 간호사들 중 맨 먼저 구입. 로마로 스페인으로 돌아다님.
- 병동에서 언어 때문에 웃지 못할 헤프닝이 많음. 엔테(오리)를 가져오라고 해서 ‘오리’를 잡아오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소변기 였음. 이런 일들이 부지기수.
- 현재는 우리 무용단에서 활동.

9. 홍표련(초청)/ 간호보조원

- 6남매 중 장녀. 당시 강화군청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부유한 편. 아버지의 외도를 알고 난 후 탈선. 공부하길 원하는 아버지 기대를 저버림. 인천 강화에서 은행원으로도 6개월 일함.
- 기대를 저버린 딸을 아버지가 외면해 집을 떠나고 싶어 보조원 양성소 교육 후 1972년 독일행.
- 통일 후 동독 환자들이 ‘너네 나라로 가라’며 천대할 때 정말 힘들었음.
- 베를린 노이쾰른 병원에서 근무. 몸이 아파서 2005년에 조기 정년퇴직. 독일 시어머니 모시고 삶. 당시 오른 손에 문제가 있어 수술. 수술한 결과가 안 좋아서 오른 손을 많이 못 썼다. 심장도 안 좋고 당뇨, 장도 안좋았음,
- 현재 93세인 한국에 치매 어머니가 생존해 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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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안영임(초청)/ 간호원

- 광주 간호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 한남초등학교 양호교사로 일함.
- 그때 미국에 가고 싶었음. 미국이 선진국이고 미제샴푸 등 좋아했음.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나눠져 있었기 때문에 미국이 선망의 나라였음. 간호고등학교를 가는 것은 미국에 가는 것. 하지만 부모님이 외국 나간다는 자체를 반대. 서류 다 해놓고 말함.
당시 1차에 오신 분은 얼굴이 안 이뻐서 비행기에서 쫒겨났다고 1차에 가신 분들의 기사가 나옴. 일이 한국과 달라서 오지 말라고 하는 소문이 났음. 그래서 독일 가는 것을 많이 반대함. 독일행 합격했다니까 ‘누나가 이쁜가 보다’ 하고 남동생이 말함.
- 어린 시절의 꿈은 기자. 속기를 쓰는 것을 좋아함. 7남매 중 5째.
- 1966년 파독
- 베를린 간호협회 회장, 인권옹호회 부회장 역임
- 당시 광부로 와서 이곳에서 정치학 공부를 하게 된 한국 남성과 결혼. 한국에 가서 살고 싶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음.
- 의과대학 공부를 안한 것이 지금도 후회
- 독일 와서 음식이 젤 힘들었음. 그리고 환자들의 체취(노랑네). 빵을 먹다가도 고추장을 먹어야 직성 풀림.

11. 조송자(배우)/ 간호원

- 아버지는 독립운동가로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
- 64년 수녀원에서 뽑은 간호학교 학생에 선정되어 독일에 오게 됨.
- 독일에 와서 3년 간호공부를 하고 졸업함.
- 세계를 구경하고 싶은 호기심에 독일에 오게 됨.
- 독일 와서 여러 군데 병원 간호사로 일함.
- 작은 동생은 베를린 공과대학에 유학시켜 현재 아우스부르크 코카라는 로봇 회사에서 일하고 있음.
-  간호사로 일하면서도 코스메틱 직업교육 받음.
- 91년에 연화무용단 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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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김도남(초청)/ 간호보조원

- 서울사대를 응시했다가 떨어져 독일행
- 독일 오려고 간호보조원 양성소 다님. 독일 간다고 하니 아버지가 극심하게 반대. 결국 작은 어머니에게 6만원을 빌려 한복도 사고 독일 갈 준비함. 독일 와서는 아버지에게 잘 왔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복수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에게 거의 전액 송금. 당시 국회의원 월급보다 많았다 함.
- 외국인 노동자로 너무 힘들어 자식 낳으면 외국인 노동자로는 보내게 하면 안되겠다 싶어 한국에 가서 살 생각함. 그래서 여전히 한국 여권 소지.
- 간호사 생활하면서 여행사를 15년 동안 경영. 홍삼 판매 상담 사업 25년을 하면서 억척스런 한인여성으로 살아감. 
- 최근엔 야간에 대학에서 경제학 공부를 하고 있음.

13. 나춘자(초청)/ 간호보조원

- 어린 시절 신안군 지도라는 섬에서 살았음. 형편이 넉넉지 않아 독일행 결정
- 72년 파독. 배정된 병원에 한국 간호사 5명이 함께 옴. 매달 1000마르크 씩 고국에 보내기 위해 계를 만들기도 함.
- 한국에 돌아가려고 했지만, 한 번은 한국에서 살려고 한국을 방문했는데, 그때 독일에서 가져간 많은 돈을 버스 터미널에서 소매치기 당한 후 한국에 대한 정이 떨어짐. 독일 정착하려고 함.
- 어린 시절 교사 부인이 되는 게 꿈이었음. 영국에서 신학공부를 한 목사와 결혼. 베를린 늘푸른교회 창립
- 이후 남편이 공부를 더하기 위해 캐나다로 이주. 남편의 간암 발병과 40대에 사망. 독일 와서 이후 다시 생계를 위해 간호사 생활 함. 두 아들의 어머니. 혼자 아들 키우면서 일할 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남.
- 현재 여건은 어려움(생계보호 대상자)이 많음. 죽을 때까지 남을 돕고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소망. 그 당시에는 과부가 그분 혼자였음.. 서류 쓸 때도 과부를 쓰면 창피했음. 드러내놓고 싶지 않았음. 이 나이 되니까 홀로되는 사람이 많음. 그때 얼마나 힘들었냐고. 그분들이 전화 오기도 함. 사별동행을 실천.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 슬퍼해주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게 그분의 바람.

14. 최복님(배우)/ 간호보조원

- 대학에 떨어져서 친구와 독일행 결정. 간호보조원 양성소 다님.
- 1970년 파독
-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서 75년 간호사 생활을 그만 둠.
- 남편 사업을 도움.
- 현재 가야금 배우고 연극 배우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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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최영희(초청)/ 간호보조원

- 아버지 돌아가시고 생활이 어려워짐. 돈 버는 가장 빠른 길이 간호사. 1970년 파독
- 당시 면사무소 가족계획요원으로 일하다 독일에 옴.
- 베를린 슈판다우 병원에서 일했는데 처음에 힘들었는지 결핵에 걸림. 6개월을 쉬게 됨. 오자마자 아파서 속상함. 그래도 독일에 온 것을 다행이라 생각함. 아마 한국에서 살았으면 결핵에 걸려 죽었을지 모름.
- 이후 2년 동안 간호학교 다님.
- 독일 와서 언어와 문화 차이 등이 어려웠음. 일일이 표현하지 못할 정도.
- 2011년 퇴직. 형편 때문에 한국을 자주 방문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가게 되어 너무 좋음.

16. 문선숙(초청)/ 간호원

- 당시 라디오 연속극을 보는데 주인공이 간호원. 그래서 간호학교를 들어감.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친구들 3명과 경상도에 있는 간호고등학교에 들어감. 집에서는 여상을 들어가서 은행을 들어가면 좋겠다고 주산도 배우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했음.
- 간호학교 졸업 후 부평의 작은 병원에서 근무
- 외국에 나가고 싶어 74년에 독일행.
- 베를린 발트 크랑켄 하우스 왔을 때 13명 정도가 한국 사람. 수술실에서 시작했는데 한  국 사람이 4명이 있어서 비교적 편하게 병동생활 함.
- 현재 현직에서 일하고 있음. 나이들어 병든 사람들이 있는 양로원에서 일하고 있음. 밤근무가 마음이 편해서 늘 밤근무. 하지만 일이 많아서 너무 힘들긴 함.
- 양로원 근무 관련 에피소드 많음.

17. 정유선(배우)/ 간호보조원

- 아버지 사업이 망해서 1970년 독일행.
- 당시 큰아버지가 사망해 큰집 식구들까지 부양하는 바람에 생계가 더욱 어려워짐
- 해외개발공사에서 간호보조원으로 오게 됨. 1년 정도 보조원 교육받고 적십자 병원에서 실습을 함. 이후 우리집에서 자란 친척 언니의 남편이 군인이었는데 군의관이 병원을 개업해 그곳에서 일함. 당시 독일로 지원했는데 하필 동백림 사건이 생겨나 곧바로 오기가 힘들었음. 합격은 해놓고 중단이 되었다가 결국 70년 3월 19일에 오게 되었음.
- 고등학교 때 독일어를 배워서 말을 곧잘 해 독일 동료들이 좋아함.
- 음식이 너무 힘듦. 독일음식은 손도 대지 못함. 제일 먼저 산 물건은 밥솥임.
- 독일 올 때 어머니가 먹을 것을 잔뜩 싸주심. 사실 독일 온 후 7년 동안이나 음식이 맞지 않았음. 어머니가 김치, 멸치튀김, 김 부각, 소고기추장 등을 싸주셨는데 20kg 중에 먹을 것이 12k, 옷은 8k 였을 정도. 어머니가 양철통에 땜질을 해서 김치까지 싸주셨는데 독일 도착해 짐을 잃어버렸음. 결국 우리를 안내하는 선배언니가 통역을 했고 가방이 바뀌었음을 알아냄. 한 달 후에 가방이 옴. 짐이 오기 전 환영파티할 때 한복 입고 기념사진을 찍어야 했는데 한복이 잃어버린 짐 속에 있었기 때문에 입을 수가 없었음. 결국 사진사가 한국에서 온 편지를 들고 개인사진을 찍으라고 함.
- 이후 한국 유학생과의 사이에 딸이 있음. 유학생은 한국으로 돌아가서 헤어지고 독일인과 결혼. 그리고 이혼. 힘든 삶을 살았던 분.
- 아버지 임종과 장례식에 못 간 게 인생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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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이윤희(초청)/ 간호원

- 75년에 독일 옴. 7살 차이 나는 언니가 일찍 결혼해 집안에서 장녀 노릇함.
- 70년 국립의료원 간호학교 입학해 졸업 후 간호사 생활.
- 독일로 간 3년 선배의 권유로 독일행 결정. 집안 형편도 어려웠기에 결정을 쉽게 할 수 있었음.
- 독일 병원에서 언어 못하면 무시를 당했음. 한 번 말해서 모르면 무시했음.
- 월급을 받으면 거의 다 송금했음. 겨울에는 추운데 담요 한 장 겨우 사고, 월급의 3분의 2 이상을 송금. 주말에는 다른 병원에 가서 아르바이트 하기도 함.
- 당시 독일인들은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음. 우리들에게  뭘 알면 얼마나 알어, 하고 무시했음.
- 공부하고 싶어하던 한국 남편은 공부를 더하지 못하고 일하게 됨. 지난해 10월 남편 사망 후 그해 12월, 아들이 베를린 공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음. 학위증을 아버지에 무덤에 바침. 아들이 아버지의 소원을 이뤄준 것.
- 지금은 생활을 위해 미니잡(매달 450유로 이하) 일을 하기도 함. 목 디스크도 있음. 신앙의 힘으로 살고 있음.

19. 유재열(초청)/ 간호보조원

- 대학 3학년을 다니다가 67년 독일행.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는 게 싫었음.
- 2남 2녀 중 장녀
- 6.25때 겨우 5살에 어머니 사망. 마포에서 살았는데, 집 옆에 우물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물을 뜨려다가 공중에서 쏜 폭탄 맞고 돌아가심. 지금의 마포 공덕동은 당시 공동묘지. 이후 아버지는 재혼. 계모가 오면서 힘들었지만 아버지 돌아가신 후 새어머니도 돌아가시자 한국 가서 새어머니 장례 뒤처리 함. 당시 남동생들은 죽고 이복 여동생은 미국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
- 첫 월급 500마르크 중 300마르크는 매달 송금
- 독일 수간호사가 간호학 공부 권유해 공부 마침.
- 독일 병동생활이 힘들었지만, 어릴 때 계모 밑에서 너무 고생했기에 독일 병동생활이 어렵지 않게 생각됨.
- 현재 한국에 가서 갈 곳이 없음. 그래서 친구집이나 다른 곳에 숙박 할 곳을 마련해야 함. 엄마, 아버지가 선산에 묻혀 있는데 이번에 가볼 생각.

20. 윤승희(초청)/ 간호보조원   

- 2남 3녀 중 맏이로 집안 형편이 어려움. 광주에서 어머니가 하숙생 밥해주는 일을 했는데 생활이 어려움. 광고를 보고 파독 간호사 지원. 간호보조원 양성소를 거쳐 70년에 파독.
- 3년만 하고 한국에 들어갔는데 독일 남편을 만나 정착.
- 88년에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임종도 보지 못함. 이전에 꾸준히 병원비 보냄
- 동생이 부도가 나서 지금도 형제들은 살기가 어려움.
- 병동근무할 때, 밤근무는 혼자 하니까 그때는 밤근무하는 사람이 환자를 씻어줘야 했음. 어쩔 땐 10명을 씻어줘야 했음. 동작이 빠른 편이 아닌데 그게 항상 걱정. 몸만 씻어주는 것이 아니라 침대시트도 갈아줘야 해서 정말 힘들었음.
- 딸이 태어나서 장애가 있음. 초등학교 다닐 때 다른 애들보다 몸집도 적고 키도 적고 힘도 없었음. 특별학교를 다녔고, 상급학교는 일반 사립학교를 보냈음. 상급학교를 졸업했는데 너무 어리고 체구도 적어서 한 번 더 다님. 아이를 위해서 마라톤 시작. 비만 안 오면 뜀. 할프 마라톤 10번 참여, 풀 마라톤 1번 완주.
- 48세되던 해에 마라톤 시작. 지금은 장애인 딸과 뛰고 있음. 60세에 마라톤 완주함. 지금도 인생을 뛰는 것처럼 마라톤을 함. 딸은 장애인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음. 독일 문화와는 달리 28살인데 딸과 여전히 함께 살고 있음. 딸을 위해서 달리는 마라토너!



한국 유로저널 노영애 기자

eurojournal26@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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