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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2008.02.17 01:13
국보 1 호 숭례문,방화로 전소
조회 수 1872 추천 수 0 댓글 0
우리 민족의 넋과 혼이 담긴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방화로 인해 한 줌의 재로 남긴 2월 10일은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치욕적인 날로 남게 됐다. 숭례문을 지켜내지 못한 시민들은 슬픔에 잠겨 추모의 발길이 끊기질 않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자존심은 땅바닥으로 추락한 하루로 역사에 남게 될 것이다. 숭례문은 태조 4년(1395년)에 짓기 시작해 태조 7년(1398년), 3년 만에 완성되어 현재에 이르기 까지 600년 동안 전해져 내려온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문화재다. 지금의 숭례문은 세종 29년(1447년)에 고쳐 지어지고 성종 10년(1479년)에 대규모 보수작업을 통해 완성됐으며 한국전쟁 시 파손을 입고 보수공사를 통해 복구되어 그 모습을 지켜왔고, 1962년 12월 20일에는 국보 1호로 지정되었다. 숭례문은 수차례 보수작업을 거쳤지만 항상 그 모습을 굳건히 한 자랑스러운 우리의 유물이었던 것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국전쟁 등 수차례의 전란에도 그 위용을 자랑해 왔다. 이러한 국보1호 숭례문이 흉물로 변해버렸다. 한편,안휘준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은 숭례문 화재사건에 대해 “말할 수 없이 참담하고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며 “국보 1호 지위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긴급 체포된 범인은 방화 충동을 못이긴 채모씨 남대문경찰서는 12일 국보 1호 숭례문을 전소시킨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로 채모(70)씨를 긴급체포했다. 채씨는 지난 10일 오후 8시 48분께 숭례문 2층 누각에 침입해 1.5ℓ들이 페트병에 미리 담아온 시너를 바닥에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여 건물 전체가 전소하도록 한 혐의다. 한편,방화범 채모(70)씨는 방화 사건 두달 전에 미리 남긴‘오죽하면 이런 짓을 하겠는가’라는 제목의 편지를 통해 자신이 소유하던 시가 4억짜리 일산 땅을 불과 1 억에 강제로 헐값 수용당한데 대한 분노를 표현했고,또 2006년 '창경궁 문정전 방화사건'의 진범이 아닌데도 사법기관에 의해 허위자백 강요와 그로인한 1200만원 벌금의 부담이 방화의 이유였다고 밝혔다. 폐허로 변한 숭례문에 `추모' 행렬 이어져 화재 발생이 나흘 지난 14일 현재도 불의의 화재로 허무하게 무너져내린 국보 1호 숭례문을 기리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폐허가 된 숭례문에 꽃을 바쳤다. 헌화를 한 김종희(여)씨는 "남대문이 이제 마지막이라 가슴이 아파 헌화를 하러 왔다. 원상복귀를 한다고 해도 똑같은 나무로 할 수는 없지 않나"라며 안타까워했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했다는 한 40대 남성은 헌화와 함께 숭례문을 향해 절을 한 뒤 "세계 최고 수준의 목조 건축물이 타버려 가슴이 아프다. 올해 숭례문 추모의 전시회를 열겠다"라고 밝혔다. 타 버린 숭례문, 1층 멀쩡해 복원 가능 숭례문이 불에 탔지만 전문가들이 복원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고건축학자이자 문화재위원인 김홍식 명지대 건축학과 교수는 13일 현장을 둘러보고 "몽땅 타 버리고 붕괴된 줄 알았던 남대문이 1층까지 멀쩡한 데 놀랐다"며 "희망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무너져 내린 2층 부재 중에서도 쓸 만한 것이 꽤 있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복원'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든다는 것. 부여 소재 한국전통문화학교에 보관 중인 1960년대 복원 때의 부재들 중에서도 재활용이 가능한 것이 많다는 게 그의 말이다. 대목장 신응수 씨와 한국 고건축 전공인 김봉건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등도 1층이 그대로 남아 있어 충분히 복원할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유로저널 사회부 사진 2,3: 야후 참사랑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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