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단기적 교역 확대보다 장기적 체질 강화 의미 크다
한국과 미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2006년 2월 협상 추진 선언 이후 7년, 협상 타결과 공식 서명 이후 6년 만인 지난 3월 15일 0시에 공식 발효되면서 한국 내에서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은 갈등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에따라 우리 기업이나 국민 모두 한미 FTA 이후 달라질 경제 상황에 적응하고 이 새로운 변화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준비를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LG경제연구원 보고서는 이와관련해 한미 FTA 발효는 개방과 경쟁의 실효화를 통한 고비용 구조 해소 등 한국 경제에 보다 근본적인 체질강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양국 간 수출입의 상품별 구성과 산업구조의 특성을 고려할 때 교역 확대 및 이에 따른 성장 효과를 단기간 내에 크게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FTA는 협정을 체결한 두 나라가 상대국에 비해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 즉 비교우위를 가진 제품이나 서비스를 서로 수출하고 수입함으로써 자원 배분의 효율화를 통해 두 나라 전체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늘리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FTA를 체결한 협정 당사국들 간 교역과 생산의 총량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기대가 지나쳐 FTA가 물가 상승이나 고용 불안과 같은 우리 경제의 문제점들을 모두 해결해줄 것이라는 환상을 낳기도 한다. 한미 FTA 발효를 계기로 장바구니 물가가 하락하고 대미 수출이 급증해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 등이 좋은 예다.
물론 FTA가 각종 생산 요소들을 좀 더 경쟁력을 갖춘 분야로 재배분(re-allocate)해 경제 전반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노동력이나 생산설비의 업종 간 이동이 가능해야 하는데 이는 상당히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FTA는 우리 경제의 모든 고질병을 치료해주는 만병통치약이나 단기간에 약효가 나타나는 진통제가 아니라 적절한 처방과 운동을 필요로 하는 영양제에 가깝다.
● FTA마다 효과 크게 달라
그 동안 우리가 체결한 다른 FTA의 성과를 살펴보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우리가 한미 FTA에 앞서 발효시킨 칠레, ASEAN, EU 등 7개의 FTA는 각각 그 영향과 효과가 달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FTA 역사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칠레(2004년 발효)와 ASEAN(2007년 발효)의 교역 규모 변화는 이런 차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의 대 칠레 수출은 FTA 발효 후 4년 만에 6배나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동안 대 ASEAN 수출은 1.7배 늘어나는데 그쳤으며, 수입 역시 칠레는 4배, ASEAN은 1.5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효 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EU, 인도, 페루를 제외하고 칠레, 싱가포르, EFTA, ASEAN와의 FTA 효과를 비교한 결과 역시 각국마다 한국 제품의 상품경쟁력이 상이하게 변동했고, FTA 발효가 상품경쟁력 향상에 유의한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7월 잠정 발효된 한-EU FTA 성과에 대한 평가가 새로운 통계가 나올 때마다 바뀌는 것도 좋은 예다.
● 경제 상황과 교역구조가 상이하기 때문
이처럼 FTA마다 결과가 달랐던 이유는 FTA 발효 이후의 국내외 경제 상황과 각국별 교역구조가 상이하기 때문이다. 거시경제 여건이 양호하고 전세계적으로 교역이 늘어나는 시기에는 FTA 발효가 교역 확대의 촉매 역할을 톡톡히 하지만, 경기가 악화될 때는 수출입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는 탓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칠레 FTA가 발효된 2004년 이후 4년간 세계경제는 상당한 호황기를 겪었고 우리나라의 총교역도 60%나 증가한 반면, 한-ASEAN FTA 발효 이듬해인 2008년부터는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복병을 맞아 4년간 20% 확대에 그쳤다는 점에 주목할만하다.
더 큰 원인은 교역구조, 특히 생산분업 구조와 무역특화도의 차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생산분업 구조의 경우, 한국과 FTA 상대국 간 교역품목을 상품의 특성에 따라 기초재, 부분품, 부품, 자본재, 소비재로 나눠보면 대략의 그림을 보여준다. 분석 결과, 대 칠레 수출은 최종재, 즉 자본재(29.7%)와 소비재(38.7%)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반면, 한국과의 생산 분업이 활발한 ASEAN으로의 수출은 중간재에 해당하는 부분품(30.5%)과 부품(39.1%)의 비중이 훨씬 컸다. 즉, ASEAN으로 수출된 품목 중 상당수는 재수출을 위한 중간재로 쓰인 탓에 FTA 체결 여부와 상관 없이 이미 관세가 유예된 경우가 많았다는 뜻이다. 같은 기준을 미국과 EU에 적용해 보면 대미 수출 품목의 65%, 대 EU 수출의 67%가 최종재이고, 대미 수입의 35%와 대 EU 수입의 50%가 최종재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미국과 EU에 대한 수출 중 최종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FTA의 무관세 혜택을 직접 누릴 여지가 클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그러나 생산분업구조 측면에서 아무리 FTA 활용의 잠재력이 크다 하더라도 실제 교역 확대로 이어지기까지는 각 산업이나 품목마다 시차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는 각국별 무역특화도, 즉 수출입에 특화된 상품의 종류와 특화 수준이 더 중요하다. 무역특화지수(Trade Specification Index)는 양국의 서로에 대한 비교우위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인 만큼, 무역특화 수준이 높을수록 FTA로 인한 생산 및 교역 집중이 더 쉽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두 나라 교역에서 수출이나 수입에 특화된 업종이 많을수록 FTA 발효 이후 교역 확대가 더 활발하게 이뤄진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주요 FTA 상대국 간 무역특화지수를 계산한 여러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그 차이가 분명해진다. 칠레, ASEAN, EU, 미국 등 4개국과 우리나라의 무역특화지수를 비교한 결과 칠레의 특징이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칠레와의 교역에서는 무역특화지수가 -1, 즉 완전수입특화나 +1, 즉 완전수출특화에 가까운 업종이 상당히 많았던 반면, ASEAN은 0.4보다 큰 업종(=수출 특화)이 5개, -0.4보다 작은 업종(=수입 특화)이 7개에 불과했으며 그 절대값의 크기도 칠레에 비해 매우 작았다.
한미 FTA의 교역 확대 효과가 단기간에 나타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미국과의 2010년 교역을 분석한 결과 수출이나 수입 특화도가 0.4 이상인 업종이 각각 4개, 5개밖에 없었으며, EU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이와 같은 결과를 종합해 보면, 미국이나 EU와의 교역에서 최종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FTA의 관세 혜택을 활용할 여지는 상당하지만, 비교우위, 즉 서로의 업종별 경쟁력 격차는 칠레 경우만큼 크지 않아 교역 확대 효과가 FTA 발효 직후부터 곧바로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 한미 FTA, 보다 근본적인 체질 강화에 주력해야
따라서 한미 FTA에 대한 기대 역시 단기적인 교역 확대나 이에 따른 물가 안정과 일자리 증가보다는 좀 더 중장기적인 목표에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의 수출품 생산에 필수적이면서 선진국 의존도가 높은 자본재와 중간재 수입 부담 완화를 통해 글로벌 제조 경쟁력을 강화한다거나, 법률, 회계, 컨설팅 등 사업 서비스 분야의 경쟁을 촉진해 소비자와 기업의 간접비 부담을 줄이는 것 등이 좋은 예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글로벌화가 진행될수록 법률이나 회계, 경영자문 등 간접부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사업 서비스 부문의 생산성이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질수록 우리 기업과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력 격차 역시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 FTA 발효를 잘 활용하기 위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해 LG경제연구원 김형주 연구위원은 " 무엇보다 우선 미국에 대해 비교우위가 분명한 품목들을 중심으로 수출 확대에 힘써야 하며, 미국과 EU 간 경쟁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그리고 미래 지향적인 대응이 필요하고, 수입 및 유통 부문의 경쟁 확산이 시급하다 "고 밝혔다.
한국 유로저널 안성준 기자 eurojournal11@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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