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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가온 날들...(Les jours venus...)' - 로맹 구필(Romain Goupil)
프랑스 개봉 2015년

68 혁명 그리고... 


allocine.jpg
사진출처:allocine



파리, 일상의 어느 날, 한 집안의 가장이자 영화감독이며 68혁명세대인 로맹은 취업청으로부터 퇴직연금과 관련된 한 통의 편지를 받고 문득 오늘이 자신의 60세 생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취업청과의 통화를 시도하지만 돌아오는 건 반복되는 자동 응답 서비스뿐이다. 은행의 호출을 받아 찾은 로맹의 담당자는 정작 계좌문제 보다는 그의 영화에 관심을 보이고 구상 중인 다음 영화를 위해 만난 제작자는 시큰둥하다. 

한편 고등학생인 아들은 학교과제로 68혁명에 대해 로맹을 인터뷰하면서 그의 무용담에만 흥미를 가진다. 몽마르뜨의 예술가 마을에 사는 로맹은 마을협회에서 늙은 유부남에게만 사랑에 빠진다는 한 젊은 여인을 만나고, 협회의68세대 친구들의 언쟁은 여전하다. 그러던 어느 날 로맹은 장의사를 찾아 자신의 장례식을 의논하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것 같은데...

로맹 구필의 « 다가온 날들 »은 한 중년 남자의 일상을 담고 있다. 68혁명을 겪고 여전히 사회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열정적이지만 어느새 ‘고지식한 늙은이’가 된 로맹 구필이라는 한 영화감독의 평범한(?) 일상. 아이들은 자라고 그의 부모들은 늙어가고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로맹 구필이라는, 곧 노년을 준비해야 하는, 한 남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cinema.JPG
영화 장면, 로맹 구필과 은행담당자역을 맡은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Valeria Bruni Tedeschi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조합 속에서 감독의 자전적 요소가 강하게 녹아있다. 감독 자신이 영화 속의 감독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그의 아내, 아이들, 노부모 그리고 친구들까지 실제 자신들의 고유한 역할을 맡고 있다. 또한  1990년대 보스니아 전쟁 당시 사라예보에서 아내와의 첫 만남의 시간과 그 곳에서 휴가를 보내는 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기록화면들의 사용으로 사실적인 효과를 더한다. 반면 여기에 감독은 극영화적인 상상력을 덧붙인다. 

매력적인 은행담당자와는 서로 묘한 감정을 느끼고, 늙은 유부남을 사랑하는 젊은 여인에게 호기심을 가지는 호색한적인 영화 속의 로맹. 영화제작자를 찾아가 끊임없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파하지만 시나리오의 진행은 더디고 로맹이 상상한 영화 속의 한 장면은 바로 뒤에서 그대로 일어난다. 가족들(아내, 아이들, 부모들)과의 일상적인 신경전은 극영화적으로 설정됐지만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이 같은 각각의 영화장치들이 현실과 허구 넘나들기에 아주 사적이며 자전적 요소가 강하지만 이러한 영화쟝르에서 자주 드러나는 ‘성찰’적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감독은 인생의 달관이나 깨달음에 관한, 어쩌면 너무 거창할 수도 있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젊은 시절 사회적인 구호아래 부조리하고 비인간적인 세상의 모습에 반기를 들던 공산주의자였던 그도(지금도 여전하지만) 어느새 중년이라는 소위 구세대가 되어버렸지만 이 영화는 시대의 한 켠으로 물러선 한 활동가의 우수 어린 회상이나 무기력함을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나이와 함께 더욱 불 같은 성격의 옹고집이 되어버린 자신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감독 자신이 ‘68’때의 나이인 아들과 반 친구들 앞에서 그때의 세상은 자신들의 것이었고 자신들만 존재했으며 구세대와는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고 고백하는 지금의 자신이 그가 그토록 경멸했던 구세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그냥 지금 이렇다’라고 말하기라도 하듯이 다음 장으로 넘어가 여인들과 은밀한(?) 만남을 즐기는가 하면 제작자를 만나 영화를 고민하고 예술가 마을 협회의 친구들과 왈가왈부하며, ‘68’의 특별함은 없는 듯 하지만, 68세대의 기억을 가진 한 개인으로서 ‘로맹 구필’의 일상을 이어간다. 그의 활동가적인 기질은 여전하며 괴짜같은 모습은 변함이 없다.  특히 자신의 장례식 촬영장면으로 구성된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로맹 구필의 고집스러움과 유머와  함께 자기비판적인 모습이 정점을 이룬다.

1951년생인 로맹 구필은  16살에 첫 단편영화를 만들었으며 ‘고등학생 투쟁위원회’를 조직해 68혁명의 중심에 섰었다.  ‘68의 아이’를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 살아온 만큼 그의 영화는 ‘’68’ 정신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1982년 만든 장편 « 서른에 죽다Mourir à trente ans »로 깐느 영화제에서 첫 작품에게 주어지는 황금카메라상을 받았다. 서른이라는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난 활동가 친구들을 기리며 감독 자신의 사회적 참여와 영화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는 이 영화는 지금의 영화 « 다가온 날들 »과 궤를 같이 한다. 

30여 년이 지났지만 로맹 구필의 영화를 위한 열정은 식지 않았으며 시간과 함께 변할 수 밖에 없는 신념에 대한 실천의 문제에서 오는 불안과 불만이 또 다른 색깔로 « 다가온 날들 »에서 진화하고 있다. 때론 조금은 지나치고 자조적인 내용과 약간은 과다한 가족의 기록화면 사용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68의 아이’로서의 거창한 구호나 감정에 호소하는 어설픈 열변을 배재한 것은 감독의 현명한 선택이다. 로맹 구필의 익살스럽고 자조적인 재담은 여전히 지루하지 않다.


프랑스 유로저널 전은정 기자
eurojournal09@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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