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년 전 궁궐 환히 밝힌 최초의전기발전소 터, 경복궁에서 확인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발전소이자 전기 발상지인‘전기등소(電氣燈所)’의 실체가 경복궁 흥복전(興福殿) 권역 영훈당(永薰堂) 터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다.
경복궁 흥복전과 향원지(香遠池) 사이에 위치한 영훈당은 내각회의와 경연, 외국 공사 접견 등 왕의 편전(便殿)으로 사용되던 흥복전의 부속 전각이다. 고종 연간에 건립되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17년 화재로 소실된 창덕궁을 중건하기 위하여 경복궁 내 여러 전각을 헐어낼 때 흥복전 등과 함께 철거되었다.
편전(便殿)은 임금이 평상시에 거처하는 전각을 말한다.
이번 조사를 통해 그동안 향원지의 북쪽과 건청궁(乾淸宮) 남쪽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던 전기등소의 위치가 향원지 남쪽과 영훈당의 북쪽 사이인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 결과, 이곳에서는 원료인 석탄을 보관하던 탄고(炭庫)와 발전소 터 등 1887년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졌던 전기등소 유구가 확인되었다. 아울러 아크등(arc lamp)에 사용되었던 탄소봉, 연대(1870년)가 새겨진 유리 절연체 등 전기 관련 유물도 출토되었다.
조선 왕실은 미국의 신문물을 시찰하고 온 보빙사(報聘使)의 건의에 따라 1884년 에디슨 전기회사와 전등설비를 위한 계약을 맺고 1886년 11월 미국인 전등기사 매케이(McKay)를 초빙하여 1887년 1월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등소를 완공하였다. 발전규모는 16촉광(燭光, 1촉광은 양초 1개의 밝기)의 백열등 750개를 점등할 수 있는 설비로 알려져 있다.
보빙사(報聘使)는 1883년(고종 20) 민영익 등 11명으로 구성되어 최초로 미국에 파견된 사절단이다.
최초 점등일은 1887년 1~3월경으로 추정되며, 건청궁 내 장안당(長安堂)과 곤녕합(坤寧閤)의 대청과 앞뜰, 향원정 주변의 등을 밝혔다. 당시 향원지에서 물을 끌어올려 전기를 생산하여 ‘물불’이라 불렸으며, 불안정한 발전 시스템 탓에 건달꾼처럼 제멋대로 켜졌다 꺼졌다 한다 하여‘건달불’이라 불렸다고도 한다.
한편, 영훈당 터에서는 영훈당 본채와 함께 부속 행각지 등 건물지 6동이 확인되었다. 이번에 조사된 영훈당의 칸 수와 용도는 ‘궁궐지(宮闕誌)’와 ‘북궐도형(北闕圖形)’의 기록과 일치하며, 본채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행각이 서로 잇닿은‘일(日)’자형의 평면 형태를 보이고 있다. 또한, 내부에서는 각 칸의 용도를 알 수 있는 아궁이와 구들시설 등이, 외부에서는 기단시설, 담장지, 배수(排水)와 배연(排煙)시설 등의 부속시설이 확인되었다.
궁궐지(宮闕志)란 조선 시대 궁궐의 각 전각의 명칭·위치·발자취 등을 적은 책을 말하며, 북궐도형(北闕圖形)이란 1907년경 제작된 경복궁의 평면 배치도이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전기등소의 정확한 위치가 규명되었으며 백열전구가 아닌 아크등이 사용된 흔적이 확인됨에 따라, 앞으로 우리나라 전기 발전사의 연구에 있어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 문화청 제공>
한국 유로저널 안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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