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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6.07.19 19:38

곡성 The Stran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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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The Strangers


나홍진 감독, 파리 개봉 2016년 7월 6일




-집단 무의식과 일본귀신-


한 지인이 한국영화 곡성이 파리에서 개봉한다며 함께 관람할 것을 권했다. 평소 영화의 사회적측면에 초점을 두고 미학과 영화학적 관점을 중시하는 기존 평단에 반발하며 주변 지인들과도 논쟁을 벌여온 기자가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는 영화를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영화가 현실을 바꾸고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에 관심이 많은 기자에게 '파리에서 개봉하는 한국영화'에 대한 호감은 이미 예약되어 있었다. 프랑스인들과 함께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에 불어 자막이 달리는 걸 보고 있노라니 이로 인해 한국이 얼마나 더 알려질까 하는 기대감과 파리에서 한국 영화를 본다는 개인적인 감회가 깊었다.


구불구불한 길, 마치 뱀의 몸 같은 길을 따라 들어가게 되는 시골마을 곡성. 한 여인이 자신의 일가족을 끔찍하게 살해하고 자신도 목을 메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소심한 사람으로 경찰서에서도 무시 당하는 경찰 종구도 사건의 수사에 가담한다. 조사를 해도 정황을 파악하기 어렵고 몇 년 전 마을에 흘러 든 일본인이 이 여인을 강간했고 이후 여인이 흉측한 피부병에 걸린 체 미쳐서 자신의 가족을 죽인 것이며 그 일본인은 사람이 아닌 귀신이라는 믿을 수 없는 말만 들려올 뿐이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일본인의 집을 찾은 종구와 동료 경찰, 동료 경찰의 조카로 통역으로 따라나선 양이삼은 일본인의 집에서 그동안 죽은 사람들의 생전의 모습과 죽은 뒤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붙어있는 불길한 제단을 발견한다. 심증은 가득하지만 뚜렷한 증거를 찾지는 못한다. 돌아오는 길에 동료 경찰은 일본인이 진정 귀신이라며 일본인의 집에서 찾은 종구의 딸 효진의 실내화를 건넨다. 평소 자상한 아빠로 외동딸 효진을 아끼던 종구는 무슨일이 있었는지 효진을 다그치지만 효진은 그가 중요한 것을 모른다며 심한 욕설을 퍼부으며 이상한 증세를 보인다. 점점 변해가던 효진은 급기야 잠시 맡겨진 이웃집에서 할머니를 살해하고 만다. 종구는 일본인을 찾아 나서고 효진을 뭔가에서 구해내려는 종구의 사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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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영화가 한국을 알리리라는 기대감은 불편함으로 변해갔다. 한국 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처참한 살인사건들과 그 배후의 일본 귀신 혹은 마을 내부의 악의 세력… 우리가 이 서구사회에 구경거리가 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데 한 장면으로 인해 나는 새롭게 영화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무당(황정민)이 격렬한 춤사위와 함께 동물을 죽이고 피를 뿌리며 굿을 하는 장면이었다. 장승에 나무 못을 박고 동물을 죽여대는 그의 굿이 격렬해질수록 효진이 소스라치며 고통스러워한다.(이 영화가 한국에서 15세 관람등급, 파리에서는 12세 관람등급을 받은 데에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종구가 효진을 붙들고 어쩔 줄 모르다 결국 굿판을 때려 부수는 장면. 그 장면에서 "그래 어쩔 수 없다. 인정해야 한다"는 탄식이 나왔다. 


융이 제창한 '집단 무의식'은 인류가 진화의 과정을 거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오랜 경험을 통해서 저장해 온 모든 잠재적 기억흔적으로 인간의 성격구조와 기능의 기초가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조상의 기억, 습관들이 유전되어 후손 개인의 성격과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런 집단무의식은 한 국가 안에서도 형성될 수 있다고 한다. 


영화 속에는 장면이 전환되면서 관객의 눈에 온 방, 온 이불에 피가 가득한 광경이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많다. 누군가가 자신의 가족, 지인을 처참히 살해한 모습이다. 그런데 왜 유혈이 낭자한 광경이 왜 낯설지가 않을까. 다른 잔혹한 영화들 때문일까? 그건 인정하기엔 마음 아프지만 우리의 집단 무의식 속에 있는 비인간적인 학살의 기억 때문이 아닐까?


효진은 천진한 초등학생일 뿐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무슨 일을 당한 건지 아버지에게 욕설을 퍼붓고 요괴 같은 모습으로 변해간다. 속수무책인 부모와 굿판 가운데 효진이 몸부림 치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서 나는 왜 우리의 딸들이 어떤 처참한 일을 당했는데 방관할 수 밖에 없었던 누군가가 생각날까. 


위안부, 관동대지진, 마루타…. 마루타란 단어를 검색엔진에 한 번만 치고 클릭 몇 번 만 해도 우리는 차마 못 볼 영상이나 자료를 접할 수 있다. 그게 우리의 역사다. 왜 하필 중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닌 일본 귀신인가? 감독은 영화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악에 대해 신에게 따지고 싶었다는 기획의도를 말한다. 그런 의도를 전달하는 장치의 일부로 일본인 귀신을 쓰는데 대해서는 특별히 의도를 설명하지 않지만 우리도 그냥 고개를 끄덕인다.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하나의 생각, 기억을 이미 공유하고 있다. 그는 자연스럽게 일본인 귀신이 고라니를 산 체로 먹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고라니는 한국과 중국 중동부에서만 서식하는 사슴과 동물로 해당 장면은 일제가 한민족 고유의 상징을 말살하는 이미지인 듯하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집단 무의식의 입장에서 우리에게 일제에 대한 기억과 그에 대한 반감의 표출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물론 의식적으로 단순히 감독이 '일본놈=나쁜놈'을 드려내려는 것은 아닐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영화 속의 정황들을(모든 것을 다 분명히 드러난 것이 아닌데도) 보면서 우리가 '일본놈=악마'라는 생각(어쩌면 편견)을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어쩔수 없다.   


나홍진 감독은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아마도 '일본놈=나쁜놈'이라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할려고 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그는 우리들의 이러한 집단 무의식을 영화속의 악마를 드러내는데에 활용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들의 집단 무의식속에 이미 스쳐지나간, '일본놈=나쁜놈, 그러므로 일본놈은 악마'라는 생각은, 우리들이 의식적으로는 부인할 수 있어도 무의식적으로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생각들이다. 편견처럼, 모든 내용을 다 알고 있지 않지만 '저놈이 악마'라는 생각. 마치 우리들의 피할 수 없는 무의식처럼, 곡성의 악마가 마을로 침투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막아낼 수 없는 악마', 나는 나홍진 감독이 우리들의 일본인에 대한 집단 무의식을 통해, 이러한 악의 침투를 좀 더 강력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곡성은 프랑스에서 7월22일까지 상영을 한다. 좀 더 긴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의 집단 무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운 프랑스인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곡성의 악마가 다가와 질지 궁금하다.


유로저널 강승범, 석부리 기자

Eurojournal10@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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