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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6.09.27 00:04
토니 에르드만 Toni Erdmann
조회 수 3056 추천 수 0 댓글 0
토니 에르드만 Toni Erdmann 마렌 아데 Maren Ade, 프랑스 개봉 8월 17일 엉뚱한 행동과 농담을 즐기는 퇴직 음악교사 윈프레드는 노환의 어머니를 방문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일 없이 노년을 보내고 있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 있는 독일계 글로벌 경영컨설트회사를 다니는 진지한 딸 이네스는 인정받는 직장인이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윈프레드의 방문에 이네스는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못한다.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은 부딪히게 되고 독일로 돌아간줄 알았던 윈프레드는 토니 에르드만이라는 가상의 인물로 다시 나타나 이네스의 삶을 흔들기 시작한다. 이네스는 자신의 주위를 맴돌며 기이한 행각을 벌이는 아버지가 부끄럽고 원망스럽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 하지 않는 아버지의 딸 흔들기는 멈추지 않는다. 우선 <토니 에드르만>은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대한 코미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괴짜 아버지의 우스꽝스러운 변장술이나 그의 황당무계한 농담들은 웃음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아데감독은 코미디라는 쟝르를 변주한다. 아련한 애잔함이 유쾌한 웃음을 앞선다. 영화는 그저 웃고 즐길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는다. 우리는 순간의 웃음보다는 그 뒤를 바로 따르는 난처한 상황에 놓인 인물들의 어색하고 거북한 상황과 마주해야 한다. 영화의 웃음은 불안과 불편함 위에 있다. 아버지가 딸에게 던지는 행복하냐는 질문이 영화를 이끌어간다. 회사에서 인정 받고 승승장구하는 듯한 이네스의 시선은, 역설적이게도, 불안하게 흔들리며 화면의 바깥을 향하고 있다. 아버지는 어떠한가. 누구의 동의도 받지 못하는 헛된 익살을 남발하는 그의 모습은 이네스와 대조적이지만 그 본질은 닿아 있다. 자유로워 보이는 듯하지만 자리를 잃어가는 노년의 윈프레드도 딱히 다르지 않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일상에 각자의 방식으로 애써 살아가는 모습이다. 2시간 40분이라는 조금은 긴 시간 동안 특별한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는 <토니 에르드만>은 아버지의 어처구니 없는 장난질(그 의도가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동화될 수는 없는)과 딸의 신경질적인 모습을 지켜보게 만든다. 우리의 삶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보고 싶은 것만 선택 할 수 없듯이 이네스와 윈프레드의 두 삶이 만나면서 그들의 조금은 유별난, 반복되는 일상을 카메라는 세심하게 따라간다. 아버지와 딸을 오가는 영화의 시점은 쉬운 감정이입과는 거리를 두게 한다. 짜여진 리듬으로만 흘러가지 않는 삶의 시간을 담기 위해 이 조금은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쓰레기통이 한 쪽에 놓인 한 가정집의 쪽문을 비추고 있는 첫 장면은 인상적이다. 인물도 예쁜 전경도 아닌 적당히 낡은 회색 벽과 현관문이 보이는 스산하기까지 한 이 장면은 주체가 아닌 뒤 안에 내쳐진 현대인의 삶과 닮았다. 쓰레기통을 첫 장면의 중심에 놓은 감독의 의도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면 안으로 들어오는 우편배달부, 이를 맞이하는 아버지의 헛웃음이 나오게 하는 농지거리까지 인물들은 처음부터 삐걱거린다. 아버지와 딸, 이네스의 회사생활(그녀가 임무는 정리해고를 통한 기업이익창출이다), 다국적 기업이 몰려들고 있는 루마니의 허울좋은 경제성장과 여기서 소외된 서민들(거대한 쇼핑몰을 즐기는 사람은 기업총수의 아내다), 그리고 나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윈프레드의 어머니(모자수집을 즐기는 그녀의 장농 안에는 나찌의 군모도 들어있다). 각각의 서로 다른 세계들의 만남과 그 관계가 만들 내는 엇박자가 영화의 리듬을 만들어 낸다. 이상향을 꿈 꿀수 있었던 세대의 아버지와 자본주의의 폭풍우 속에 편승한 현 세대인 딸의 충돌은 가족서사를 벗어나 만남과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윈프리드가 연기하는, 우스꽝스러운 가발과 틀니를 끼고 영향력 인물임을 자처하는, 토니 에르드만의 어깨에 들려있는 낡은 천가방이 부조화의 균열을 강조한다. 동료들과의 친분도모를 지시한 상사의 뜻을 따라 파티를 준비하던 중 몸을 죄이는 옷을 벗기 위해 애써다 끝내 폭발해 버리는 이네스를 카메라는 놓지 않고 무덤덤하게 긴 시간을 할애해 담아낸다. 숨막히는 그녀의 생활이 전해지는 순간이다. 누구나 겪어 보았음직한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행위가 의미를 내포한다. 아덴 감독은 섣부르게 이렇게 서로 다른 세계들의 조화로운 화해와 이해를 유도하지 않는다. 딸에게 삶의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돕고 싶은 아버지의 서투른 고군분투가 못내 안타깝지만, 상충할 수 밖에 없는 서로 다른 여러 결들에 대한 해결책을 내 놓는 것은 영화의 몫이 아니다. 후반부, 화해의 몸짓으로 보이는 두 부녀의 포옹도 잠시 이네스는 곧 돌아서 일상으로 돌아간다. 감동(?)적 순간의 맥을 끊어 놓는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아버지의 익살스러운 틀니를 끼고 무표정하게 서 있는 딸 이네스는 불확실한 미래와 다시 마주해야 한다. 어떠한 결론도 내릴 수 없는 삶의 무한한 유동성만이 또 다른 일상을 예고한다. <사진 출처: 알로 씨네> 프랑스 유로저널 전은정 기자 Eurojournal18@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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