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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2008.04.11 06:43
끝이 없는 경쟁,국가골 수문장 김병지-이운재(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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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는 경쟁,국가골 수문장 김병지-이운재 이운재(35)와 김병지(38)의 수문장 경쟁은 '너를 이겨야 내가 산다'는 극한 경쟁 그대로이다. 이운재는 경희대 1학년이던 1992년에 태극마크를 단 뒤 1994년 3월 미국과의 친선경기로 A매치에 데뷔했다. 반면 김병지는 용접공 생활을 하다 테스트를 통해 상무에 들어간 뒤 92년 울산 현대에 입단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듬해 김병지는 이운재가 '작은 성공'에 도취돼 페이스를 잃은 틈을 타 대표팀에 입성했다. 1995년 6월 코스타리카와의 코리아컵서 데뷔전을 치른 후 2001년 초까지 6년간 김병지 전성기였다.98 프랑스월드컵의 골문도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김병지는 히딩크 감독 부임 초인 2001년 1월 파라과이전서 골문을 비우고 무모한 플레이를 펼치다 눈밖에 벗어났고, 이운재가 다시 대표팀의 중심에 섰다. 이어 피말리는 경쟁 끝에 2002년 한·일월드컵의 모든 경기를 이운재가 도맡았다. 김병지는 벤치를 지키면서도 후배의 등을 두드려 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다. K리그에서는 김병지가 165경기 무실점, 153경기 무교체 출장 등 각종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30대 중반을 넘은 이들의 경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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