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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다. 비록 몸은 이곳 영국에 와 있지만,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에서 자란 이들이라면 누구든 이맘때가 되면 고향의 한가위 풍경이 떠오르며 그리운 얼굴들이 생각날 것이다.
한국 언론을 통해 접하는 추석 관련 기사들 중 유독 이번 추석에 많이 접하게 되는 기사는 추석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더 정확히는 추석이 서글프고 괴롭고, 외로운 이들에 대한 소식이다.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옛말이 무색하게 몇 달씩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한 저임금 노동자들, 생존을 위한 고단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들, 자신을 찾지 않는 자식으로 인해 더욱 외로운 노인들,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차가운 땅바닥에 지친 몸을 누이는 노숙자들.
그들에게는 한아름 선물과 먹거리를 사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선택 받은(?) 축복이, 또 오랜만에 가족, 친척들과 여유로이 정겨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평범한(?) 축복도 마냥 서럽게만 느껴질 것이다. 자업자득이지 않냐는 말로 넘기기에는 우리 모두의 잘못과 책임이 있는 그들의 불행이요, 슬픔이기에, 무엇보다 모든 이들이 따스한 밥 한끼와 정겨운 말 한마디는 들을 수 있어야 하는 민족의 명절이기에 그들을 향한 시선을 애써 외면하는 냉정함이 우리에게서는 발견되지 않기를 바란다.

재영 한인들의 이민 역사도 이제 제법 되었고, 나름대로 사회적,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라선 이들도 여럿 되는 것 같다. 참으로 자랑스럽고, 또 본인들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기에 칭찬과 격려를 보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이들이 이곳 영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인들을 돌아보고, 또 가능하다면 고국의 어려움도 함께 어루만져 주는 흐뭇한 풍경을 기대할 만한 시기가 된 것 같다.
당장 주위를 돌아보면 한인들 중에서도 다양한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혹자는 그래도 돈 많고 여유 되니까 외국생활, 그것도 세계적으로 물가 비싼 영국에 살지 않겠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또 외로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비록 우리 명절을 공식적으로 지낼 수 없는 이곳 영국이기에 똑같이 출근하고, 똑같이 학교에 가는 일상 가운데 마음으로만 맞이하는 추석일 지라도, 한 동안 돌아보지 못했던 이들을 돌아보고, 혹여나 어떠한 이유로든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이들이 있다면 먼저 따스한 말 한마디 건네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느정도 안정적으로 정착한 이들은 이제 막 영국에 도착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 혹은 혼자 힘으로 지내면서 학업에 정진하느라 수고하는 젊은 학생들과 식사 한끼라도 나누며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훈훈함이 느껴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느 교포사회가 그렇듯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재영 한인사회지만, 그래도 그렇게 부대끼고 또 마주잡고 하는 가운데 결국은 모두가 한 배를 탄 내 사람들인 것을 깨닫고, 서로의 발전과 서로의 행복을 위해 한번 더 '미안합니다', 한번 더 '고맙습니다'를 주고 받으며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한가위의 훈훈함을 맛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언젠가는 재영 한인들의 이름으로 고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멋진 광경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재영 한인사회의 리더들이 중심이 되어 재영 한인들의 조그만 정성을 모아서 수해복구든 불우이웃 돕기든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이들을 위해 아름다운 손길을 건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자라나는 이민 자녀들이, 또 이곳에서 학업 중인 젊은이들이 그 광경을 통해 나눌수록 커지는 기쁨의 교훈을 배우고, 그래서 그러한 전통이 해마다 명절이면 비록 추석의 겉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이곳 영국이지만 한가위의 훈훈한 정(情)만이라도 오래도록 이어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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