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존속은 국내의 정치, 경제적 활동 외에도 군사, 외교적인 활동을 통해 지속된다. 각각의 카테고리는 일반적으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 정치적 이슈는 반드시 경제적인 이슈를 동반하며, 군사적인 쟁점은 외교적인 고려사안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이러한 활동의 대표적인 사례가 군사협정이다.
군사협정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전시 교전국 사이에 정전, 휴전, 포로교환 등에 관한 사항이 있으며 다른 하나는 동맹국 사이에 군사적 교류를 강화하는 것이다. 군사협정은 '협정(agreement)'이란 단어가 붙기는 했지만 일반적으로 의회의 동의없이 행정부가 단독으로 체결하는 기타 협정과는 달리 조약에 거의 준하는 성격을 갖는다.
그 이유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국가의 존립에 관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반세기 동맹이라는 미국과 맺은 주요한 협정 중에 하나인 '외국 주둔군 지위에 관한 협정(SOFA)'역시 조약의 성격을 띤,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주 국무회의에서 비밀리에 통과되었던 '한일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에 수많은 수식어들이 붙었다.
밀실처리, 임기말 대형사고, 꼼수, 뼛속까지 친일 친미. 모두 언론에 그대로 나온 표현들이다. 협정의 내용만 보자면 지금까지 24개국과 맺었던 일반적인 협정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우리가 손해를 보는 조항은 일본 역시 감수해야 하는 내용이고, 우리가 득이 되는 사항은 일본 역시 얼씨구나 할 내용이다. 쌍방간에 손해와 이득을 모두 감수해야 하는 전형적인 '협정'인 셈이다.
그러나 내용보다 문제는 절차와 시기, 그리고 주변국과의 관계이다. 일단 일본에는 당일 통보했으면서도 국내에선 언론에 의해 알려질 때까지 비밀에 부쳤다는 점만으로도 정부가 어떤 구실을 갖다 붙이든 개운한 해명이 되기는 글렀다. 게다가 군사관련 협정을 국방부 대신 외교부가 국무회의 안건으로 올리고 토론도 없이 통과됐다는 과정을 보면 현 정부가 도대체 뭘 획책하고 있는지 의심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국방부가 주도적으로 검토하고 체결은 외교 당국간에 하는 것이어서 외교부가 국무회의에 안건 상정을 했다는 해명도 있지만 그렇다면 당초 군사정보보호협정이었던 안건의 제목이 단순한 정보보호협정으로 바뀐 이유는 뭘까. 해명이 다시 의혹을 부르는 형국이다.
일본과의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하나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이밖에도 현 정부는 국방부 차원에서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을 진행시키고 있다. 이 역시 국방부보다는 외교부가 적극적이다.
국방부는 본심이야 어떻든 과거사 문제와 관련된 일본의 자세와 국민의 이해를 전제로 추진할 것이라는 정도인데 비해 외교부는 여론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협의할 것이 많아서 시간이 더 필요할 뿐이라는 태도라고 한다.
외교부가 이렇게 적극적인 이유는 물론 미국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정부 일각에서 흘러나온 얘기로 보자면 지난 14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2+2) 장관회의에서 미국측이 한일 군사정보보호 협정을 조속히 체결하도록 종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청와대가 주도하고 외교부가 총대를 맸다는 가설도 점점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시기도 마뜩찮다. 독도에 대한 도발과 동해표기 문제, 위안부 배상 및 사과에 대한 이슈가 부각되고 있는 형국에 국민 몰래 밀실로 추진하다 들킨 건, 아무리 좋게 봐줄래도 봐줄 거리가 없다.
정부는 일본의 대북 정보를 직접 제공받을 수 있다는 장점만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이 쓸 만한 정보를 제공하리라는 순진한 환상도 믿음이 안가지만 그보다는 정보, 군수로 이어지다 결국 전면적인 군사협정으로 이어질 수순을 계속 감춰두는 정부의 태도다.
정부라고 군사협정의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 터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한미일 군사동맹을 통해 미국이 구축하는 대 중국 전선에 끼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주도 해군기지 이전을 밀어붙이는 것도 이런 일련의 협정추진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일 터이다.
한미일 3각 군사동맹체제 구축이라는 그럴듯한 표현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중국이 이런 움직임을 가만히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염려도 뒤따른다. 북방3각과 남방3각이 대치하게 되는 형국을 구축하는 셈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현 정부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비쳐지는 모습은 단세포적이라는 점이다. 부디 이번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추진의 지속 여부를 숙고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