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한국 대선과 관련한 이슈들이 슬슬 전면에 나오기 시작했다. 야권주자들의 출마선언과 여권 경선룰 확정은 기성 정치의 정해진 수순이었다면, 이제 최대 관심사인 안철수의 책 출판은 다소 생경한 출정식이라 하겠다.
정치인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책으로 출판하는 행위 자체는 무척 낯익은 광경이다. 그 사람이 가진 정치적 스탠스와 향후 일정 등이 일목요연하게 담겨 있기 때문에 출간행사 때면 수많은 정재계 인사들이 구름같이 몰려든다.
그러나 우리가 안철수의 책에 주목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대선에 출마할 것이냐 말것이냐의 단초를 혹시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책 내용 자체가 이슈가 되기보다는 그 행위에 이면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내느라 정력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박근혜 의원을 비롯한 여당의 친박 인사들은 우선 책을 깎아내리는데 혈안이 되어버렸다. '별 내용이 없다'는게 요지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들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지적은 눈씻고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야당 대선 주자들은 자신의 경쟁력 저하를 먼저 우려한다. '그건 생각일 뿐이고'라는 반응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과연 이런 반응으로 넘겨버릴 수 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안철수의 생각'은 찬찬히 들여다 볼수록 그렇게 나쁘지 않다. 물론 적잖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관된 생각의 다발이 굵은 흐름을 이루고 있다. 예컨대 재벌개혁에 대한 그의 생각이 그렇다. 그는 놀랍게도 학계에서도 채 소화되지 않은 ‘이해당사자 이론’에 입각해서 재벌 문제를 진단하고 법조계에서도 아직 내용을 채우지 못했지만 방향이 뚜렷한 ‘기업집단법’을 대안으로 내세웠으며 그 생각의 틀은 ‘산업생태계’이다.
더구나 그는 종업원지주제나 이윤공유, 경영참가라는 미시적 실천 방안을 이미 실행해서 성공해본 사람이다. 그는 ‘보편 복지’와 ‘선별 복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보편적 증세가 필요한 이유 또한 정확히 지적한다. 당장 표에 도움이 되는 복지정책을 나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흔히 언론은 안철수 교수를 중도로 분류한다. 그러나 책만으로 놓고 볼 적에는 굳이 자리를 따지자면 이 책은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중간쯤, 아니 진보파의 일부 그룹보다 더 왼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당이고 야당이고 제대로 독서를 해야할 이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무리 생각이 훌륭하더라도 이것을 뒷받침할 정치적 역량이다. 행정부가 입안하고 입법부는 정치적으로 조정한다. 반대세력을 설득할 정치력이 있어야 하고, 이것이 없으면 안정적인 지지세력을 확보해야 한다. 정책적으로는 '확실히' 미흡했지만 확실한 정치적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저 훌륭한 '인맥'만 가지고 있던 안철수 교수가 갑자기 이러한 정치적 지지기반을 조직화할 수 있을까? 바로 이 지점이 민주통합당이 주목하는 이슈다. 혹자는 박원순식 시민정부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방식이든 현재 안철수 교수는 대선주자로 보기엔 '확실히' 미완성이다. 이 부분에서 안철수 교수는 책에서 밝힌 바와 같이 여전히 고민 중이다.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실현시킬 것인가? 그리고 그 방식은 직접 참여의 형태를 띨 것인가 아니면 일종의 '조력자' 역할에 그칠 것인가.
안철수 교수가 대선에 출마를 하든 안하든 어떤 의미에서건 대한민국의 정치는 변화하게 될 것이다. 기성 정치인 중 누가 당선이 되더라도 상처받은 시민들을 위로하는 길에 서겠다고 당당히 밝힌 안철수 교수의 행보를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부디 진짜 '정치'가 대한민국에서 발현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