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은 공중파 방송국들과 일부 금융기관 전산망이 일시에 해킹당한 사건으로 시끌벅적하다. 개개인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의 재산권 보호와 직결되는 금융기관 전산망 해킹 사건이 더 쇼킹할 수 있지만 국가적으로 보자면 대통령의 동선까지 저장된 방송사 전산망이 해킹당한 일도 결코 가볍지 않다. 더욱이 물리적인 전쟁 상황이라면 방송사 전산망 해킹이 미칠 파장은 엄청날 수도 있다.
현재 정부는 당장의 사태 수습과 더불어 해킹 경로 및 근원을 찾는데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사이버세계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상당히 태평한 편이다. 정부의 대응도 보다 근본적인 안전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쩐지 미덥지가 못하다.
보안전문가에게 확인한 바로는 우리가 일상 사용하는 스마트폰으로 네트워크 해킹까지도 가능하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개별 스마트폰이 해킹돼 도청기로 악용되는 사례 정도가 나타나고 있지만 이번과 같은 해킹 사건을 스마트폰 하나로 일으킬 수도 있다는 얘기는 소름끼친다. 섣불리 낯선 동영상 하나 보다가 내 스마트폰이 도청기로 변환시키는 사례만 해도 끔찍하다. 단순한 도청을 넘어 스마트폰의 카메라로 영상까지 해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니 고작 심부름센터를 시켜 사생활을 뒷조사하는 정도는 참 별게 아닌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번 해킹 사건이 나자마자 당장 북한의 해킹부터 의심하는 분위기다. 시기적으로 봐서 그런 의심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닐 터다. 특히 바세나르체제로 인해 하드웨어 수입이 엄격히 규제된 상황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다시피했던 북한이 작심하고 해킹 공격에 나서면 한국의 능력을 능가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다만 이미 세계는 사이버 전쟁이 한창인 시대인데 우리의 시야가 너무 좁아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일전 북한이 해킹 당하고 즉각 남한 정부를 의심해 비난부터 한 것이나 이번 한국내 유수 기관들의 집단 해킹에 먼저 북한을 의심하는 것을 보며 과연 이런 남북한 간의 상호 의심과 비방이 누구에게 가장 유리할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한동안 유럽 해커들이 전 세계 인터넷망을 주름잡았지만 근래 들어서는 중국의 해커들이 가장 극성을 떨치고 있다. 유럽 해커들은 대체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거나 사이버 세계에서의 자본 독점에 저항하기 위한 방법으로 해킹하는 사례가 많은 데 비해 중국 해커의 대다수는 금융망을 비롯한 산업체 침투에 더 집중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런 까닭에 지난 19일부터 이틀 일정으로 베이징을 방문한 제이콥 루 미국 재무장관은 시진핑 국가주석, 리커창 총리 등 고위층과 회동하면서 이례적으로 사이버안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고 20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루 장관은 이날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사이버 공격은 우리의 경제적 이익에 매우 중대한 위험”이라며 “우리는 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보기관과 민간 보안업체들은 자국 기업 전산망에 침입해 비밀을 빼돌리는 해킹 공격의 상당수가 중국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 해커들의 해킹 공격대상이 미국내 기업 망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의 공식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국방성 네트워크가 중국 해커들에 의해 해킹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적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 밖에서는 중국 정부가 해커들을 양성하거나 최소한 해킹 활동을 묵인하고 있다는 의심도 폭넓게 일고 있다.
이런 의혹과 비난에 중국 쪽도 침묵만 하고 있지는 않다. 리커창 총리는 지난 17일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식 기자회견에서 “중국 정부가 다른 나라를 해킹 공격하는 일에 관여했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며 “해킹은 세계적인 문제로 우리는 이에 반대한다”고 미국 발 비난에 반박했다. 또 관영 신화통신은 미국이 안보 이유를 들어 지난 몇 년간 중국에 무역장벽을 쳐왔다고 비난했다. 나아가 중국 공업정보화부 산하 국가인터넷응급센터는 지난해 정부 홈페이지 1,802개가 해외로부터 해킹 공격당했고 그 중 미국이 23%로 가장 많다고 비난했다.
이런 공방이 이어지는 때에 우리는 너무 태평했다. 중`고등학생들이 스마트폰 하나로 국가 기간전산망을 휘저을 수도 있는 시대, 해커가 새로운 시대의 전사로 거듭나는 시대에 우리의 인식은 아직도 몇 십 년 전 아날로그의 추억에 젖어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한숨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