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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3 17:43

대한문 천막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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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 천막촌




덕수궁 돌담길 초입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대한문의 원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이었다. 

고종황제가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에서 환구단으로 제천의식을 드리러 갈 때 주로 사용하던 문이 바로 이 대안문이다. 민가가 밀집하고 미국대사관저, 러시아 공관 등 외국 공관들이 많이 들어서 있던 정남향의 인화문에 비해 대한문은 일찌감치 도로가 잘 정비되면서 주요한 출입구로 활용되게 된다. 이 대안문이 대한문으로 바뀌게 된 것은 1906년이다. 화재로 소실된 전각들을 중건하면서 겸사, 규모를 키우고 이름도 ‘대한문(大漢門)’으로 바꿔 정문으로 삼았다. 

그 이후로도 대한문의 위치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 일쑤였다. 1910년 한일합병조약 체결 이듬해 조선총독부는 환구단 건물을 철거하고 총독부 건물에서 소공로까지 대로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1914년 황토현(광화문 네거리)에서 남쪽으로 환구단을 관통하는 태평정통이 개설되면서 대한문은 원래 위치에서 서쪽으로 옮겨졌다. 1926년 조선총독부는 덕수궁 땅 일부를 매각하면서 덕수궁 해체와 함께 대한문을 그 위치에서 다시 30칸 뒤로 물러나도록 했다. 1961년 서울시는 태평로 도로폭을 6m 확장했는데 이때 대한문도 6m 뒤로 물러나야 했다. 철책이던 덕수궁 돌담길이 복원되고 차도가 생기면서 대한문이 도로 한가운데 덩그맣게 남아 차량 통행을 방해하는 신세가 되자 결국 서울시는 1970년 12월 대한문을 22m 뒤로 옳겼다. 현재 위치한 곳이다. 

사람들에게 이런 대한문은 4대문이나 경복궁, 창경궁처럼 그다지 익숙한 지명이 아니다. 역사의 한 켠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이리저리 세파에 시달린 삶. 그런 까닭에 어쩌면 쌍용차 해고노동자, 강정마을 주민,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이곳에 모여드는 것도 새삼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들은 “함께 살자”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지난 번 대선 때 약속했던 박대통령의 국정조사는 어느새 유야무야 되어가는 분위기다. 천막을 치고 4계절을 보냈다. 어느새 그 천막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풍광으로 자리잡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남았다. 그런데 계속 이 농성촌을 철거하겠다던 중구청이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모두 깊이 잠든 월요일 새벽 전광석화 같은 기습작전을 펼쳐 천막 2동을 모두 들어내 버린 것이다. 도로점용허가를 받지 않고 천막을 설치해 도로소통을 불편하게 하고, 대한문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불쾌감을 준다는 이유다. 그리고 그 자리엔 대형 화단이 설치되었다. 아마도 최소한 화단은 도로소통에 불편을 줄지언정 관광객들에게 불쾌감은 주지 않는다는 이유일 게다. 혹은 오세훈 전 시장 시절 행정부시장을 역임했던 최창식 중구청장은 어쩌면 깊은 속내에 소외받는 이들의 집회, 시위의 자유 자체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연히 천막촌은 집시법에 의해 보호받아야 한다. 집시법과 도로법의 충돌에서 과연 어느 편을 드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이익인가? 집회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 중에서도 으뜸가는 권리로서 헌법재판소는 그 중요성 때문에 집회로 인한 소음이나 도로소통의 불편 등을 주변인들은 참아야 한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대법원도 집회로 인해 교통소통을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폐해가 극심하고 집회를 금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한문 옆 농성촌은 일반인들이 통행하는 데 큰 불편이 없다. 따라서 중구청은 덜 중요한 이익을 위해 더 중요한 이익을 희생시키는 행위를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법익균형성 등을 위반한 것이다. 

2001년 2월, 장애인들이 “지하철 이용 시민들이 30분 늦는 것을 이유로 비난받아야 한다면 감수하겠다. 그러나 30년 넘도록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장애인의 현실에 대해 우리 사회는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라며 지하철 선로에 자신의 몸을 묶은 적이 있다. 이 장애인들은 시민들의 출퇴근을 방해하였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주장은 정당하지만 방법이 틀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누가 장애인의 이동권에 관심을 가졌을까? 지금 쌍용차 해고노동자, 제주강정마을 주민들의 사정이 이와 다를까? 죽을 것 같아서 같이 좀 살자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 있다면 귀를 기울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1년 넘게 천막농성이 벌어지던 대한문 옆에서 엊그제 쌍용자동차 범국민대책위원회와 민주노총 등이 참여한 ‘희망지킴이’가 캠핑시위를 벌였다. 서울 중구청이 농성천막을 철거하고 화단을 설치했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시위대의 확성기 소리에 고궁의 고즈넉함은 꿈도 꿀 수 없다. 끝나지 않는 대한문의 시련을 바라보는 마음이 참으로 착잡하고 울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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