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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9 21:02
빈자의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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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의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의 의미 4박 5일간의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일정이 모두 끝났다. 어렵고 힘든 이들을 보듬고 아프고 병든 자들을 품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는 많은 이에게 울림이 되기에 충분했다. 짧다면 짧은 일정이지만 방한 기간 교황은 고통과 좌절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일깨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일정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위로’가 뽑혔을 만큼 교황은 13회에 걸쳐 발표한 메시지에서 가난한 이들과 청년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필수 요소로 여겨야 합니다.” “(세월호)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이들과 고통 받는 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교황이 충북 음성군의 복지시설 꽃동네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꽃동네 방문은 한국에서 가장 어려운 이들을 보고 싶다는 교황의 뜻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지난 16일 꽃동네 ‘희망의 집’을 찾아 노인 환자와 장애 아동‧어른, 입양을 앞둔 아기들을 만나 일일이 악수를 하고 머리에 손을 얹으며 축복했다. 옆에 수행원이 있어도 직접 가방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나, 아이를 보면 차를 타고 가다가도 멈춰서 직접 축복해주거나 입을 맞추는 등 아이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앉아 있기보다 서 있기를 좋아했고, 일일이 손을 흔들어 환영해주는 인파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아이들이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 모양을 만들면 똑같이 화답해줬다. 낮은 이들과 함께할 줄 아는 겸손함과 소탈한 모습에서 사람들은 종교인이라면 저런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번 방한 일정 중 프란치스코 교황은 “청빈은 봉헌 생활(수도생활)을 지켜주는 방벽이자 성장하도록 돕고 올바른 길로 이끄는 어머니”라고 말하며, 수도생활이 청빈과 정결, 순명을 3대 덕목으로 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청빈을 서원하면서도 부자로 살아가는 봉헌된 사람들, 즉 수도자의 위선이 신자들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교회를 해친다는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그는 수도생활이 조용히 개인의 수양만을 위한 게 아니라 교회와 세상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중에 많은 어록을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상대의 마음을 못 열면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라는 말이다. 아시아 주교들과 만난 자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의식하고 다른 이와 공감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대화의 출발점”이라며 “다른 이들, 다른 문화와 대화를 시도할 때 출발점과 근본 기준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이다. 우리의 정체성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온 말이 바로 “우리의 대화가 독백이 되지 않으려면 생각과 마음을 열어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야 만 한다”는 화합과 소통에 대한 것이다. 가는 곳마다 파격적인 행보로 이슈를 만들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그가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인 대한민국을 찾게 된 것은 아마도 세속에 물들고 찌든 종교세계를 향한 하나의 일침일 수도 있다.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자리, 어떻게 보면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겸손함과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은 분명 존경받을 만하다. 탐욕과 부정, 부패로 얼룩져 그 신뢰도를 잃어가고 있는 한국 종교계에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은 경종을 울릴 만했 다. 그렇지만 신앙인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비치는 어떤 ‘사람’이 아닌 바로 신앙인들, 즉 종교인들이 가진 각자의 경서라 할 것이다. 기독교인이면 ‘성경’이 될 것이며, 불교인들에게는 ‘불경’이 될 것이다. 경서가 없는 종교는 진정한 의미의 종교라고 볼 수 없듯이, 경서를 가진 종교라면, 경서에 기록된 말씀이 신앙의 기준이 돼야 할 것이다. 그 수많은 종교와 그 종교가 가진 많은 경서들 중 장래사를 약속하고 기록한 경서는 또한 ‘성경’이 유일무이하다. 예언과 그 예언이 이루어진 성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서 또한 성경밖에 없다. 경서는 가지고 있지만 경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그 어떤 종교의 종교지도자이든, 진정한 의미의 종교지도자라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 경서의 가르침대로만 생활했다면 지금처럼 종교세계가 부패하지도 타락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은 어쩌면 한국 종교세계에 ‘진정한 신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또 한 번의 계기가 됐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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