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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쪽'은 없다. 정치인에겐 정년이 없다. 비록 정계은퇴를 하였다 해도 기회가 없어서 복귀를 못하는 것이지, 대의명분이 장애가 되지 않는다. 가능성만 있으면 언제든지 출마할 수 있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정계 은퇴 선언 후 다시 복귀해 결국 대통령에 당선된 이력도 있다. 물론 정치인은 자신과의 신의를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나 또한 그것이 변화무쌍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도 일정한 진리이다. 이런 현실적 상황 덕분에 우리는 희대의 쇼를 한 편 감상하게 되었다. 혹자는 대통령 선거의 역동성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한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무소속으로 출마를 결심하고 어제 기자회견을 했다. 그가 대선 출마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네 가지이다. 지난 잃어버련 10년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 좌파 정권의 집권을 저지하겠다는 것, 그리고 보수층의 집결을 공고히 하고 마지막으로 구국의 결단이었다는 것이다. 듣기에는 참 좋은 말이나 한 편으로는 참 낡고 진부한 레토릭으로 가득차 있다. 지난 박정희 정권 이후 줄기차게 들어오던 단어들로 나열되어 있다. 역설적으로 보면 그만큼 별로 명분이 없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것도 수일 간에 걸친 장고 끝에 나온 말이라고 한다. 그래도 이성적으로 한 번만 더 곱씹어 보면 이명박 후보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층의 대표가 될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실상 이명박 후보가 여론조사마다 지지율 50%를 넘는다는 기현상을 보이는 것은 결국 다양한 성향의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심지어 지난 대선에 민주노동당을 찍었던 사람마저도 이번엔 이명박 후보에 관심을 두고 있다. 뭐 이회창 후보로는 사실 이번 대선 출마가 그다지 손해가 날 것 같지는 않다. 이명박 후보가 여권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낙마하게 되면 한나라당 집권이 어렵다는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김경준 씨의 귀국도 변수다. 이 전 총재는 꽃놀이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지지율 1위가 되면 내친 김에 대통령을 하는 것이다. 1위가 되지 못하더라도 집권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단일화를 통해 지분을 챙길 수도 있다. 이렇게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이해 안되는 것도 아니나, 문제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덕분에 엉망진창이 되고 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번에도 지적했듯 여론 조사를 통한 후보 선출은 결국 정당 민주주의의 훼손을 가져왔다. 물론 무소속 후보로 나오긴 했지만 결국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회창 후보는 정당적 후보 선출의 절차를 완전히 무시하고 말았다. 바로 이 점이 혹자들이 지적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더군다나 그가 내세운 명분들은 원칙에는 충실하지만 잘못된 시대인식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한다. 즉 이명박 후보와의 차별성을 보이기 위한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여전히 '좌파정권' 운운하는 이회창식 보수주의는 장래의 대한민국과 한반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이번 이회창 씨의 출마 선언은 과거의 구태를 전혀 벗어나지 못한 기회주의적 태도이며, 결국 청와대에 앉아야겠다는 개인적 이기심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말리고 싶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유권자들의 현명한 결정에 기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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