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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선종과 사랑의 삶



  투병 중이던 김수환 추기경이 한 말이 있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칠십 년이 걸렸다." 만인이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 사랑을 진정 가슴으로 품고 사는 것은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셨던 그 분에게도 지난한 일이었나 보다. 그러나 그만큼 그 분은 소담하고 솔직했다. 어떤 사람이 김수환 추기경 닮았다고 하자 '그런 소리 많이 듣습니다'라고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던 모습에서, 철거민촌에서 하룻밤을 지샌 후 '화장실 사용이 불편했다'며 고백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바로 거리의 천사를 발견한다.

  선종하신 추기경은 예전부터 자화상 아래에다 '바보야'라고 적어두고 그 앞에서 바보가 되길 자청했다 한다. 가장 근엄하고 세속과 동떨어질 것 같은 추기경의 모습을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늘 언제나 사람들 속에서 소박한 성자의 모습이었다. 한 자동차 회사에서 '추기경이 티코를 타고 가는 걸 보고 티코를 구입했다'는 광고문구를 내는 것 조차 흔쾌히 허락할 정도였다. 그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부터 찾았다. 마산 주교 시절 한 사형수와 인연을 맺은 후 사형집행 전 미사에 늘 모습을 드러내었고, 많은 재소자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빈민과 철거민, 파업 중인 노동자들, 학대받는 여성들을 가장 많이 찾은 사람도 바로 고 김수환 추기경이다.

  그는 교회는 담을 허물고 사회와 함께 하기를 늘 바랬다. 추기경으로 서임되던 1968년 그는 서울 대교구장 취임미사에서부터 이런 정신을 내비쳤다. 그 이후 한국의 카톨릭은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던 현대사의 암울한 시절 동안 독재와 폭압정치를 비판하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명동 성당을 활짝 열어 가난하고 핍박받는 이들에게 쉴 곳을 마련해 주었다.

1971년 성탄 미사는 그런 그분의 모습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때이기도 했다. 당시 비상사태를 선언이 있자마자. 김수환 추기경은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이 땅의 평화에 해를 끼칠 것"이라며 티비 생중계 중에 강론했다.

서슬퍼런 유신 시절에 어느 사회 지도적 인사들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다. 명동 성당에 피신한 민주인사들을 체포하러 경찰들이 들이닥쳤을 때, 그는 "내 뒤에는 신부님들이 있고, 신부님들 뒤에는 수녀님들이 있다, 나부터 밟고 가라"며 외쳤다.

7.4남북 공동성명과 8.3 긴급조치 등 이어지는 유신시대의 파국에 시국성명 발표를 아끼지 않았고, 인권과 민주 회복의 길을 외쳤다.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광주를 위한 특별 기도는 당시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일 것이다. 미사 마지막에는 늘 북한 신자들을 위해 바쳤다.

이렇게 대한민국에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가 그에게 진 빚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는 권력에 당당했고, 또 초연했다. 많은 이들이 선거때마다 그에게 한마디 얻어가려고 줄을 섰다. 그러나 그는 그 누구에게도 불편부당하지 않았고, 오로지 '사람을 섬기라'는 한 마디만 내주었을 뿐이다.

얼마나 권좌에 앉은 이에 무심했던지 한번은 김영삼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간 자리에서 김영삼 대통령 의자에 바꿔 앉으면 안되겠냐고 했단다. 황당한 표정의 비서에게 답한 이유가 걸작이다. "내가 사진 찍으면 얼굴 이쪽이 잘 안 나와서..." 이런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때문에, 우리는 그가 정치적인 사안에 대한 어떤 발언에도 정교 분리라느니 하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에게 사랑의 메세지를 전달했다. 임종을 지킨 교구청 사람들과 의료진들에게 남긴 말은 "고맙다"였다. 그에게는 다른 이에게 받는 존경보다 자신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애쓴 이들에 대한 고마움이 더 소중한 가치인 모양이다. 또 선종 직후 평소에 밝혔던 장기기증 의사에 따라 안구를 적출 두 생명에게 빛을 안겼다. 종교적 삶의 시작부터 마지막 까지 그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종교적 메세지를 온몸으로 실천한 셈이다.

그는 종교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가장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종교와 상관없이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나눔과 사랑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도 가르쳐 주었다.

자유로운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그에게 진 빚은 이제 우리들이 나눔과 사랑의 삶으로 되갚아야 할 차례이다.

민주화 이후 우리는 경제적 큰 파고를 넘나들면서 점점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핍박받고 소외받는 이들에 대한 관심은 뒤로한 채 어떻게 하면 내 아파트 가격만 오를까, 내 자식은 어떤 대학에 들어갈까만 생각해 왔다. 용산참사도 어쩌면 이런 우리의 무관심이 빚어낸 참극인지도 모른다.

영면하신 김추기경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나부터 사랑과 이웃을 위한 기도에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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