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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3 18:14

미디어 관련법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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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관련법 유감

  고흥길 문방위 위원장의 어설픈 미디어법 직권 상정으로 난장판이 된 2월의 임시국회가 끝났다.

의장 직권 상정 20분 전에 극적으로 여야가 타협함으로써 미디어법 논란은 100일 간의 유예로 남았다.

김형오 의장은 이번 타협을 '대의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자평했다. 한나라당 역시 만면에 희색을 띄었다.

청와대는 표정관리하느라 그런지 '아쉽지만 수용'이라며 얼버무렸다.

당장 민주당은 한숨 돌린 분위기이지만 건진 것이라고는 사회적 논의기구의 국회 내 설치 뿐이다.

실질적으로는 100일 후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표결로 밀어 붙이더라도 할 말이 없게 되어 버렸다.

결국 민주당에게는 논의 기구 안에서 최대한 미디어법의 부당성을 입증하여 여론전을 펼쳐야 하는 숙제만 남은 셈이다.

  이번 미디어법 파행은 실상 언론과 관련한 중대한 논점을 몇 가지 담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디어는 정보 제공을 통한 여론 형성과 상업적 오락이라는 두 측면에서 발전을 해왔다.

특히 공중파를 통한 콘텐츠의 제공이라는 측면은 그 어떤 매체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해주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공성이 강조되었으며, 동시에 엄청난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였기에 상업적 측면이 극단적으로 강조되는 모순된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미디어 개혁은 공공성과 상업성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분리하여 각각의 영역을 전문화할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의 미디어는 오히려 교양과 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형태를 지향한다.

이것은 시청자의 경향이 변한 것일 뿐만 아니라 정보산업 전반의 틀이 통합적 형태로 변화한 것에 기인한다.

  법안을 발의한 한나라당이 내세우고 있는 명분 역시 미디어산업의 활성화와 여론의 다양성 확대로 요약될 수 있고, 이를 위해 대기업과 신문사들이 지상파방송과 종합편성채널, 보도채널을 소유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제거하는 것이 법안의 핵심이다.

전세계적 무한 경쟁 상황에서 미디어산업의 활성화에 거대자본이 참여할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현행법 역시 사실 보도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는 이런 대기업이나 신문의 참여가 개방되어 있는 상태이다.

상업성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케이블 방송의 경우에는 현재 무제한적인 경쟁으로 초창기 케이블보다 질과 양에서 훨씬 진화되어 왔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대기업이나 신문이 보도와 관련한 영역까지 침범할 경우이다. 한나라당이나 조선, 중앙, 동아일보와 같은 거대 매체에서 주장하는 것은 보도 부문 산업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를 이끌어 내자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보도 분야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수익성을 이끌어 내는 분야가 아니다. 방송콘텐츠 중에서 해외시장에 유통되고 여러 가지 파생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드라마나 다큐멘터리같은 프로그램이다.

뉴스는 시의성이 강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한류처럼 경제적 효과를 내기는 어려운 콘텐트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대기업이 자본을 투자한다고 해서 뉴스 콘텐츠산업이 활성화되지는 않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대기업과 신문사들은 여론의 다양성 확대를 방송 진입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분명 여론의 다양성은 방송의 이념인 공공성의 중요한  목표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여론의 다양성은 거대 기업과 강자의 목소리를 보장하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고, 힘의 논리가 좌우하는 사회를 최소한이라도 합리적이고 공정한 방식으로 여론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이 그 본질이다.

따라서 대기업과 거대 신문사들이 방송 부분, 특히 보도 부분에 참여하게 된다면 오히려 여론의 획일성이 조장될 가능성이 훨씬 큰 것이다. 이는 공공의 영역이 사적 영역에 포획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더군다나 우리 사회는 지난 시기에 걸쳐 방송의 공공성이 권력에 의해 해체되어 버린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땡전뉴스라 불리던 KBS는 말할 것도 없고 민영방송 역시 검열과 폭압 속에 왜곡된 보도 태도에서 벗어난 지 겨우 10 몇 년이다. 우리 사회의 미디어가 공공성을 회복하는 과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그런데도 공공성의 내용적 변혁을 고민하기보다 미디어의 형식 자체를 바꾸겠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사회적 강자인 대기업과 신문사들의 방송진입을 허용하는 것은 여론 다양성의 본질과 어긋난다. 특히 한나라당의 의도를 의심하게 하는 것은 직권 상정을 위해 내세웠던 수정법안이다. 재벌의 방송참여는 제한하면서 조중동의 참여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는 것은, 오히려 미디어법의 산업 창출효과보다는 오히려 보수 언론의 여론 획일화를 꾀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보수 일간지 기자들은 방송학원 다니느라 한창이라고 한다. 즉 한나라당의 법안대로 미디어법이 개정된다면 새로운 일자리 창출 없이 보수 일간지 기자가 그대로 방송을 진행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1년 간 우리 사회에서 약자의 목소리는 수많은 경제 논리에 파묻혀 왔다.

물론 미디어산업의 세계화라든지 뉴미디어의 변화에 따른 제도의 개선을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이명박 정부 1년을 맞아 여러 언론사들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법개정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국민의 목소리, 즉 민의를 담는 언론에 대한 제도, 특히 국민의 재산인 주파수를 사용하는 방송에 대한 제도 변화에는 모든 국민의 합의가 반드시 필요한다. 현행 방송법도 약 5년에 걸친 합의절차를 통해 수립되었고 유럽의 방송선진국들도 오랜 기간 합의절차를 거쳐서 제도를 수립시켰다.

미디어관련법, 아무리 늦더라도 온전한 사회적 논의가 반드시 따라야만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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