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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4 02:57
영국도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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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도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우리 속담은 처음부터 가진 것 없이 태어나 힘겨운 경쟁을 벌여야 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누구나 최선을 다 하고 노력하면, 처음 타고난 배경과 상관없이 출세할 수 있고,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는 자본주의와 빈부격차가 극단의 현상을 보이고 있는 현시대 서민들에게는 더욱 절박하게 다가온다. ‘개천에서 용 난다’ 속담은 사회 유동성과 연결되어 있다. 사회 유동성(Social mobility), 즉 부의 수준, 학력 수준, 계층에 따른 사회적인 틀이 견고하게 형성되어 있다면, 이는 사회 유동성이 낮은 것이다. 반면, 그러한 틀이 미약하고, 부의 수준, 학력 수준, 계층에 상관없이 누구나 노력 여하에 따라 희망하는 자리, 희망하는 수준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이는 사회 유동성이 높은 것이다. 사회 유동성은 그 사회의 건강도를 측정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사회 유동성이 낮으면 낮을수록 그 사회는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기득권층의 기득권이 세습되며, 비기득권층의 고충은 가중된다. 만약 낮은 사회 유동성이 구조화되고 제도화되면 그 사회는 그야말로 가진자들만의 세상이 되어 가지지 못한 자들은 평생토록, 대대손손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영국의 사회 유동성이 궁금해진다. 과연 영국에서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게 가능할까? 전직 장관이자 사회 유동성 전문가인 Alan Milburn이 작성한 ‘직업에 대한 공정한 접근성(Fair Access to the Professions)’ 보고서가 이에 대한 답을 전하고 있으며, 아쉽게도 정답은 ‘그렇지 않다’로 드러났다. 본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에서 법조계, 의료계, 언론계 등 주요 고급 직업들에 종사하는 이들의 상당수가 부유층 출신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상당수는 값비싼 사립학교 출신들로, 이는 처음부터 주요 고급 직업들이 이들에게 예약(?)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바꿔 말하자면 용은 항상 용이 나는 곳에서 계속 나오고, 개천에서는 용이 나올 수 없도록 사회가 구조화, 제도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부유층은 그 자녀들 역시 부유층으로 길러지고, 빈곤층은 그 자녀들 역시 빈곤층으로 길러지는 셈이다. 영국 정부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 대학들로 하여금 빈곤가정 출신 지원자를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 입학시키도록 하고 있으나, 여전히 빈곤층 자녀들 중 대학에 입학하는 비율은, 또 이들이 좋은 직업을 갖게되는 비율은 부유층 자녀들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만약 영국이 지금과 같은 식으로 사회 유동성 확보에 실패한다면, 향후 영국의 서민층 및 빈곤층 자녀들의 앞날은 암울해진다. 그나마 과거에는 저임금 단순노동이 이들의 종착지였지만, 이제는 이민자의 과다 유입으로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고등교육에 대한, 또 제대로된 일자리에 대한 접근성이 갈수록 차단되는 상황에서, 서민층 및 빈곤층 자녀들은 사회의 잉여인력으로 소모되거나 버려질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이는 단순히 영국인에 해당하는 얘기만은 아니다. 재영한인 자녀들 역시 이 같은 영국의 사회 유동성 약화에 희생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영리하고 성실한 한국인의 장점을 잘 살려서 영국 사회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훌륭한 한인들도 많이 나올 것이고, 또 부유한 환경 덕에 사립학교를 다니고 우수 대학을 졸업하는 한인들도 많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재영한인 자녀들이 다 사립학교를 나오고, 우수 대학을 나와서, 영국에서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는 일을 불가능하다. 도무지 용이 나올 수 없는 개천의 배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영한인 자녀들에게는 이 같은 영국의 낮은 사회 유동성을 돌파할 수 있는 남다른 지혜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영국에서 용이 된 재영한인들의 도움 및 한인사회의 역할이 요구되어진다. 이미 영국에서 안정적인 위치에 선 한인들과 한인사회가 앞으로 재영한인 사회를 이끌어갈 후손들을 위해 아낌없는 조언과 도움으로 길을 터주고, 힘과 용기가 되어 주어야 할 것이다. 배경, 출신에 상관없이, 또 인종에 상관없이 용이 되는 재영한인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들 영국인들에게, 영국에 있는 세계인들에게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우리 속담을 멋지게 증명할 그 날이 오기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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