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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군비 경쟁과 다자간 안보의 필요

  세계 2차대전과 냉전이라는 거대담론의 종식이 세계에 미친 영향은 바로 세계 각국의 전쟁억지력 확충이었다.
대부분의 국가는 최소한의 안전보장장치를 마련해야 했으며 그것도 절대적인 억지력이 아니라 잠재위협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군비를 유지해야 하는 상대적인 억지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군비증강은 한 나라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것이었으며, 결국 다자간의 협력적인 안보체계를 구상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블록화된 안보동맹의 본질적인 성격이다.

얼마 전 독일 포츠담에서 열린 G8 각료회담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미국의 군사 및 외교정책에 대해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해 초 미국의 유력 시사지 ‘포린어 페어스’에 실린 논문에서는 미국이 마침내 러시아를 핵으로 선제공격하고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 즉 제1차 가격능력을 갖췄다는 내용을 피력했다.

미사일 방어를 필두로 미국의 핵전력은 지속적으로 증강한 반면 러시아의 핵전력은 노후화하고 증강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반격이라도 하듯 신형 탄도탄 발사 실험을 감행하는 등 냉정체제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군비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세계는 심각한 군비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매우 어려운 선택에 직면할 것이다.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은 지구를 수차례 파괴할 수 있는 양의 핵무기로 무장하고 극도의 적대감으로 사사건건 대립했다. 그러면서도 냉전을 평화적으로 관리하여 60년의 오랜 평화를 구가했다.

서로가 상대의 선제공격을 당한 이후에도 궤멸적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제2차 가격능력을 갖추어 핵전력의 균형이 유지됐기 때문이다.

  비대칭적인 핵전력의 불균형이 발생한다면 그 영향은 전 세계에 미칠 것이며, 특히 군비경쟁이 점차 가속화되어 가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결과를 촉발할 것이다.

신형 전투기 J-10의 개발과 최신예 구축함 도입을 완료한 중국의 경우 2013년까지 차세대 전투기와 이지스함을 순차적으로 배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한 일본 역시 현존 최강의 전투기인 F-22와 신형 이지스함을 차례로 건조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이번에 이지스함 '세종대왕함'을 비롯해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반면 아이러니한 사실은 가장 분쟁이 치열한 지역이 동북아시아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치열한 동북아시아의 군비 경쟁은 사실상 핵전력의 균형이 깨졌을 때를 대비한다는 의미가 더욱 강하다.

  이러한 원인에는 미국의 국내정치적 요소가 일차적이다.  미국이 미사일 방어망 구축을 추진한 것은 냉전 당시 구축된 군수산업과 기타 관련 인사들이 정치경제적 압력과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주된 이유다.

이른바 불량국가나 테러리스트의 위협은 그와 같은 내부적 동인의 외부적 명분에 불과하다.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연평균 10%에 육박하는 경제성장률을 자랑해온 중국은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군사비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경제력이 커지는 만큼 상응하는 몫을 요구하는 군부의 주장이 제1차적 동인이다. 같은 종류의 압력은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문제는 그와 같은 국내정치적 논리가 국제정치적으로 정당화되고 그것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경쟁적 군비증강, 즉 국제적 군비경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러시아가 미국의 군사외교 정책을 비난하고 나선 것은 고유가 덕분에 생긴 경제적 여유를 군비 증강에 사용하기 위한 명분인 동시에 신호로 볼 수 있다.

미국의 군비 증강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군비 증강은 미국의 군비 증강과 미.일 밀월관계, 그리고 일본의 재무장을 명분으로 삼을 것이다. 중국의 군비 증강은 미국과 일본의 군비 증강에 명분을 주는 한편 신흥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인도의 군비 증강에 명분을 제공할 우려가 있다.

  요컨대 내부의 정치경제적 이유로 시작한 군비 증강은 서로의 이해가 맞물려 가속화되는 속성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가상 적국의 위협을 과장하는 효과도 지니고 있어 매우 위험한 국제정치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다자간 안보협의체가 필요한 이유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는 동시에 군비 증강에 대한 국내적 압력을 완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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