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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대란과 정부에 대한 신뢰



  동서고금에 걸쳐서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는 보이지 않는 죽음의 공포일 것이다.

특히 미명 속에서 다가오는 불확실한 존재는 '유령'이라는 이름으로 늘 언제나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전쟁터에서 옆에 있던 동료가 죽는 모습은 공포스럽다기 보다는 오히려 현실적이다.

그러나 소문에 소문으로 다가오는 '흑사병'과 '종말'은 사회 전체를 패닉으로 몰고 간다.

  이번 한국에서 벌어지는 '광우병 대란'은 이런 전체적 공포의 총합이라 할 만하다.

감염경로나 발병메커니즘, 심지어 그 원인균마저도 확실하지 않은 '변종크로이펠츠야콥병'은 21세기 새로운 '흑사병'으로 한국사회에 들이닥쳤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의사소통의 공간을 통해 그 두려움이 번졌고, 청소년이고 노인이고 할 것 없이 촛불을 들고 청계 광장으로 나섰다.

민초들 사이에서 대통령 탄핵 서명이 100만 명을 넘어선 것은 그 두려움의 상징적 실체이다.

마치 봉건 시대 민란을 연상케 할 정도의 기세다. 과연 우리는 21세기의 문명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일까?

  문제는 걱정스러워 하는 이나 이를 달래는 이나 누구도 그 실체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황우석 사건으로 주목받았던 과학자 집단의 토론 공간인 BRIC에서 조차도 내린 결론은 '지금은 미국산 소고기가
위험한지 아닌지 아무도 모른다'이다.

이를 두고 보수 언론들은 자기 입맛에 맞게 마치 '위험이 없는 양' 왜곡된 기사를 여과없이 내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대 국민 설득은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처음엔 미국산 소고기의 안정선을 확신하는 듯 하더니 이제는 발병하면 수입통제가 가능하다고 둘러대고 있다.

국민들을 더욱 당황하게 한 발언은 대통령 입에서 나왔다. 전임자의 정책을 종결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이번 소고기 수입 협상 과정에서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이 졸속으로 처리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의 수입 금지의 과정이나 핵심,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사태의 파장까지 신중히 고려했어야 할 먹을거리 문제를 단지 데이비드 캠프 방문의 선물용 이상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어쩌면 '경제대통령, 실용정부'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동안 대국민 정책에 소홀했던 경제 지상주의자들의 한계일게다.

  촛불 집회와 인터넷 언론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은 그러한 대국민 인식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는 이번 촛불 문화제와 인터넷 상의 여론을 비이성적인 광기로 규정하고 이에 대해 철저한 통제를 하겠다고 팔을 걷어부쳤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원인제공자는 바로 청와대 자신이다.

아무런 여론 환기도 없이, 대국민 홍보나 의견 청취, 설득의 절차 없이 밀어붙이기식 정책을 폄으로써 국민들의 아무런 정보도 제공받지 못했다.

'무지'는 '공포'를 낳는다.

국민들의 반응은 이런 공포의 당연한 반응인 것이다.

더군다나 이명박 정부의 구성원들은 집권 초기부터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

재산형성과 비위는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정책들은 밀실행정의 표본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렇게 신뢰가 깨진 상태에서는 정부의 어떠한 정책도 국민들에게 의구심을 낳을 수 밖에 없으며 그 정책적 효과도 거둘 수 없다.

단적으로 만약 이 상태로 미국산 소고기가 수입되면 아예 대한민국의 소고기 시장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시장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수입산 소가 한우로 둔갑하는 한국에서 누가 소고기를 사먹을 것인가?

따라서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신뢰의 회복이다. 지금이라도 협상 과정의 전모를 솔직히 털어 놓고 광우병에 대한 완전한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민들을 설득하려면 공직자가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렇게 안전성에 자신있다면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는 30개월 이상된 소고기를 직접 국민들 앞에서 먹어보여야 한다.

자신을 뒤로 쏙 빠진 채 공허한 구호만 남발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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