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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맛골 훼손하는 한국, 영국으로부터 한 수 배워라

피맛골, 서울 종로 바닥에서 술 한 잔 마셔본 사람이라면 아련한 추억으로 떠올릴 옛 정취와 서민들의 소박한 삶의 이야기들이 가득한 그 피맛골이 조만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거나, 적어도 이전과 같은 모습, 이전과 같은 느낌은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피맛골의 유래는 이렇다. 조선시대 신분 낮은 서민들이 종로 큰 길을 지나는 고관들의 행차와 마주칠 경우, 이들이 지날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하다 보니, 서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골목에 만들어진 길, 즉 말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는 의미로 피마(避馬)에서 유래하였다. 서민들이 많이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서민들이 애용하는 주막, 선술집, 식당들이 좁은 골목길마다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김두한 등 역사 속의 유명 인물들이 즐겨 찾았다는 저 유명한 전토의 청진동 해장국 골목도 인접해 있었다.

그런데, 피맛골과 청진동 해장국 골목 일대를 헐고 빌딩숲으로 만드는 도시환경정비구역 변경안이 이번 주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고 한다. 피맛골 일대를 대형 빌딩숲으로 만든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 이에 대한 반대 여론이 일자 서울시는 몇 차례의 수정을 거듭해 최종적으로는 피맛골 골목은 약간(?)의 변화만을 주고, 최대한 보존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은 것 같다.

오래된 것을 없애고 새 것, 큰 것을 만들어 모든 것을 현대화하고, 더 큰 경제적 수익을 올리겠다는 대한민국의 후진적인 발상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특별히 전통적인 가치들이 철저하게 보존되고 보호받고 있는, 그리고 더 나아가 그 가치들을 통해 엄청난 부가가치를 누리고 있는 이 곳 영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조국의 이 같은 어리석음이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

모두가 공감하듯이 영국은 미련할 만큼 오래된 것들을 보존하는 나라이다. 한국 같았으면 벌써 허물고 초현대식 대형 건물을 세웠을 수 많은 오랜 건물들이 법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으며, 아주 작은 생활 소품들까지도 이들은 ‘오래된 것’에 지나칠 만큼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다 보니 발전이 느리고, 답답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얻어지는 효과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무엇보다 관광 대국으로서 영국의 저력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다름아닌 이 오래된 것에 대한 가치 부여와 보존 노력이다. 관광객들이 영국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영국에만 있는 그 오래된 것들이 대부분 원래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 된 식당의 음식이 유난히 맛있을 리도 없고, 수십 년 된 펍의 맥주가 유난히 시원할 리도 없다. 수백 년 된 건물이 유난히 편할 리도 없고, 수백 년 쓰던 물건들이 유난히 작동이 잘 될 리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존재해온 것 만으로도, 수 많은 사람들의 발길과 손길을 거쳐 여전히 그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 만으로도 그것들에 담긴 정취와 정서를 공감하면서 까닭모를 경이로움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한국을 찾는 해외 관광객들의 입장에서 그들은 과연 종로 바닥에서 현대식 대형 빌딩숲에서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어할까, 아니면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피맛골 좁은 골목의 오래된 선술집에서 빈대떡을 맛보고 싶어할까? 빌딩숲을 세워서 스타벅스 같은 현대식 글로벌 체인점들이 잔뜩 입점하고 나면 당장 몇 푼의 수익은 거둘 수 있겠지만, 그 만큼 우리만의 그 무엇을, 오랜 세월 우리들의 정취와 정서가 담긴 소중한 유산을 잃어버린다는 생각을 과연 서울시는 왜 못하는 걸까?

피맛골의 흥미로운 유래와 오랜 정취가 간직되어 있는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켜 해외 관광객들이 피맛골을 경험하기 위해 한국을 찾게 된다면, 그로 인한 경제 및 기타 부가가치는 분명 빌딩숲을 통한 것 이상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만약 영국 같았더라면 피맛골 지역에서 낙후되어 안전에 위협이 될 만한 부분에 한해서만 필수적인 보수를 거치되, 최대한 원본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작업을 하고, 이 지역을 보존, 보호 구역으로 설정,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금지하는 한편, 관광청 및 문화예술 관련 부처를 통해 피맛골과 관련된 관광 정보를 작성, 홍보하여 해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만들었을 것이다.

다른 영역들에 대해서는 몰라도, 이 같은 오래된 것들에 대한 보존과 그로 인한 효과 창출 면에서는 분명 한국이 영국으로부터 한 수 배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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