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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자는 대한민국의 이념지도만큼 복잡한 지도는 없다고 말한다. 한국전쟁이 낳은 갈등의 씨앗은 전후 반세기에 걸쳐 무럭무럭 자라나 남과 북을 가르고 또 남과 남을 갈랐다. 서로를 의심하고 불신하게 만들고 다른 이의 행동은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여겼다. 같은 신념을 가진 동지라 믿었던 이가 배신하는 것이 일상다반사였다.

진보진영은 진보진영대로 민족이니 자주니, 혹은 계급이니 하면서 갈라졌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사회 기득권을 공고히 지키고 있던 보수가 있었다. 사실 보수도 가지각색이었다. 삶은 무저갱이나, 골육상잔의 끔찍한 기억으로 반공으로 내몰린 이가 있는가 하면 역사 이래 사회의 지배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던 '진짜 보수'도 있었다.

  실상 이념이란 분류하기 어렵다. 본질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신념을 가지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데올로기는 일종의 스펙트럼이다. 다만 '민족'이나 '국가' 혹은 '공동체'라는 추상적 단위가 이들을 묶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했을 따름이다. 이런 본질적인 차이는 한 사회를 정체된 상태로부터 구출한다. 삶의 양식이 변함에 따라 가치 체계가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자연스러운 현상을 지속하는 가장 건전한 방법은 바로 '다름의 인정'이다. 그것이 가능할 때, 우리는 상대적 가치로서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으며, 인간을 소외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과정을 거부하는 이들이 있다면, 바로 이들이 '공공의 적'이다. 이들은 다른 이들을 인정하지 않으며, 질시와 파괴, 차별을 일삼는다. '단일화'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홀로코스트'같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만행도 저지른다. 역사는 이들이 어떻게 파시스트가 되었는지를 생생하게 증명했다.

  지난 10일 한 무리의 파시스트들이 국립현충원을 '습격'했다. 백발이 성성한 150여 명의 사람들이 붉은 가면과 곡괭이를 들고, 현충원에 안장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를 파해치겠다고 나섰다. 이들의 외침은 명징한 이분법이다. '좌파=친북=빨갱이'로 이어지는 도상성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 가운데 서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국립현충원'과 '김대중'의 상징성은 등치될 수 없는 것이었나보다. 이런 퍼포먼스를 통해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다른 이의 존재를 용납치 않겠다는 것. 파괴와 분열만이 그들의 무기다.

  동시에 그들은 모순의 한 가운데 서 있다. 민족과 단결을 외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누군가를 배제하려는 '못된' 습성을 가지고 있다. 마치 '합법'을 외치면서 '비합법'적인 정부 관료로만 구성된 어떤 정부와 경쟁이라도 하듯 이들은 자기당착적이다.

그래서인지 촛불에는 '도심테러'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방패와 곤봉으로 답하던 경찰이 낫과 곡괭이에는 수수방관으로 일관한 것도 일견 수긍할만한 행동일게다. 초록은 동색이요, 가재는 게편이 아니던가?

  이명박 대통령이 작년 이맘 때 국격이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 '국가의 품격' 정도로 풀이가 가능할 텐데, 이제 그 국격이라는 단어가 언제 쓰여야 하는지 헷갈리게 되어 버렸다.

부도덕한 위장전입자가 떡하니 대통령, 장관후보자, 대법관 자리를 꿰차고 있는 현실이니, 백주 대낮에 벌이는 만행에도 이제는 무덤덤해져야만 하는 걸까?

그들에게 '보수'를 넘어 '극보수'라는 이념적 용어를 붙여주기도 이제는 낯간지럽다.

'꼴통'이라는 비속어가 입에서 맴돈다.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보수는 보수가 아니다.


<전 유럽 한인대표신문 유로저널, 전 영국 한인대표신문 한인신문, 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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