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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5 16:50
유로저널 정치평론: 고생은 같이 할 수 있어도 부귀영화는 같이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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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필립의 정치평론
고생은 같이 할 수 있어도
부귀영화는 같이 할 수 없다. -可與共患難, 難與同安樂-
춘추시대 초나라 사람인 범려(范蠡 )는 월나라 왕 구천
밑에서 이십 년 넘게 온갖 고생을 견디며 드디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상장군에 봉해진다. 그러나 월왕
구천이 고생은 함께 할 수 있어도 부귀영화는 함께할 수 없음을 간파한 범려는 배를 타고 제나라로 탈주하게 된다.
(출처: 爲人長頸鳥喙
可與共患難 不可與共樂- 越王句踐世家) 원문은 구천에 대한 관상으로 목이 길고 얼굴이 검으면 욕심이 많고 참을성이 강한 상이라 하여 고생은 같이 할 수 있어도 부귀영화는 같이 할 수 없는 사람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록이 단순히 구천에 대한 평가로 끝났는가 하는 것이다. 서양사와 달리 동양 역사에 번번히 등장하고 있는 배신의 기록들이 유독 많음은 어연 일인가. 정치판이 개개인의 완력으로 승부를 가르던 수 천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러한 배신의 역사가 이제 한 국가 국민들을 상대로 한 배신으로까지 판이 커질 대로 커져 버렸다. 지난 대선 당시 전국을 도배하다시피 했던 대선 공약 플랭카드들이 아직도 생생한데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고 대통령 자리에 앉자마자 공염불이 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월 20만원씩 주겠다던 기초연금제도도 슬금 슬금 꼬리를 내렸다. 4대 중증 질환 무료 공약 또한 물 건너가고 있다. 대학 반값 등록금제 또한 고교 무상교육과 함께 나몰라라가 될 처지다. 대국민 약속 당시 넘쳐났던 국가 곳간이 대통령에 앉으면서 텅텅 비어가고 있다는 말인데….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우선할 게 아니라 나라 곳간을 축낸 쥐새끼들을 먼저 일망타진하는 일이 선행돼야 국민들이 약속 불이행에 따른 어느정도의 수긍을 할 것이 아닌가. 쥐새끼는 없지요, 약속 이행은 이미 글러버렸지요, 국민들 돌아서는 소리에 겁은 나지요. 덕분에 전씨 일가의 주리를 틀어 국민들의 관심을 돌려볼 요량이었으나 그것마저 약발이 안 먹히고 이새낀지 이석긴지까지 등장시켰으나 방송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적어도 약속을 지키려는 흉내라도 냈다면 국민들 가슴에 응어리지는 일을 없었을 것 아닌가. 돈 많은 부자당에서 각출(醵出)이라도 해서 공약 하나 정도는 실천하려고 했다면 그 또한 대견하지는 못하지만 그 노력은 가상히 보아줄 만도 하건만…
연애는 둘 만이 비밀스럽게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무언의 약속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결혼은 주례와 하객등 수 많은 사람들이 둘 사이의 관계를 보증해주는 정치행위이다. 대통령의 약속은 연애가 아닌, 수 백만 수 천만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이다. 그래서 국민과 결혼한 대통령이라고 구호도 만들지 않았던가. 그 행위 자체가 틀어져버렸을 때는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아야 한다. 정권을 잡기 위해 불가능한 공약들을 남발했다가 이제와서 ‘나 돈 없수’ 하고 코 풀듯 팽개처버리면 누가 그 국민됨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겠는가. ‘저 놈이 빈 곳간을 들먹이며 허풍을 치겠거니’ 하면서도 ‘혹시’ 하는 심정으로 투표소로 향했던 유권자들 또한 그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반 대중의 특징은 무책임하다는 데 있다. 지도자는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적어도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한 집안의 가장이 이웃에게 약속을 했다면 그 집안이 그 약속을 지키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 사회를 지탱하게 한다. 하물며 한 국가를 책임진 최고 통수권자가 대국민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다면 그 국가의 장래는 불보듯 뻔한 것 아닌가. 대통령의 약속 불이행에 얼씨구나 들고 일어서는 야당 정치꾼들 또한 볼썽 사납기는 매한가지다. 그 많은 대선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천문학적 예산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대선당시 그들 또한 헛 약속을 남발하지 않았는가. 이미 기울어진 판세를 뒤집기위해 온갗 꼼수를 동원해도 참패한 마당에 지금 와서 무슨 염치로 가당찮은 왈가왈부인지… ‘싸움에서 진 장수는 무용에 대해 말할 수 없고, 멸망한 나라의 대부는 나라를 존속시키는 일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臣聞敗軍之將, 不可以言勇;亡國之大夫, 不可以圖存 한국의 정치 행태가 항상 제자리 뛰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바로 교육이 제대로 서지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서양 교육의 목표가 사회의 유지 및 발전에 있다면 동양, 특히 한국의 경우 ‘자아실현’이라는 지극히 개인적 이상추구로 향해져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개인의 출세만이 최고의 가치관으로 밥상머리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들이 사회에 봉사하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일 뿐이다. 적어도 공동체를 대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면 그에 따른 공적 도덕성과 책임이 당연함에도 그 막중한 지위가 한갗 개인의 출세나 힘의 과시로 사용되는 것밖에 교육을 받지못했으니… 말단 공무원에서 최고 통수권자에 이르기까지 자리에 대한 책임보다 그 자리가 가져오는 힘의 과시에 골몰한 국가라면 그 국민들 또한 그들로부터 배우는 것은 ‘내가 누군데’ 밖에 더 있겠는가. 그 대표적 케이스가 차기 유력 대권 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김무성 의원이다. 일본 극우파들의 시각보다 더 친일적 사관으로 도배한 교과서를 내놓는가 하면 자유국가라면 당연한 데모를 ‘사회 분열과 전복을 가하는 세력’이라 매도하며 ‘정당한 공권력 확립’을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150여억원에 달하는 그의 재산 가운데 적어도 절반 정도는 돈 없다는 국가에 헌납하고나서 ‘귀족 노동자’ 어쩌고 해야 씨알이 조금이라도 먹힐 일이었다. 깡패와 경찰의 공통점은 무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한쪽은 국민들로부터 승인받지 못한 무력이기 때문에 폭력으로 간주되며 한쪽은 국민들로부터 허락된 무력이기에 공권력이라 불리운다. 자신들이 권력을 장악했다 해서 반대파들을 폭도나 사회분열과 전복을 기하는 세력으로 매도하는 작금의 현실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80년 오월로 되돌리는 것이다. 힘이 강하다고 모두 에너지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그 힘이 통제될 때에야 에너지로 불리워진다. 고급차의 기준은 엔진 성능에 달린 것이 아니라 브레이크 성능에 달려있다. 집권당이 엔진이라면 브레이크 역할은 야당의 몫이다. 권력이 통제되지 않으면 브레이크 고장난 벤츠나 다름없다. 대선 실패에 따른 책임마저 서로 미루는 야권의 처신이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더니 급기야는 있으나 마나한 브레이크가 되고 말았다. 다행인 것은 ‘고생은 같이 할 수 있어도, 부귀영화는 같이 할 수 없다.’는 말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용된다는 점이다. 어차피 작금의 시대는 보수파들이 맘껏 승리의 나팔을 불어재낄 때이다. 분명 그들의 부귀영화 속에서 누군가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자가 새로운 브레이크 역할을 자청할 것이다. 그가 비록 청포를 입고 찾아오는 초인은 아닐 것이나… 권불십년(權不十年 )이 권불오년으로 바뀐 지금 그 5년에서 1년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도 희망이라면 희망이다.
유로저널 국제국장 박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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