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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선물, 그 여린 꽃잎 한 장>

 

진분홍 장미꽃과 양란 꽃잎이 빛깔도 곱게 관 위에 놓여 있다.

영정 속에서 살포시 웃고 계신 그 분께 고개 숙여 인사드리고

관으로 다가가 작별을 고하는 시간.

한 사람 한 사람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침묵이 흐르고...... .

 

노신사 한 분이 일어나 사람들 앞에 조용히 나와 섰다.

 

“박사님께서 생전에 몹시 마음 아파하셨던 일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간의 오해를 풀어 드리고 싶습니다.

한인 단체에서 파리 한인 사회의 역사를 기록하는 책을 만들고자

원고를 써 달라고 사람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때는 한창 <직지>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쓰고 계시던 중이라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 거절하였는데 계속 찾아오니

최후의 수단으로 돈을 달라고 하면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겠다 싶어

돈을 요구하셨다고 합니다. 더 없이 소중한 시간을 아껴서

<직지>에 대한 글을 써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렇게 한 것인데

그것이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하시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거절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시며

후회가 된다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려 박사님의 진심을 밝혀 드립니다.”

 

모두들 일어서서 그 분을 보내 드려야 하는 순간이 왔다.

문이 열리고 관이 문 안으로 들어가려하자 오열하는 사람들.

엽서 두 장 크기의 작은 국기를 흔들며 흐느끼는 중년의 여인.

어깨에 늘어진 검은 머리가 애처롭게 흔들린다.

그녀는 손에 든 것을 앞에 있는 젊은이에게 건네주고

청년은 떠나가는 관 위에 가만히 올려놓는다.

아름다운 꽃과 태극기에 감싸여 떠나시는 그 분.

문이 닫히고 남은 사람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비통히 눈물짓는다.

영정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연도를 올리는 젊은 여인.

그녀는 애통함을 억누르며 계속 기도를 올린다.

 

영정을 모신 분의 아내가 장미 꽃부리를 들고 왔다.

불 속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관 위에 놓여 있던 그 많은 꽃 중에서

한 송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하며

조심스레 꽃잎을 떼어 몇몇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소중하게 받아 들고 숨을 들이 쉬었다.

향기가 깊고 그윽했다.

수첩을 꺼내 종이 사이에 끼워 놓았다.

 

열흘이 지난 오늘 다시 꺼내 본다.

이토록 여리고 얇은 꽃잎 속에

어찌 이리도 고운 향이 깃들어 있을까?

영혼의 선물, 그 생명의 향기를 맡으며

조국을 사랑했던 그 분의 거룩한 혼을 느낀다.

 

2011년 12월 5일 월요일

故 민제 박병선 박사님을 추모하며

 
 
고은별 : 동화 작가, 파리 한글 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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