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향우회 2012년 대 보름잔치 참관기
폼 나게 살거야 (1) 재독 호남 향우회 전성준
땡글 땡글하니 튼실한 설익은 땡감도 제 명을 다 하지 못하고 떨어지는 가 하며 농창하니 잘 익은 홍시가 잎이 진 앙상한 가지에 몸을 매 달고 한 겨울 굶주린 까치 까마귀 밥으로 명을 다 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한창 일할 나이 젊고 패기가 넘치는 아까운 나이에 요절하는 가슴 아픈 일도 있는가 하면 자기가 누구인지 이름도 성도 모르고 오직 생리적인 대리 만족으로 백수를 넘기는 치매 노인도 있다.
맨 처음 세상에 얼굴을 내 밀 때는 순서가 있어도 세상을 등질 때는 위 아래가 없다. 서슬 퍼런 세도가도 주어진 운명 앞에는 무릎을 끌고 세계의 굴지 재벌도 돈으 로도 자신의 생명을 연장 할 수 없듯이 자연의 섭리 앞에는 누군들 항명 할 수 없다.
1년이란 세월 속에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이 운명을 달리 했다.
작년 호남 향우 추석 한마당 잔치가 열린 Neuss에 참석 했던 전향우회 김홍회장도 운명을 달리 했고 남부지역 호남 향우회 스트라스부어그 봄나들이 여행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를 불러 감동을 주었던 원로 향우 한 분도 타계했다. 아헨에 김 아무개 최 아무개도 한 창 활동 할 나이에 운명을 달리 했다.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에서 하나 둘 낯 익은 모습이 사라져 간다. 그 대열 속에 내가 끼일 수도 있고 당신 차례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운명이며 현실이다.
다람 쥐 체 바퀴 돌듯 오늘과 내일을 향한 태양은 다시 뜨고 진다. 무한을 반복하며 돌아 가는 톱니 바퀴 세월 속에서 우리 남은 인생 폼 나게, 세련 되게, 빡세게 즐기며 살자.
2012년도 호남향우회 대보름 잔치는 변함 없이 2월25일 보트롭에서 문을 열었다.
오전9시30분, 오늘 행사를 위해 준비 물을 가득 실은 최완회장은 비스바덴에서 반대 편으로 30여분을 달려 프랑크푸르트근교 슈발박흐에 살고 있는 나를 태우기 위해 일부러 왔다. 아심찬케 내가 그 쪽으로 달려가 기다려도 시원찮을 텐데… 나 같은 게으른 이 때문에 회장 노릇하기도 힘들겠다. 이곳 저곳에서 지원 받은 경품과 준비 물로 가득 찬 자리 한 쪽 구석을 비집고 동승했다. 명색이 차세대 교류위원장이라는 직함 때문에 일찍 출발하여 행사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재독호남향우회 회장이 비스바덴에 거주하고 있고 운영위원도 헷쎈지역에 대 다수 거주하고 있으니 한번쯤 남부지역에서 행사를 유치할 수도 있으련만 수년 동안 중부 루르지역에서 행사를 유치한 오랜 관례를 무시 할 수 없어 회장을 위시한 임원은 행사에 필요한 만반 준비를 하고 아침 일찍 행사 장을 향해 세시간여를 달려 간다. 가는 길이 낯 설지 않다. 작년 행사도 이곳에서 치렀기 때문이다.
이른 시간인데도 중부지역 임원들이 모여 행사장 준비 마련에 여념이 없었다.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무대 정면에 <우리는 자랑스러운 호남인>이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리고 음향장치 시설 때문에 귀가 시끄러웠다.
누구 한 사람 짜증난 기색 없이 모두 밝은 모습으로 일사불란하게 척척 준비가 진행되었다. 오늘 행사에 초대 가수로 초청 되어 온 변지훈씨도 샤쓰 소매 깃을 걷어 올리고 무대 장치에 열을 올린다.
깔아 놓은 멍석에 굿만 벌리고 제 몫을 챙겨 가는 목에 힘주는 초대 가수가 아니라 땀을 펄펄 흘려 가며 잔치 집 분위기를 한층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컵 라면에 허기를 채워가면 같은 호남인으로 긍지를 보여주는 변지훈 파이팅!
칠순이라는 나이를 팽개치고 내가 할 일을 찾아 부산하게 이리 저리 눈알을 돌렸다. 음료수 박스를 나르고 테이블 덮개를 깔고 안내장을 접고 향우들이 모이는 잔치 준비에 체면이고 체통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옥에 티라고.한 싸가지 없는 인상도 특이한 작자의 말 버릇에 빙장이 상했으나 꾹 참았다. 몇 년 세상사리를 앞서 더 한 내가 참아야지… 애당초 나를 필요하고 나를 불러 주는 자리에 언제나 마음을 비우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리라는 마음의 묵계가 떠 올랐다. 초심으로 돌아 가자…
마음을 비우니 모든 일이 신이 났다. 더욱 신 나는 것은 독일 각지에서 몇 시간 오늘 행사에 참관키 위해 달려 온 호남 향우를 영접하는 일이었다.
멀리 베르린에서 독도는 우리 땅이다.는 현수막을 앞세우고 당당한 독도 지킴이단 신성식부회장을 위시하여 많은 향우들이 참석 했다. 반갑습니다.
이어 함부르크 향우들이 탄 대형 버스가 당도 했다.
북부 작센지역을 상징하는 붉은 바탕에 성 쌍파울이 들어 있는 깃발을 앞세우고 북부지역 향우들이 도착 했다. 향우를 안내하는 북부지역 홍숙희 부회장은 날씬한 몸매에 나이를 가름 할 수 없을 미모에 특히 나를 기억 해주시다니 감동 먹었다. 다들 장거리여행에도 피곤 한 기색 없이 향우잔치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리고 문예협 카페 싸이트에서 문자로 인사를 나눈 협회원 김복녀씨를 만나는 큰 행운도 있었다.
이어 약속이나 한 듯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한 남부지역 향우를 실은 대형 뻐스가 도착 했다.
같은 독일 땅에서 호남 향우를 만나는 것도 반가운데 자주 만나는 남부지역 호남 향우를 실은 버스가 도착 하자 더 반가운 마음이 고조 되었다. 음료수를 나르는 일을 팽개치고 한 달음에 달려 갔다.
착색 된 유리창 너머로 아는 얼굴이 보이고 손을 흔든다. 불과 몇 시간 지났는데도 이곳 호남향우 대보름잔치에서 만나게 되니 한결 반가운 마음이 더 한다. 하물며 몇 년 만에 반가운 얼굴을 대하면 그 감동이 얼마만큼 클까.
그 뿐이랴 2011년 세계한민족 축전에 참가 했던 동기를 만났다. 길을 가다 옷 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5박6일 한 호텔에서 한 버스, 또 다른 버스에 동승했던 반가운 얼굴들…
국성환,손종원,이수근,공재수,최월하,전성준, 기념 촬영도 했다.
<워따메 머시기 성님! 거시기 허지라.> <그려! 자네도 거시기허제?>
<언니! 세월이 꺾굴로 가는가 벼? 아님 얼굴에 거시기 놨는 감? 작년 보다 훨씬 머시기 하당께>
<아녀 맨날 놀고 잘 먹은 께 거시기로 살이 갔는가 벼…>
주고 받는 덕담 속에 향우회 축제마당은 귀성객이 몰린 서울역 대합실같이 시끌벅적 했다
<성님! 한잔 합시다. 미운 놈, 이쁜 놈, 눈에 거슬린 인간들도 많지만 오늘 같은 날 맴 풀고 한잔 걸찌게 합시다. 잘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고 거시기 힘도 쎄다 합디다.>
<그런당가! 그런디 죽은 귀신이 거시기 힘이 쎈들 어따 써 먹을 데도 없을 것인디, 암튼 오늘 같은 날 술 안 마시면은 눈에 흙이 들어 갈 떄까지 후회 할 것이구만.. >
지당한 말씀, 회장님의 축사에도,ㅡ그동안 불편했던 사람도 만나게 될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서로가 시원한 맥주 한잔을 손에 들고 , 우리를 위하여, 쨍ㅡ 하고 잔을 부디 치며 응어리 진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 가시기 바랍니다. 했거늘….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는 맛깔스럽게 곰삭은 된장국 같은 언제나 들어도 정겨운 고향 사투리를 종횡무진 구사하는 김상근 재독 한인 국민MC의 능청스러운 재담과 축제의 분위기는 절정을 향해 달려 가는가 하며 밤은 으슥하니 깊어 가고 갈 길은 멀고…
한잔 두잔 들이 킨 맥주에 정신이 알딸딸 해 진다. 10년 후 내 모습을 그려 본다. 그 때도 오늘 같이 향우를 위해 조용히 봉사 할 수 있을까, 또한 재독 호남향우회 대보름 잔치도 계속 진행이 되고 오늘처럼 많은 향우가 참석 할까. 10년 후면은 2022년 내 나이 팔십, 순간 정신이 바싹 들며 전신에 닭살이 돋는다. 입가에 쓴 웃음이 감돈다. 징그럽다. 아무리 수 닭의 목을 비뚤어도 내일의 태양은 다시 뜨기 마련이다.
ㅡ남은 인생 폼나게, 새련되게 빡새게 살거야….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