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좀 해 봅시다.
얼마 전 이곳에서 나오는 주간지에서 짧은 패션기사를 읽었다. 겨울 철의 컬러 스타일링 이라는 제목아래 기사내용은 아래와 같다.
리얼웨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안전한 비비드 컬러 스타일링은 블랙이나 그레이 케멀 등 베이식 컬러를 베이스로 룩을 완성하는것…. , 블랙과 화이트를 믹스한 스타일링은 소재를 믹스 매치하는것보다 이 두가지 컬러 만으로 스타일링을…. 이번 시즌엔 매스큘린무드가 지배적이라 ‘화이트 셔츠+ 블랙 재킷+블랙 슬랙스’ 의 조합이…..이게 싫으면 블랙재킷에 그림컬러 케이프를 레이어드 하거나 블랙 맥시코트를 더해보는것도 좋다. 더스티컬러 팔레트가 주는 느낌을 유지하고 싶다면…….라벤더컬러의 펠트 페도라와 아이스버그 역시 트위드소재의 더스티 그레이 수트에 애시드 옐로 워머를…….…
참고 끝까지 더 읽어 보려 했지만 여기서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한국 신문에 영어를 이토록 많이 쓰게 되었는가? 문장에서 영어 단어를 빼 놓아보니 우리 말이라곤 토씨 밖에 없다. 우리 교육의 어디에선가 뭐가 잘못되어도 한 참 잘 못되었다는 생각에 슬프기까지 했다. 내 바로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이렇다고 생각하니 우리나라가 어디로 가는것인지 모르겠고 우리나라의 앞날이 암담해지고 공포감마저 든다. 중 고등학교 다닐 적에 배운 이씨조선시대의 우리는 깊은 사대주의 사상에 젖어 중국을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면에서 큰 나라로 모셨고 우리의 왕의 존재도 중국의 인정을 받아야 했다는 우리의 역사를 배우며 또 중국 글과 글씨를 많이 알아야 학자, 지식인으로 취급되어 출세했던 우리의 역사를 배우며 선조들이 참으로 지지리 못났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더니 일제치하에서는 일본 말, 1945년의 해방후, 1950년의 육이오 사변 후에는 영어를 잘하면 남들이 우러러 보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의 뼈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사대주의 사상이 현실로 또 나타난것이다. 아는게 힘이란 말은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위의 기사에 쓰인 우리 말로 쓰여진 영어는 힘이 되는 지식이 아니다. 오히려 어줍지않게 알아서 해롭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이 알아 듣지 못하는 영어를 하고 있는 우리의 한심한 상황은 또 어디서 비롯 되었을까요. 영어를 한국어로 소리나는대로 쓰자니 우리 말에 없는 영어발음을 표현할수가 없고 별 수 없이 틀리는 발음을 하게 되니 의사소통은 되지 않는게 당연하다. 가게에서 그 간단한 우유라는 발음을 현지 사람이 알아듣게 하지 못해서 우유를 사먹지 못한 사람을 보고 우리는 웃어야 할까요, 울어야 할까요. 맥도날드가 어디 있는지 가르쳐 달라는 우리의 영어를 알아 듣지 못하는 영국인들을 나무래야 할까요? 그래서 맥도날드를 찾아 그냥 거리를 헤메야 하는 우리들이다.
수시로 그런 희극을 듣고 보며 이 비극을 극복하는 길이 무엇일가 생각해 본다.
1950년 대에 우리나라 가수들이 외국 유행가를 영어로 부르기 시작했다. 유행가를 영어로 노래하는것이 그 시대의 요구였을것이다. 대중에게 더 잘 알려지고 대중으로부터 배운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였을것이다. 그들은 노래의 내용은 모르는것 같았고 영어 노래의 가사를 한국말로 써서 노래하니 가사의 내용도 잘 전달되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어떻게 하다 우리는 남의 것을 높이 평가하고 내것을 낮게 보는것으로 점철된 긴 역사를 갖게 되었나? 교육에 잘못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 뿐이겠는가? 사회와 전통이 생각하는 능력을 무겁게 짓누르지 않았나 생각해 보며 오랜 동안 우리 민족에게 결여된 자긍심때문에 이제 이런 슬픈 현상이 나타나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영국에 와서 세 애들을 키우면서 우리의 좋은 점과 서양의 좋은 점을 잘 섞어서 애들에게 전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예의범절에 윗사람을 존중하고 공손히 대하여야 한다는게 있다. 나 보다 세상을 더 산 분들이니 나 보다는 더 지혜가 있으실게 아닌가.
어린 세 애들을7세부터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 보냈다. 첫 학기가 지나 공부성적표와 그들의 기숙사생활에 대한 평가서를 받았다. 거기서 제일 두드러진 평가는 세 애들 모두에게 예의범절에 대한 극찬이었다. 내가 따로 가르친 적은 없지만 우리 몸에 배인 우리의 예의범절은 여기 영국사람들이 보기에 좋아 보인것이다. 그 이외에도 내가 미처 몰랐던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 문화를 인식해 주는 영국사람들을 적지 않게 많이 만났다. 영국사람들은 우리의 전통, 문화, 예술을 높이 평가해 주는데 오히려 그 주인인 우리 자신은 자부심을 갖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영국에서 살고 있는 이 귀중한 기회를 잘 활용해서 이들과 함께 살며 이들을 거울 삼아 보고 우리 스스로는 발견하여 나 스스로를 존중하고, 스스로를 인정하게 되기를 바란다. 누가 이국 땅에서 나를 존중하고 인정해 줄것인가.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기 시작한지 20년은 족히 넘는 듯 하다.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이 배낭여행을 하지만 한 동안 젋은이들의 배낭여행이 유행이었다. 여행을 하며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접하며 여러가지로 많이 배우고 여행을 통해 인생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겠기에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아! 그러나 옥에도 티가 있듯 이곳에서 보기에도 민망한 남녀들의 언행이 가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특히 젊은 여자들의 헤퍼서 추해보이는 태도는 오래동안 억눌렸다가 갑자기 풀어진 성도덕관념에서 온듯 싶다. 이것은 결국 자긍심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고 그것도 이 사회에서 낮은 부류로 취급돠는 사람들의 언행을 마치 자신이 서양화되었다고 착각하고 무조건 베끼는 것을 볼 때 등에 태극기를 부쳐주며 한국여인들의 위신을 지켜 줄것을 부탁하고 싶어진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중받고 싶은 만큼 우리의 행동도 그에 부응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서로 존중받고 또 존중하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지나 간 자리가 아름다워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존중을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추다. 우리는 아름다운 산천만 갖고 있는게 아니다. 아름다운 산천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전해 내려 오는 예술, 문화, 전통이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꼭 박물관에 가서야만 확인 되는것이 아니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 여러 방면에서 많이 발전하여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특한 국민인데 어찌 이리 의식의 발전에는 굼벵이 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서둘러 각성해야한다. 생각하는 민족이 되어 속히 자긍심을 갖은 출중한 국민으로 세계무대에 서야한다.
재영 한인동포 자유기고가 손선혜 유로저널 칼럼리스트 ommasdrea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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