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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전체
2012.09.26 23:20
재영 한인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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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영 한인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영국한인사회에서 13년째 살고있고, 축구월드컵 2002. 2006. 2010 또한 2012런던올림픽 사물놀이 응원단장을 맡은 바 있는 오종복입니다. 순수 영국인이 운영하는 영국회사에서 9년 3개월을 근무하던 중 지난 2010.12.21일 오후 3시경 회사 부사장으로 부터 파이프로 머리 얼굴 팔을 폭력을 당하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았었습니다. 아무 죄도없이 세상에 도저히 일어날수없는 일이었지요 그리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괴로워하고 있을때 많은 재영 한인들과 현지 법률 자문 등 많은 분들이 저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셨습니다. 앞이 캄캄하고 너무 억울하여 인생을 포기하고 자살을 시도할 정도의 충격이었답니다. 그리하여 우선 동네 GP에 가서 진단을 받은 결과 혈압이 200 까지 체크가 되었던 관계로 처음 우울증약과 많은 사람의 각별한 도움이 필요하다고 처방이 나와 일주일후 혈압약을 처방받아서 계속 치료를 받을 것을 권유받아 치료에 임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너무도 억울해서 2010. 12.23일 병원에 다년온 후 뉴몰든역 옆에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였으며 C.A.B(시민 고충처리위원회) 윔블던에가서 이 사건을 신고했습니다. 그러나 또 억울한 것은 저희 회사 근처 일포드경찰서에서 회사직원을 모두 불러 조사했지만 아무 혐의가 없으며 사건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사건을 일방적으로 종결 지어 버렸습니다. 이 어찌 억울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답니다 저희 딸은 사건당일부터 일주일 금식기도를 했으며 저는 어찌하며 좋겠냐고 새볔에 울부지으며 기도했답니다. 그런데 바로 2011. 3월 초부터 재미있는 일이 시작되었습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법률병원 워크스타트 (킹스턴 카운슬 소속)가 저를 아는 교회목 사님들, 교회 성도님들 고국에서 사건 소식을 들은 많은 분들이 합심하여 기도를 시작했습다. 이때 미참(MICHAM) C.A.B에서 근무하던 법률 도움이 김인수씨(현 영국 한인 의회 법률 자문위원)로부터 국선변호사를 소개받아 지금까지 12번 약 40시간을 상담 도움을 해주었으며, 그 사이 저는 워크스타트 심리학자를 31번, 정신과의사 스페샬리스트 포함 9번, 일반 GP에 14번, 폭행으로 고막터지고 수술한 곳이 재차 충격을받아 보청기 맞추려고 3번 등을 방문했습니다. 이렇게 1년 9개월을 온통 폭력사건으로 인해 억울하게 세월을 보내야 했답니다. 제가 고발했지만 비용이 많이 들든 데다가 시간도 너무 많이 소요되어 영어도 부족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입장이라 수백번 포기하려고 했으며 가족의 슬픔과 괴로움은 너무 컷고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 한국인이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참고 포기한다면 향후 한인들은 물론이고 2 ,3 세들에 미치는 영향과 그 수모가 반복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의 도움을 얻어 그 분들과 함께 포기대신 법에 다시한번 호소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하여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드디어 재판 날짜가 4월달에 재판날자가 잡혔다가 연기되어 5개월후 9월 12일에서 20일까지 7일간 Cokhester County cout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일반 통역 도우미, 김인수씨, 저의 딸, 법정 통역사, 박운택씨(박필립), 그리고 몇 분의 한국인과 우리가족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재판은 거의 전쟁에 가까운 수준의 실랑이를 3 시간 벌이면서 합의 도출에 노력했으나, 실패가 반복되자 판사가 직접 개입하여 권고해 " 가해자가 죄를 인정하고 재판관앞에서 문서로 작성한 합의문에 싸인을 마친 후 법적으로 모든 기록을 공식적으로 남김과 동시에 그외로 폭력과 정신적인 피해는 별도로 다른 변호사에게 의뢰를 하여 진행한다" 고 통보함으로써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긴 재판의 과정이 승리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저의 승리이기 전에 저에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게끔 용기를 주시고 후원을 해주신 재영 한인 여러분들의 승리임을 확신합니다. '대한민국 짝 짝 짝 박수 오 필승 코리아' 처절하게 힘든 이민 생활 소수민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지 저는 뼈저리게 이번 사건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고용주, 경찰, 변호사에 이르기까지 소수 이민족은 외국인이라는 한계를 다시한번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재영 한인 여러분 ! 억울하고 고통스러워도 가슴에 응어리를 품고만 살지 마십시요 때론 제 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드실 겁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마십시요 억울하면 꿈틀되십시요 포기하지마세요 후손들이 있기에 현재 우리 어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을겁니다. 한국사람들과 경쟁하고 싸우지 맙시다 이곳 영국에서 세계 각국의 민족, 영국사람과 선의에 경쟁하고 선한 일에 지혜롭게, 악한 일에는 굴하지 말고 우리같이 갑시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도움을 주신 모든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날마다 새벽부터 기도해주신 목사님과 성도님들 고국에 계신 기도에 동역자들, 이곳 영국에서 저를알고 걱정해주신 재영 한인 여러분들 한 분 한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 재판의 승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소문에의해, 유로저널 기사로 저의 억울함과 어려움을 알고 도움을 주셨 분들, 아무도 모르게 이름도 밝히지 않고 선뜻 물질로 도움주신 분들 .... 또한 이렇게 슬프고 억울한 일에 선뜻 2번씩이나 호소해주신 유로저널 김훈 발행인님, 재판 당일에 새벽 6시부터 밤 7시까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본인을 태워가는 등 차로 봉사해주신 박운택집사님, 또한 바쁘신 시간 속에서도 법률적인 문제로 도움주신 김인수 선생님, 사랑하는 우리가족,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승리하게 하여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글을 맺습니다. 2012년 9월 24일 오종복 배상 편집자주 : 오종복씨 사건은 이번 10월에 개최될 국정감사에서도 해외 동포의 인권 관련한 한 사건으로 제기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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