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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기 위해 지속 가능성을 향해 행동하는 EU

제7차 환경행동계획
'잘 살아보자(Living well).'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제7차 환경행동계획의 모토로 내건 문구다. ‘우리 지구의 한계용량 범위 안(within the limit of our planet)에서’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 ‘지속 가능성을 향해(Toward sustainability)’라는 목표를 제시했던 제5차 계획(1993년)과 비교해 볼 때 새로운 주제는 아니지만, 이를 좀 더 구체화하고 인간 쪽으로 중심을 더 옮겨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래 게재된 글은 주벨기에.유럽연합대사관의 노희경 환경관이 국내 '나라경제 8 월호'에 기고한 것으로 본 지가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유로저널 편집부>


환경행동계획(Environmental action programme)은 EU의 환경 및 기후변화 정책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청사진으로 향후 관련 법률들과 정책들이 행동계획에 따라 개발되므로 이를 통해 EU가 나아갈 방향을 알 수 있다. 2002년 채택된 제6차 환경행동계획(2002~2012년)의 발자국을 따라 화학물질 등록평가제도인 ‘REACH’가 입법화되고, 기후변화 정책의 대표 아이콘인 배출권거래제도가 탄생된 것과 같은 이치다.
이번 제7차 환경행동계획은 유럽 2020전략과 다년(2014~2020년) 재정계획에 맞춰 2020년까지의 대책과 함께 ‘지구의 환경용량 범위 안에서 우리가 잘 사는 미래’를 2050년의 장기 비전으로 제시한다. 아울러 모든 것이 헛되이 소비되지 않고 사회의 복원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자연자원이 관리되는 혁신적 순환경제가 우리의 번영과 건강한 환경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7차 환경계획, 9개 우선과제 안고 연말 채택될 듯
지난해 말 EU 의회와 이사회에 제출된 7차 계획에 대해 집행위·의회·이사회 삼자 간 합의가 지난 6월에 도출돼 7월에 의회 환경위원회 표결을 통과했다. 연말쯤 의회 본회의와 회원국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 채택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목표 달성을 위해 선정된 9개의 우선과제 분야와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1)2020년까지 재활용이나 회수가 불가능한 폐기물만 매립할 수 있도록 제한할 계획이며 2)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효율성 향상 및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한 회원국과 산업계의 투자 촉진을 위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202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설정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아울러 3)구속력 있는 입법의 고려를 포함해 토양의 질 문제에 대한 대응 4)좀 더 일관성 있는 지속 가능한 소비와 생산 관련 정책·법률체계의 구축 5)해양쓰레기에 대한 범EU 차원의 양적 감축목표 설정 6)모든 관련 법규를 통해 화학물질의 복합적 영향과 내분비계 장애물질·나노물질 관련 안전성 우려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 7)회원국 법규 이행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EU 차원의 점검(inspection) 지원능력 추가 개발 8)EU와 회원국 차원에서 환경적으로 유해한 보조금의 단계적 철폐 9)토지 이용계획 결정에 물과 생물다양성 보호 같은 환경적 고려를 통합해 2050년까지 ‘개발을 위한 토지의 순손실 중지(no net land take)’ 목표 달성 필요성 등에 대해서 합의가 이뤄졌다.
잘 살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하며, 환경이 건강한 상태여야 그 안에서 영향을 받는 인간도 건강할 수 있다. 6차 계획을 통해 깨끗한 공기와 물 목표 달성에선 일부 성과가 있었지만, 여전히 도시거주 인구의 90%가 WHO 권고기준을 초과하는 미세먼지에 노출돼 있고 환경적 스트레스 요인이 전체 사망자의 15~2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등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인간 건강에 직접 영향을 주는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REACH 제도를 통해 관리기반이 조성된 단계다. 하지만 다양한 화학물질들이 결합해 나타나는 영향과 나노물질, 내분비계 장애 화학물질, 제품에 포함된 화학물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불확실한 채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EU는 7차 계획에서 관련 대책과 규제를 만들 가능성이 높으며, 우리나라도 이를 벤치마킹하고 관련 규제에 적기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913-특별기고 보충도-2.jpg

EU는 깨끗한 공기와 물 목표 달성 노력을 지속하고 올가을엔 관련한 추가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사진은 지난 1월 23일 스모그로 휩싸인 영국 런던의 모습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자연자본과 생태계 서비스
최근 EU의 모든 논의에 등장하는 중요 잣대는 ‘경쟁력’으로, 에너지와 환경 등의 정책과 규제도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환경행동계획의 비전(living well)을 추구할 때도 경제의 경쟁력을 갖춰 부를 축적하는 것이 당연하다. EU는 유럽 2020전략을 통해 현명한 교육과 R&D 투자로 인적자본을 강화하고 자원효율성을 높여 지속 가능한 자연자본을 확보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자연을 보전과 효율적 이용의 조화를 통해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자본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자연자본을 강화하기 위한 규제가 일부 비용 상승을 가져와 단기적으로는 경쟁력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자체가 경쟁력의 핵심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고 있다.
일례로 생물다양성이 계속 감소될 경우 깨끗한 공기같이 생태계가 제공하는 서비스도 감소하고 건강악화 같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대기오염으로 인해 유럽지역에서 매년 42만명의 시민이 조기 사망하고 노동력 손실과 농작물 수확 감소, 생태계 손실 등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며, 유럽환경청(EEA)은 2012년 보고서에서 대기오염 때문에 6,300억유로의 건강비용과 1,690억유로의 생산성 감소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한 바 있다. 따라서 자연자본과 생태계 서비스를 강화하는 것은 거시적 차원에서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줄여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EU는 내부적으로 2020년까지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서비스의 손실을 중지시킨다는 목표를 달성하고, 국제적으로는 2014년 상반기 중 생물자원 접근과 이익공유에 관한 나고야 의정서를 비준해 EU와 개도국 모두 윈윈하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중요 자원인 토지의 양적·질적 악화를 막기 위한 구체적 정책과 법규적 수단도 개발할 예정이다.
EU 환경행동계획의 핵심적 한 축이면서 국제적 협력이 가장 필요한 분야가 기후변화 대응이다. 지난 4월 EU 기후변화적응전략이 발표되고, 2020년 이후 기후 및 에너지 정책목표 설정을 위한 이해당사자 협의가 진행되는 등 2013년은 EU 기후변화 정책에서 큰 기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변화 대응의 얼리버드로 관련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EU는 내부적으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20년 20%에서 2030년 40%로 상향하고 국제사회의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경기침체에 따른 산업계의 반발에 직면해 아직 가야 할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만들어진 게임에 참여하는 것보다 불완전하더라도 게임의 룰을 먼저 정하고 뛰는 것이 경쟁에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EU는 기후변화 대응의 룰 세팅에 노력하고 있고, 배출권거래제의 국제적 확산 등에서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산업 분야 온실가스 감축정책인 배출권거래제의 경우 경기침체로 약 20억톤의 미사용 배출권이 누적되면서 저탄소기술 투자에 필요한 가격인 톤당 30유로의 10분의 1 수준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어 온실가스 감축과 저탄소 투자라는 의도한 효과 모두가 아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미완의 배출권거래제를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시행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으며 중국도 시범사업을 시행하는 등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어 향후 온실가스 감축의 표준수단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EU는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시민의 복지와 기업의 경쟁력에도 도움이 된다는 인식 아래 EU 재정예산의 20%를 기후변화 관련 분야에 투자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관련 산업과 사회구조가 기후친화적 생태계로 바뀔 수 있어 우리나라도 기후변화 정책 추진 시 이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잘 살기 위한 협업의 악보, 연주는 지금부터
환경행동계획을 악보라고 표현한 이유는 환경보전과 기후변화 대응이 결국 우리가 잘 살기 위한 전제조건이며, 농어업·에너지·교통 등 모든 분야에서 이를 고려하도록 하는 것이 환경행동계획의 저변에 깔린 목표이기 때문이다. 즉 환경·에너지·농업 등 다양한 기관들이 정책을 개발하고 집행하는 ‘오케스트라’에서 환경행동계획은 지속 가능성의 ‘악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도 최근 합의된 공동농업정책에서 농가직불금의 30%는 영구초지 유지와 재배작물 다양화 등 환경보전의무(green) 준수 조건으로 지불하는 내용이 포함됐고, 기후변화 적응전략에선 보건·해양·농어업 등에서의 적응대책과 함께 인프라 투자, 금융·보험의 역할에 대한 지침 개발 등에 다양한 관련 부처가 참여했다.
이처럼 EU의 환경행동계획은 최근 우리 정부가 강조하는 협업의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물론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최근 집행위 직원으로부터 나름의 고충을 들었는데, 가령 새로운 사업과 함께 기존에 수행하던 사업도 이름이 조금 바뀌어 추가되는 것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집행위의 부족한 인력으로 모든 대책의 성과를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존 사업도 환경에 대한 고려라는 하나의 지향점이 더 생기므로 시너지는 충분히 발생할 것이며, 어떻게 조율하면서 집행해 나가느냐가 성공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본다.
이런 면에서 EU의 환경행동계획이라는 중요한 악보는 이제 완성됐고, 회원국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협업을 통해 2020년까지 어떻게 연주해내는지 지켜보는 것도 우리나라 환경정책 추진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이 글은 필자의 개인 의견으로, 주유럽연합대사관 및 외교부의 공식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913-특별기고 보충도-3.jpg
노희경
주벨기에ㆍ유럽연합대사관 환경관
louie.n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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