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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리 ? 1931년 미국의 대 공황 기 시절부터 미국 내 암흑가를 주름잡은 제이슨 리 (Jason Lee)라는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마피아보스
사업가 영화인 도박사 이력의 다이나믹한 삶이었다. 1902년 6 살
때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일하기 위해 일행 가운데 이씨 성을 가진 할아버지가 그를 가련히 여겨 자식처럼 대해주면서 함께 살다가 몇 년 후 타계하자 제이슨 리는 고아원 생활을 하게 됐다. 이 대목에는 또 하나의 설이 있다. 농장주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노름 꾼 기질의 아비가 종적을 감추어 고아가 됐다는 것이다. 제이슨 리의 어머님얘기는 차후 어디에도 나오지 않으니 그의 부모님은 선실에서 사망한 게 맞을 것 같다. 한국 명으로 이 장손. 나는 요즘 술 한잔 마시며 미적거리는 시간이 많아 이런저런 세상사얘기를 안주 삼아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도중 말끝에 제이슨 리를 끄집어 냈더니 모르는 친구들이 많아 이 글을 쓰는 동기부여가 됐다. 제이슨 리가 한창일
때 미국 3 대 마피아보스 ㅡ 알 카포네. 벅스(알 카포네의 책사인데 환락 카지노의 도시 라스 베가스를 만든 장본인)그리고 제이슨
리였다. 나는 그를 미화할 생각도 전혀 없고 단지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걸 알려줄 따름이다. 그 방송 전후로 국내에서는 만화로도 스포츠 신문의 연재소설로도 소설가들의 책도 단행본으로 두 권으로 출간되었고 1974년 라디오 드라마로도 알려진바 있다. 언젠가는 그의 일대기가 영화화될 거라는 짐작으로 나는 언론 뉴스를 가끔 식 확인해봤는데 지금까지 아는 수순은 이렇다. 국내 영화 제작사들은 2002년 전후로 저마다 < 영웅의 전설> < 거인의 전설> < 자이언트>등으로 제작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제작권 판권 초상권문제로 문제가 불거져 흐지부지된 상태이다. 병역문제로 미국에 다시 들어간 가수 유 아무개를 주연으로 한다거나 야인시대의 안 아무개 탤런트를 출연시킨다는 교섭이 활발했는데 모든 게 정지상태이다. 또 지켜볼 따름이다. 1983년 개봉된 미국 영화 <언터 처블> (The untouchables)은 알 카포네의 얘기가 아니고 제이슨 리의 일대기이다. 마약 매춘을 빼면 제이슨 리와 그 조직의 피 터지는 내용이다. 그런데 제이슨 리의 모든 것들이 완전 날조라는 주장도 있긴 하다. 그런 주장을 까보면 구멍이 많다. 딱 한가지로 반박한다면 ㅡ 알 카포네가 어떤 놈인데 사업가적 관계로 제이슨 리와 만나고 친해졌냐는 데 대해 신통한 논거가 없다. KBS 방송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다.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부끄러운 한국인이라 모두 쉬쉬 하는 형국이다. 그는 도산 안창호선생의 장녀 수잔 (미 해군 최초의 여군장교. 99세 생존)의 애국심에 감화 받아 교민들에게 도움 주고 독립운동자금지원 하는 숨은 공이 많았다. 시카고에서 가장 큰 도박장을 운영하면서 경리책임은 도산 선생의 딸 수라에게 전적으로 맡겼고 선생의 미망인 이혜련여사와도 가족처럼 지냈다. 한국전 후 한국 일본을 오가며 조국을 위한 로비스트 역할도 많았다. 오직 마피아의 몸이라는 욕됨이 그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사실 그 이미지의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성경을 읽기 위해 양초를 훔친 건 죄이다. 시카고에서 그의 조직은 시청이나 세무서의 고위층으로부터 수시로 제보 받고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FBI 급습으로 언론에 알려진 제이슨 리는 조직을 위해 세계 1차 대전에 육군 병사로 자원하여 조직을 살리는 과단성과 현실감각이 탁월했다. 이는 나중에 알 카포네가 그런 수단으로 조직을 살렸다. 점차 각 주마다 카지노를 불법으로 행정조치취하면서 세금을 때리자 알 카포네는 조직을 위해 경찰에 자진 출두하여 몸으로 메우는 감옥 행을 결심했다. 그는 재판에서 11년 형을 받아 샌프란시스코 앞 바다의 암초 섬 (Alcatraz)감옥에서 심신이 약해지며 잠복중인 병으로 수형생활이 힘들어질 때 형 집행정지로 출소하여 제이슨 리에게 사후 조직을 넘겨 주려 했으나 이태리인들 다수의 조직원들로부터 그에게 충성심을 다 모은다는 게 어려움을 느끼고 사양한 가운데 알 카포네는 플로리다 마이애미 바다가 한 눈에 다 보이는 별장에서 1947년 병사했다. 그의 죄는 마약 매춘 밀주 불법카지노 살인죄가 아닌 탈세였다.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로스 엔젤레스 라스 베이거스 도쿄 마닐라를 오가며 사업을 펼친 제이슨 리는 알 카포네 보다 세력권이 넓었다. 알 카포네와 인연을 맺고자 시카고 최대 갱단인 잭슨 파를 단 시일에 도륙하다시피 무너뜨린 괴력을 인정받아 두 사람은 점차 의형제처럼 가까웠다. 1282년 프랑스군대가 시칠리 섬을 점령했는데 그 주민들이 항거의 표현으로 마피아(Mafia)였다. 그리고 그 뜻은 변질됐다. 한국의 호사가들은 한국인들 중에 싸움의 달인으로 단연 최 영의를 친다. 극진 가라테의 창시자로 바람의 파이터로 불린다. 고향 김제에서 집안 머슴으로부터 싸우는 기술을 배운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항공학교에 입학했으나 텃세에 밀려 방황하다 홀로 산속으로 들어가 무예를 익힌 다음 일본 10대 문 파를 모조리 깨트리고 세계를 돌며 100 여 차례의 격투기에서 이긴 다음 1947년 교토에서 벌어진 전 후 처음의 공수도 대회에서 승자가 됐다. 그 다음으로 시라소니가 나온다. 정통 무예를 배우지 못했지만 타고난 승부욕과 온몸을 무기로 하는 싸움 기술 전광석화 같은 민첩함은 동물적 감각이었다. 그리고 제이슨 리를 친다. 고아원에서 두들겨 맞으며 산 악바리 근성은 나름의 싸움 기술을 터득하고 상대를 아주 잔인하게 응징했다. 1 m 62의 단신은 폭발적인 순간 파워가 주 무기였고 싸움의 기회 포착이 유능했던 건 아마도 청소년기의 눈치 밥 덕분으로 여겨진다. 총명한 머리가 작전을 잘 짰다. 그리고 한 많은 자의 울분은 오로지 이겨야만 했다. 총을 쓰는 암흑가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일찌감치 터득한 그는 다른 마피아 보스들처럼 총에 맞지도 않았고 체포되지 않았다. 제이슨 리의 조직은 카지노사업의 성공으로 드디어 헐리우드 영화계에 진입했다. 컬럼비아영화사의 대주주가 된 제이슨 리는 제작자 감독 배우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했다. 도산선생의 장남 필립 안의 배우 생활도 여러 의미 있겠다. 제이슨 리의 아들 로버트 리도 영화 배우였다. 제이슨 리는 당대의 최고 여배우 에바 가드너와의 염문도 대단 하려니와 특히 그레이스 켈리를 데뷔시켰다. 고전적 용모의 청순 미는 그 당시 어려웠고 악질 메니저와의 불협화음과 3년 동안 무명의 서러움으로 힘에 겨워 펜실베니아로 돌아가려 할 때 존 포드감독의 하이 눈에 전격 발탁시켰다. High noon은 고전 서부영화의 백미이다. 빌 클린턴이 20번 봤다고 자랑하고 지미 카터는 58번 봤다고 자랑한다. Do not forsake me, o my darling 으로 시작하는 가사는 정의의 기치를 드높이는 멋진 노래이다. 이 음악은 아카데미 최고음악 상을 탔다. 동네 보안관 케인(케리 쿠퍼)이 갱 조직의 두목을 잡아 감방에 쳐 넣은 데 대해 불만을 품은 그의 졸개들이 복수를 감행한다. 그레이스 켈리는 1953년에 모감보가 연이어 히트 치니 은막의 별이 되었다. 클라크 케이블 에바 가드너와 함께 출연한 그 영화는 세 사람의 얼굴 값으로 이미 대 박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사냥꾼인 남자와 두 여인은 어느 날 경비행기를 타고 가다 조난을 만나고 극한 상황에서 삼각관계로 이어지는 남녀의 애정을 잘 묘사한 영화였다. 프랑크 시나트라와 출연한 1956년도 그녀의 마지막 작품 <상류 사회>에서 켈리는 시나트라로 부터 2 달라 짜리 지폐를 선물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영화 촬영이 끝나고 나서 그녀는 모나코의 왕비가 되었다. 2 달라 지폐가 행운을 부른다는 속설은 그녀를 아끼는 입방아들의 입담이지 사실은 다르다. 그 이전 모나코로 <나는 결백하다>는 영화 촬영 갔을 때 레니에 3세는 그녀에게 청혼하는 기념으로 12 케럿 다이아반지를 선사했는데 그 반지를 끼고 영화 상류사회에 나왔다. 행운을 부르는 2 달라 지폐의 의미는 전혀 다른데 있다. 품격 있으되 고고한 그레이스 켈리는 직접 차를 몰며 자주 속 썩이는 말괄량이 딸 스테파니와 농장에서 왕궁으로 되돌아오는 굴곡 많은 산 길 모퉁이를 돌다가 발작증세를 일으켜 차가 굴러 떨어져 사망했다. 딸과 여동생의 사생활문제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두통이 심했고 발작증세가 위험수위였다. 패전국 일본에서 맥아더 사령부가 한국에도 영향력을 발휘할 때 제이슨 리는 야쿠자 조직에 치명적인 굴욕감을 안기게 하는 대형 카지노를 운영하며 한국을 위해 여러 사업을 구상했다. 카지노 유흥장을 운영할 때 전속 악단을 일본 내 한인들로 구성했는데 그때 책임자로 길 옥윤이 열심을 다했다. 오랜 후일 길 옥윤은 어려웠던 일본 시절 어느 미국 사업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술회했다. 차마 마피아 보스의 이름 밝히기가 껄스럽지 않았나 싶다. 주사위나 카드를 마음 먹은 데로 조작하는 손기술의 타짜 제이슨 리는 1956년 모나코로 원정을 갔다. 몬테 카를로의 한 도박장에서 도박장의 거래은행의 금고를 다 터는 돈을 땄다. 크랩으로 6백만 불을 땄지만 일행의 사소한 실수가 발각되어 사기도박으로 판정 나서 프랑스 니스에서 붙잡혀 모나코로 압송되어 모나코 성 지하 감옥에 영어의 몸으로 일 주일 지내다가 무죄 방면되었는데 여기에는 켈리가 은혜를 갚았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리고 그의 행적은 연기처럼 오랫동안 사라졌다. 75세까지 살면서 외손자에게 들려준 그의 모든 이력이 조금씩 간헐적으로 나오지만 신빙성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많다. 모나코 도박 이후와 타계할 때까지의 시간이 너무 비워있다. 유족들이야 당연히 그의 치부가 들어나는걸 달가워하지 않겠다. 한국 이민사에서 그는 범죄자였기에 그냥 묻히는 감이 있다. 생전 그의 육성녹음이나 일기 모든 날들의 자료가 충분치 못하는 한 그의 생애를 재 조명하기 어렵다. 제이슨 리 – 그와 함께한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고 조각난 사실만 구전으로 이어오니 나는 글 제목에다? 기호를 달았다. 조 폭 세계는 음지에서 암약하고 해체되었어도 검게 지워질 수밖에 없는 악의 본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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