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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2014.03.25 21:45
고 정주영 회장의 세 부인 등 흥미로운 일화 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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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주영 회장의 세 부인 등 흥미로운 일화 세 편* 양반가문의 서자로 태어난 반석평은 노비신분으로 이참판 댁의 머슴으로 살았다. 반석평은 주인집 아들이 공부하는 동안 몰래 밖에서 도둑공부를 하며 열의를 보였다. 반석평의 재능이 대단하다는 것을 눈치 챈 주인은 그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반석평을 어느 양반집 양자로 들어갈 수 있도록 주선했다. 양반신분이 되자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1507년 과거에 급제하여 후에 형조판서가 됐다. 형조판서 시절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자신의 노비신분을 없애준 주인의 아들을 만났다. 주인 집안은 어느새 몰락했고 주인 아들인 이오성은 궁핍했다. 종 2품인 반석평은 도련님을 보자 바로 수레에 내려 그에게 큰절을 했다. 후에 반석평은 중종에게 자신의 과거사를 밝히고 이오성에게 벼슬을 내려줄 것을 간청했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조정에서는 그의 청을 들어줬다. 노비신분에서 재상자리에 오른 반석평은 후에 종1품 좌 찬성까지 오르게 됐다. 그리고 그의 직계후손이 바로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이다. 푸틴 러시아대통령은 한국인 사위를 맞았다. 윤준원씨가 푸틴의 둘째 딸(막내 딸) 예카테리나 푸티나 (애칭 카챠)와 처음 만난 건 15살이던 1999년 7월 모스크바의 국제학교 무도회장이었다. 윤씨는 주 러시아 모스크바 한국대사관 무관으로 근무했던 아버지를 따라와 국제학교에 다녔다. 윤씨는 푸틴이 2000년 3월 대통령이 되면서 카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윤씨는 푸틴의 가족과 휴가를 종종 보냈다. 키가 170 cm쯤인 윤씨는 운동신경이 발달해 몸이 탄탄하고 영어 러시아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카챠는 2002년 한국 에서 윤씨 가족과 함께 지냈다. 윤씨는 러시아에서 8년간 학교 다니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다. 삼성전자 모스크바 지사에서 근무하다 2010년 말 결혼 설이 불거진 뒤 직장을 그만두었다. 윤씨는 당시 국내 언론보도 이후 `카챠와 연락이 두절됐고 그녀의 행방도 모른다`며 힘든 심경을 토로했다. 푸틴의 모교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동양학부 일본어 과를 나온 카챠는 한국어를 비롯해 5개 국어에 능통하다. 푸틴은 맏사위도 외국인 (네델란드)인데 한국인 사위를 얻는다는 사실이 정치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지난 대선이 끝날 때까지 이 사실을 감춰왔던 것이다. 두 사람은 2012년 1 월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서 약혼식을 올렸다. 모스크바 타임즈 신문에는 모로코의 마라케시(Marrakech)도시에 있는 라 마무니아 호텔에서 2012년 11월 말 결혼식 올렸다는 짤막한 기사가 나왔고 아랍어 일간지 Al Massae 에도 짧은 기사가 나왔다. 한국언론은 거기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었다. 푸틴도 윤씨를 아주 만족해하고 있다. *정주영을 울린 세 여인* 1. 부인 변 중석여사 - 이 익치 전 현대증권회장은 고 변중석 여사를 현대의 천사라고 칭송했다. 매일 자정이 되어 귀가하는 정회장의 목욕물 준비를 하고 다음 날 새벽 3시에 일어나 아침 밥을 준비했다. 집안 일하기 편한 옷차림과 화장기 없는 맨 얼굴로 날마다 본사 직원 300 여명의 점심을 준비했다. 변 여사는 정 회장을 항상 회장님으로 불렀다. 심지어 정 회장이 핏덩이를 자식이라고 데리고 와 잘 키우라 했을 때도 자기 자식으로 받아들였다. 정 회장은 부인에게 한 평생 미안해하고 고마워했다. 2. 정 회장은 당시 사채놀이를 크게 하고 있던 요정 마담을 만나 자금을 부탁했다. 그녀는 천하일색인데다 여전(현재 대학)까지 나온 지성미를 겸비했다. 단골손님이었던 정회장을 잘 아는 그녀는 정회장이 어려운 처지 때 마다 수시로 자금을 지원했다. 이번에는 직접 와서 돈을 갖고 가시라는 전화를 했지만 정 회장은 미안해서 볼 면목이 없다며 오 인보 비서를 보냈다. 평소보다 세 배가 넘는 거액과 함께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는 다름아닌 유서였다. ` 꼭 성공하여 앞으로 큰일 하시기 바란다`는 내용을 읽고 정 회장은 몸을 떨었다. 그 후 그녀는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 회장을 좋아했던 그녀는 계속해서 큰 빚을 내 자금을 댔던 것이다. 정 회장은 낙동강 고령 교 복구공사에서 여름에 불어난 물과 부족한 장비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공사기간 중 재정이 바닥나인부들이 파업을 해 공사가 중단되었다. 정 회장은 그녀에게서 받은 마지막 돈으로 밀린 노임을 해결하고 공사를 재개했다. 사업실패를 코 앞에 두고 자살까지 생각했던 정 회장은 마담이 그를 대신해 죽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교훈을 뼛속 깊이 새겼다. 3. 정 회장의 첫사랑은 그의 삶을 강단 있게 만들었다. 통천 이장 집은 동네 제일 부자였다. 면에서 동아일보를 유일하게 구독하는 집이었다. 정 회장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이장 집에 들려 다 본 신문을 얻었다. 그 당시 인기 연재 소설 이 광수의 ` 흙`을 보며 주인공처럼 경성에 가서 변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두 살 많은 이장 집 딸에게 다음에는 변호사로 나타나겠다는 결심을 굳히며 매사를 열심으로 버텼다. 부잣집 딸과 그의 처지는 너무 차이가 나서 신문을 받을 때 마다 고개를 숙이고 감히 예쁜 아가씨를 쳐다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를 사모하는 마음이 날이 갈수록 커졌다. 4번 째 고향탈출에 성공하여 서울에서 사업을 성공시킨 정 회장은 느긋한 마음으로 고향을 찾았다. 중절모 하얀 양복에 백 구두로 금 시계를 차고 한 것 폼을 잡았다. 하지만 그 동안 그녀는 결혼하여 두 아이의 엄마였다. 그녀의 배려로 사랑방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마련한 선물을 준 뒤 헤어졌다. 그날이 이승에서 그녀와 마지막이 되었다. 한 참 세월이 흐른 후 그는 이 익치에게 자신이 북한 가려는 이유를 두 가지라고 설명했다. 먼저는 국가와 민족의 통일 두 번째는 첫사랑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 회장은 김정일에게 부탁해서 그녀를 찾아달라고 이 익치에게 지시했다. 정회장은 가회동에 첫사랑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라는 지시도 하여 이 익치는 매물로 나온 전 화신 산업의 박흥식 의 집을 70 억 원에 매입했다. 고향과 첫사랑은 정 회장의 마음속에 항상 꽉 채워져 있었다. 정 회장은 2000년 초 자식들의 재산 싸움을 보면서 크게 실망했다. 이는 건강에도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희망이 그를 지탱시켜줘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성사의 공로로 김정일의 초청을 받아 판문점을 통해 평양으로 갔다. 그러나 꿈에도 못 잊은 첫사랑은 2년 전 사망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이 익치의 부탁을 받은 김정일은 보안대원들을 풀어 그녀를 수개월 동안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전쟁으로 마을이 폐허가 되어 그녀가 청진에서 살다가 죽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그녀의 가족들을 평양에 데려놓았으니 원하면 만나게 해주겠다고 정 회장을 위로했다. 정 회장은 송호경에게 꼬치 꼬치 캐물었다. 정 회장은 2년 전에만 알았다면 아산병원에서 고칠 수 있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극도의 쇠잔한 건강 때문이었다. 정 회장은 회한의 눈물을 삼켰다. 그 후 정 회장은 다시는 북한을 방문하지 않았다. 파란만장한 삶을 보낸 정 회장은 2001년 3월 두 여인을 만나러 하늘로 올라갔다. (변 여사는 힘든 병으로 아산병원에서 더 살다가 타계). 독일 손 병원님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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