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한반도 통일과 유럽동포

한반도 통일과 유럽동포

백영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초빙교수

나라를 잃은 백성들의 유랑

그날은(1919년 3월 1일) 말할 수 없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내가 공원에 갔을 때 이미 공원은 경관들의 포위를 당하고 있었다. 당장 내부는 단 열 발자국도 걷지 못하게 사람이 꽉 차 있었다.

갑자기 깊은 정적이 왔고 나는 누군가가 조용한 가운데에 연단에서 독립선언서를 읽는 것을 보았다.

나도 한 장 받아서 선언문을 읽었다. 일본에 의한 한국 민족의 합병이 부당하며 앞으로 효력이 없다고 선언하였다.

한국인은 자유로운 민족으로 자기 운명을 자신이 결정할 권리를 소유하였으니 그 권리를 반환하라고 요구하였다.

나는 몇 번이나 선언서를 읽었고, 행진 대열에 참가하였다.

이날 이후 의학도였던 이미륵은 일본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 압록강을 건너 유럽으로 떠났다. 독일에 정착한 그는 글과 삶으로 조국의 독립과 우리 민족의 멋과 아름다움을 독일과 유럽에 알리는데 주력했다.

순국의 대륙에서 나라를 되찾기 시작했다

유럽에서의 독립운동은 1905년 주영한국공사서리 이한응의 순국으로 시작되어 파리 강화회의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진행된 외교적 활동이 중심이었다. 1919년 1월 18일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의 뒤처리를 위한 파리강화회의에서 미국 대통령 윌슨은 각 민족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정치적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는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한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당시 강대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민족들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우리의 3·1운동도 이에 크게 영향을 받았고, 3·1운동의 결과 4월에 수립 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租界)에 근거지를 둔 것도 파리강화회의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았다.

국내외 독립운동단체들은 파리강화회의에 우리의 독립을 청원하기 위해 대표단을 파견하기로 하였다. 신한청년당 대표의 자격으로 파리에 도착한 김규식이 임시정부의 외무총장에 임명되어 파리에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당시 한반도뿐만 아니라 해외 동포들까지 확산된 3·1운동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파리강화회의에서 우리 대표단은 큰 힘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파리강화회의에서 독립을 인정받고자 했던 여러 민족의 운명을 가른 것은 지배국의 전쟁에서의 승패여부였다. 승전국인 일본의 지배를 받던 대한민국은 일본의 방해로 회의에 참석하지도 못하고 그토록 원하던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김규식은 파리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 위원회' 라는 사무실을 내고, 그 당시 유럽에 거주하고 있던 약 200-300명의 유학생들과 노동자들과 함께 한국의 독립과 일본의 폭압적 불법 통치를 알리는 홍보와 선전활동을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노력들은 친한(親韓) 단체의 결성으로 이어지고, 유럽인들의 지지를 받게 된다. 

‘일을 해도 조국을 위하여 하고 공부를 하여도 조국을 위하여 합시다. 조국이 없으면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조국이 없소’라는 도산 안창호의 말과 같이 한인들은 안에서 잃어버린 나라를 밖에서 되찾고자 하였다.

나라 잃은 백성으로서 현실을 살아내야 했던 한인들에게 조국 독립은 나를 찾는 길이었다. 이러한 유럽지역 한인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독립의 열망과 활동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3년 이집트 카이로 회담에서 파리강화회의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인정받는데 기여하였다.

다시 나라를 세우는데 힘을 합치다

1945년 나라를 되찾았으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초토화된 한반도는 분단이 되었다. 이 당시 유럽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한국전쟁을 지원하러 왔던 유럽국가 출신들을 따라서 이주한 한인들, 결혼이주 여성들, 전쟁고아출신의 입양인, 그리고 한국 유학생들이었다.

그 후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나라 안과 밖에서 힘을 모아야 했던 시절 해외시장으로의 노동이주가 활성화되면서 유럽진출도 확대되었다. 간호 인력과 탄광노동인력이 필요했던 독일을 비롯해 병아리 감별사로, 태권도 사범으로, 원양 어업종사자로 영국, 스페인 등 유럽전역으로 한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국내외 한민족이 서로 힘을 모은 결과로 대한민국의 경제는 성장했다. 한국과 유럽국가간의 교역규모도 커지고 있으며 경제·기술교류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유럽 국가들에 대한 한국 기업의 진출이 확대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동유럽국가에 대한 한국기업의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뿐만 아니라 안도라, 리히텐슈타인, 산 마리노 에서와 같이 혼자서 한민족공동체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개척자들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렇듯 유럽 내 한민족공동체의 범위와 경제규모는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4년 현재 유럽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동포의 수는 약 63만 명이다. 이는 우리나라 재외동포 수 약 720만의 8.7%에 해당되며 2012년 대비 1.8% 증가하였다. 유럽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동포 중 외국국적을 가진 동포는 약 50만 명이며 영주권자, 일반체류자 및 유학생을 포함한 재외국민은 약 12만 명이다. 대부분의 유럽지역은 아직 모국지향성이 강한 1세대 중심이나 러시아 CIS 지역은 3-4세대로 넘어가면서 모국과의 유대와 민족 정체성이 약화되고 있다.

또한 모국어 사용 능력과 모국에 대한 지식수준이 지역별, 세대별로 크게 차이가 나고 있다. 또한 차세대의 경우 민족정체성 교육이 제때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현지화로 거주국에 통합될 우려가 있다. 최근 정보화로 모국과의 네트워크구축 사업이 진행되며 접근성과 편의성이 개선되고 있으나 정보화의 수준이 지역별로 차이가 많이 나고 있다. 

한편, 유럽동포사회도 타 지역동포 사회와 같이 한인 특유의 근면성과 교육열로 법조계, 금융계, 산업계, 정계, 학계, 예술계, 언론계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이 확대되고 있고 주류사회의 진출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국가적 위상이 높아지고 한류로 재외동포들의 모국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한인사회의 확대로 세계의 한민족의 경제, 문화공동체가 확대되고 있다.

한반도 통일을 위한 유럽동포들의 역할

일제 강점이후 외세에 의해 분단된 한반도의 통일은 지난 70여 년 동안 우리 민족이 해결하지 못한 민족적 과제이다. 통일은 과거의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환경에서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한민족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다. 통일한국은 유라시아·태평양 핵심허브국가로 국민들의 행복한 삶은 물론 지역 경제발전의 핵심동력이며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적극 공헌하는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일한국을 지향하는 과정에 있어서 여러 가지 장애요인으로 국제환경, 주변국과의 관계, 남북한 간의 신뢰구축문제, 남북 간 교류협력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반도 통일시대의 기반을 구축해 나가기위해서는 남북한 주민뿐만 아니라 재외동포들의 동참이 매우 중요하다. 

1) 유럽의 재외동포들은 한반도 통일에 관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한반도는 세계 4강의 이해관계가 얽힌 지역으로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 자국의 입장에서의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 따라서 한반도 통일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이 필요한데 이미 독립운동과정에서 우리의 독립필요성에 대한 선전과 홍보활동을 통해 유럽인들의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 낸 경험이 있다. 한국독립 조항이 포함된 카이로 선언을 이끌어 내는데 기여한 것이다.

최근에는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프랑스 등 여러 국가에서 정계에 진출하거나 공직에 진출해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는 한인들이 늘고 있다. 시민단체들의 활동도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 등 다양해지고, 교포단체간의 연계와 타민족 단체들과의 연대 활동을 활발해 지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학자, 언론인들이 통일의 당위성을 홍보한다면 한민족의 통일의 뜻과 의지를 유럽사회에 정확히 전달해 주는데 기여할 수 있고 유럽인들의 마음을 얻어 한반도 통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2) 한민족공동체를 형성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의 통일은 한민족공동체를 복원함으로써 민족의 정신과 고유한 문화를 회복할 수 있게 할 것이며,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찬란한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극대화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우리의 민족공동체는 한반도 내에만 국한되어 이쪽과 저쪽을 배타적으로 자르는 것이 아니라 유연하게 이어주는 포용적이고 열린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유럽국가 중 48개 국가가 남북한과 동시에 수교를 하고 있고 유럽에 본부를 둔 국제기구에 남북한이 동시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아 재외동포들은 거주국에서 남북한 분단의 현실을 일상에서 경험하고 있다. 유럽의 한인 타운인 영국의 뉴몰든(New Malden)에는 약 1만 5천명(2011년 통계)의 한국인이 살고 있으며 2000년 이후 약 1천 명에서 1천 5백 명에 달하는 중국동포들과 약 860명 정도로 추정되는 탈북자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유럽동포들은 남북한 주민과 대화를 하며 교류를 넓혀 나가면서 남북한 간의 불신의 벽을 낮추고 점진적으로 동질성을 회복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민족문화를 공유하면서 통일한국을 위한 민족공동체 형성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3) 민족 경제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과 남북경제·통합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북한경제를 활성화시켜 남북한 간 경제력 격차를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생산시설의 현대화와 남북한 간 사회간접시설의 연계를 위한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시에 국내에서의 금 모으기 운동, 재외동포들의 모국 송금, 모국 상품사주기 운동 등은 1997년 외환·금융위기를 조기에 극복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재외동포들이 합심하여 모국경제에 기여한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최근 세계한상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재외동포 경제인들이 글로벌 수준의 네트워크와 자본력을 통해 북한 투자를 모색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미 체결된 한·미 FTA, 한·EU FTA, 한·칠레 FTA, 한·중 FTA 등으로 다양한 해외시장을 재외동포들과 함께 개척해 가고 있다. 특히 통일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현지문화를 이해하고 현지사회에 정통한 경쟁력있는 차세대동포들과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서로 상생할 수 있는 포용성, 개방성과 다양성을 수용하는 네트워크 구축으로 민족경제공동체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통일이 되면 부산에서 출발한 기차가 평양을 거쳐 유럽의 도시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 길은 유럽과 한반도의 한민족이 함께 상생하며 번영하는 행복의 길이 될 것이다. 

유럽의 한인들이 자녀들에게 우리의 선조는 민족의 독립을 이뤘고 우리는 통일을 완성하는데 기여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