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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전체
2019.12.04 04:06
일본군 성노예 제도 피해자 기림사업 이야기 (1) <평화의 소녀상> 과 우리들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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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성노예 제도 피해자 기림사업 이야기 (1) <평화의 소녀상> 과 우리들의 자리 0. 들어가면서 2017년 8월 여성예술전시관의 건립 의사 결정을 문서로 받았다. 2017년 12월에 출범한 풍경세계문화협회는 창립 프로젝트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설정했다. 후원을 받는 과정에서 유럽내 한인 대표 동포 언론사로서 시사 정론지로 평가 받고 있는 유로저널(발행인 김훈)에 사랑의 빚을 지었다. 유로저널은 작년 여름부터 1년 가까이 유럽 전역 전면 광고를 무료로 내어 주었다. 싯가 1만 유로에 달한다. 이로 인하여 <평화의 소녀상>에 관심을 가진 분들도 많이 생겨났다. 이번에는 프랑크푸르트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계기로 일본군 성노예 문제와 기림 문화에 관해 연재를 할 수 있도록 지면을 할애해 주셨다. 이 지면을 빌어 풍경세계문화협회 이름으로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프랑크푸르트에 전시하는 <평화의 소녀상>은 작년에 본(Bonn)에 자리한 여성예술전시관(여성박물관) 뜰에 영구건립하기로 한 합의에 따라 독일에 들여왔다. 미국 가주한미포럼에서 지원하였다. 본에 건립하기로 한 계획이 미루어지면서 함부르크에 6주 실내 전시를 하였다. 미뤄진 계획은 그 사이 사실상 취소되었다. 그 소녀상이 10월 28일 저녁 18시를 기해 프랑크푸르트 대성당 맞은편에 자리한 가톨릭 문화센터 <하우스 암 돔>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여름부터 준비해 왔지만 널리 알릴 수 없었다. 일본 정부가 알게 되는 순간에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프로젝트의 중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외국 공관이 독일 내에서 일어나는 시민 활동에 간섭을 하는 것이다. 이번 프랑크푸르트 전시도 <하우스 암 돔> 홈페이지에 공지된 바로 다음날, 일본총영사관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시청에 문의를 넣었다. 어려운 이유는 그것만은 아니다. 전시의 본질을 왜곡하거나 잘못 아는 경우도 장애물이 된다. 사안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일본인 중에도 성노예 피해자 문제에 있어 정의로운 해결을 추구하는 세계시민들이 있는 것처럼 한국인 중에도 이 문제를 잘못 알고 있거나 왜곡하는 경우들이 더러 있지 않은가. 이 문제는 한국, 일본의 문제가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의 역사에 관한 문제라는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필자는 본고를 통해서 함께 생각하고 맑게 토론하는 마당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사람 사이의 오해라든가 다른 대상에 대한 증오를 벗어던지고 인정해야 할 과거와 새롭게 만들어갈 공동의 미래를 생각하면 한다. 그러다 보니 본고에서 과거에 있었던 일을 기록해야 할 부분이 있으며,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선을 거세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 비판적인 시선의 대상은 단지 일본 정부만을 향한 것은 아니라는 점도 미리 말씀드린다. “한라산”의 시인 이산하는 '우리 모두는 한국 현대사에서 상주'라고 하였다. 그렇다. 역사의 구석구석에 가슴 저리는 사건들이 도사리고 있다. 독일에서 살아가면서 헤이트 스피치와 극우파 테러 등에 관한 기사를 볼 때마다 독일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피해자는 당신이 될 수도 있고 내가 될 수도 있고 우리의 자녀들이 될 수도 있다. 세계 현대사에서 우리는 언제 상주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소녀와 여성들이 피해를 받았을까? '위안부'라고 이름 붙은 피해자들은 우리 어머니였을 수도 있고 할머니였을 수도 있다. 다큐멘터리 <침묵>의 박수남 감독은 자신이 그 때 한국에 있었더라면 피해자가 되었을 수도 있었으리라고 한다. 우리가 상주라면 우리가 슬퍼하는 그이들은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 지난 수십년간 세계각지에서 있었던 전쟁과 분쟁지구 성폭력와 강간 및 강제매춘 피해자의 수를 통상 수만이라고 한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의 수는 모두 얼마나 될까? 상하이에 첫 '위안소'가 설치된 1932년부터 1945년까지는 모두 13년. 이 세월은 20세기 말과 21세기 초반의 수십년보다는 짧은 기간이지만 단일 가해 주체의 성노예 제도로서는 가장 긴 기간이며, 피해자의 수는 수십만에 달한다. 학자들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20만이라는 숫자는 유엔 보고서를 비롯하여 가장 많이 인용되는 수이다. 그렇지만 오늘날은 중국 '위안부' 문제 연구센터 소장 쑤즈랑 교수의 40만 설을 간과할 수 없다. 20만이라고 할 때는 대부분이 '조선' 출신이었지만 쑤즈랑 교수는 중국인만 최소한 20만으로 추산한다. 중국에는 상하이 사범대학에 한중 평화의 소녀상이 서 있고, 난징 리지샹에는 중국 곳곳에 산재한 유적과 증거물을 모아 만든 '위안부' 유적기념관이 있다. 중국와 한국 외의 다른 지역 피해자 수는 얼마나 될까? 아직 연구가 종결되지 않은 분야이다. 피해자가 속한 국가가 13개국이라 한 적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20개국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년간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국가 아카이브를 조사한 네덜란드 기자 그리셀다 몰레만스는 피해자의 출신국가를 34개국으로 산정하고 있다. '아시아 여성기금' 홈페이지에서 밝히는 피해자 수와 최신 연구 결과에서 드러나는 수는 매우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미국 가주한미포럼 김현정 대표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이 숫자에 대한 토론을 거쳐 비문에는 '수십만'이라고 사용하기로 했다. 그들은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한 것일까? 수난의 내용은 강간과 구타와 살해와 인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위안부 증언' 이란 검색어를 통해 인터넷에서 많이 접할 수 있다. 범죄 현장은 '위안소'였다. 1932년 상하이 '대일살롱'에서 출발하여 다양한 이름을 가진 이 '위안소'를 유엔 특별조사관 게이 맥더글 변호사는 보고서에서 '강간센터'라고 표현한다. '강간센터'가 있던 곳은 러시아에서 남태평양 군도까지 일본에서 동티모르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국가로 치면 22개국에 달한다. 하지만 어느 나라도 자신을 '피해국'이라고 할 자격은 없다. 할머니들이 피해를 당할 때 국가는 부재하였고, 수십 년 지나 할머니들이 스스로 일어나서 증언하고 요구할 때 어느 나라도 제대로 그 할머니들의 나라가 되지 못하였다. 역사를 지우려는 자들과 삭제를 방관하는 자들의 시도에 맞서 진실을 이어갈 세계시민들이 필요하다. 성노예든 강제매춘이든 강제노동이든 이러한 반인도 행위는 국제법에서 정하는 전쟁행위의 규약을 넘어서는 '전쟁범죄'이다. 우리가 흔히 전범국가라고 할 때 전범을 뜻하는 '전쟁범죄'는 넓은 의미로 전쟁을 일으켰다는 뜻이다. 무라야마 담화에서 '잘못 생각해서 전쟁을 치루고 식민지 경영을 한 것에 대해 사죄한다'고 한 것은 넒은 의미에서의 전쟁범죄, 즉 전쟁을 한 사실에 대한 것이지, 성노예과 강제매춘과 학살에 대한 사죄는 아니었다. 일본은 종종 여러 번 사과하였다고 주장하지만, 일본은 수십만 여성들에 대한 '전쟁범죄'를 정식으로 사과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설혹 사죄하였다면 그 사건에 대한 기림비 건립을 막을 이유도 없다. 독일이 과거를 사죄하고 교육한다 하여 홀로코스트 기림비를 없애지는 않는다. 가해국 일본 독일에서 첫번째 소녀상과 이번 두번째 소녀상을 건립 및 전시하는 과정에서 거듭 비문이 문제가 되었다. 비문의 내용은 사실 국내외 어디서나 거의 동일하다. 피해자들의 출신지를 적은 경우 적지 않은 경우, 평화로운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적시한 경우 역사 서술 중심으로만 적은 경우 등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수십만 여성을 강제로 끌고가 성노예 혹은 강제매춘을 강요하였다”는 사실이 적시되어 있다. 2016년 첫 소녀상 건립식이 끝난 그 다음날 일본 대사관에서 철거 요청을 하였다. 비문 구절에 대한 시비가 있었던 것 같다. 한국인들로 구성된 건립추진위 내부에서 일본측에 비문 수정을 제안하자는 제안이 나오기까지 했다. 첫 소녀상이 서 있는 네팔 히말라야 공원에는 한국인들의 동의로 결국 소녀상이 비문 없이 남았다. 작년 함부르크 도로테에 죌레 하우스의 6주 전시는 그런 점에서 성공이었다. 6주 동안 2 차례 일본총영사관에서 도로테에 죌레 하우스 전시 담당자를 만나 전시 중단을 요청하였으나 전시는 원래 정한 시간을 채웠다. 그 담당자에게 깊이 감사를 드린다. 일본은 왜 그렇게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를 숨기고 싶어할까?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겠으나, 일본이나 이에 동조하는 일부 한국인들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일본의 과거를 언급한다는 것이 일본민족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과거를 직시할 수 있는 능력이 그 사회를 더 성숙하게 한다는 점을 일본의 위정자들과 일본의 친구들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바람은 물론 일본 뿐 아니라 일본을 향해 마치 도덕적 우위에 서 있는 것처럼 감정적인 표현을 쏟아내는 한국인들에게도 해당된다. 부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모든 감정적인 순간을 조용히 누르기는 쉽지 않다. 최소한 머릿속에 분명히 하여야 할 것은 바이체커가 남긴 명언처럼 '한 민족 전체의 유죄 무죄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억할 것인가 억누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할머니들은 피해자의 자리를 넘어 인권 투사가 되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맑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일본 민족 전체를 죄인으로 보지 않는다. 단지 그 수많은 피해자 여성들에 대해 조직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 책임자들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평화의 소녀상>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또 <평화의 소녀상>은 오로지 예술품일 뿐이다. '우상'도 아니고 '정치 시위물'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긴 그림자에 드리운 할머니 그림자에 오롯이 앉은 나비처럼 해원상생의 꿈을 꾼다. 그 노정에서 최소한의 도덕 '기억'이 필요하다. 하늘과 땅을 오가는 새처럼 죽은 자와 산 자의 기억을 이어가며 소녀 옆 빈 자리에 앉자. 더 많은 삭제의 시도에 맞서 '기억'을 포기하지 말자. < 다음 호에 계속 > 사진: 김서경/김운성 글 : 풍경세계문화협회 이은희 대표 위의 특별기고 내용은 본 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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