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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경제개발 자금이 필요했던 대한민국은 서독과 광부 및 간호사 파견 협정을 맺는다. 요지는 서독이 우리나라에 차관을 주는 대신 한국인을 광부 및 간호사로 고용한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빚 보증이었던 셈이다.
이후 우수한 한국 젊은이들이 독일행을 택했다. ‘도이치 트로이메라이(Deutsch Traumerei=German Dream)’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독일의 막장은 문제가 아니었다. 1963년 500명을 모집했던 파독 광부는 4만6000명이 몰렸는데, 상당수가 대졸자였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이역만리 독일 땅에 내린 한국 젊은이들은 독일 사람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열심히 일해 단숨에 그들 사회에 적응해 갔다. 간호사로 파견된 처녀들도 독일인의 기피시설인 노인병원, 중환자실에 배치돼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한국인의 정체성과 꿈을 버리지 않았다.

이들이 대한민국에 보낸 송금액은 연간 5000만 달러로 한때 국민총생산(GNP)의 2%에 달했다. 골절상, 실명, 진폐증에 시달리면서도 이들은 조국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가난을 벗기 위해 조국을 떠나야 했던 해외 교포들에게 서울G20정상회의의 의미는 각별하다. 파독 광부 출신 방준혁 유럽한인경제인단체총연합회장이 G20의장국 대한민국에 대한 그동안의 고뇌와 소감을 [기획특집 ‘서울 G20 정상회의’]에 기고한 내용을 본지가 전재해 게재한다. <유로저널 편집부>



해외 진출의 꿈, 독일로

전북 남원의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난 나는 대학(한양대 공대)에 가서도 가난을 벗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나는 꿈을 펼치기 위해 졸업 후 외국에 진출하겠다는 생각으로 대학 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가난은 학업 마저 지장을 줬다. 1969년 등록금을 벌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에서 일을 하던 중 신문에 ‘서독에 갈 광부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봤다. 그 광고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이다. 현재의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안정된 법원공무원으로 살아가기를 바랬던 부모님과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본인은 “꿈을 펼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파독광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독일행 관문은 녹록지 않았다. 평소 영어에 자신있었던 본인은 독일행을 위해 영어는 물론, 독일어 공부에 매진해 면접을 준비했다. 파독 광부의 또 다른 준비는 체력이었다. 이역만리 막장의 중노동을 버티기 위해 정부는 강인한 체력을 요구했고, 거기에 부합해야 했다. 체력에 자신있었지만, 남과 경쟁에 밀리지 않기 위해, 아침 저녁으로 죠깅과 윗몸일으키기 등으로 체력 시험 준비를 해 갔다.

시험장에 와 보니, 나 같은 20대 젊은이부터 30대의 아저씨까지 각양각색의 응시자로 넘쳤다. 면접장에 들어서니 면접관들은 젊은 대학생이 독일에 왜 가느냐는 걱정 투의 질문이 많았다. 나는 면접관에게 “내가 독일에 가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벌러 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광부가 끝난 뒤에도 독일에 남아 성공한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국위 선양과 조국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 점이 면접관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파독광부 명단에 내 이름이 올랐다. 출국일이 가까워지자 어머니와 여동생들은 집안의 대를 이을 장남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이역만리 막장에 간다는 사실에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말씀이 없고, 엄했던 아버지도 출국 전날 손을 잡아주시며 “꼭 살아남아 네가 품은 성공을 이루거라”고 당부하셨다.


광부에서 마이스터로, 사업가로

독일에 도착하니, 어학코스에서 간단한 독일어를 배우는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독일어를 공부했던 본인은 남들보다 어학코스의 진도가 빨랐고, 공학을 전공한 점이 반영됐는지, 탄을 캐는 기계 정비공으로 배치돼 광부 일을 시작하게 됐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지하 1300m의 갱도에 내려가 하루 8시간 씩 석탄을 캤다. 하루 종일 탄을 캐다 보니, 얼마 만큼 탄을 캤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엄청난 양을 캔 것만은 기억한다. 그 과정에서 독일인 선배 정비공의 친절한 배려와 가르침이 많은 도움이 됐다. 그와는 광부 일이 끝나서도 독일에 정착하면서 좋은 인연을 맺어 왔다.

광부 일을 하며 지금의 아내(천경원 씨)도 만났다. 우연히 지인의 결혼식에 갔다 만난 아내는 독일 케론대학 입학을 위해 독일로 왔던 꿈 많은 아가씨였다.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3년 간의 광부 계약기간이 끝나자 나는 ‘도이치 트로이메라이’의 첫 관문으로 다임러벤츠를 선택하고 문을 두드렸다. 내 바람은 받아들여져 한국인 최초로 뒤셀도르프에 있는 다임러벤츠 사에 입사했다.

벤츠에 입사해 피나는 노력으로 각종 교육을 이수하고, 독일 직업인의 꽃인 마이스터 과정에 오르게 됐으며,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토, 일요일이면 차에 식품을 싣고 판매하는 부업을 통해 월급을 초과하는 수입을 올리게 됐다.

나는 다임러벤츠에서 훗날 한국에 벤츠자동차 총판을 갖는 계획을 세워봤지만 재정 문제가 여의치 않아 독일인을 상대로 하는 사업에 승부를 걸었다.

1979년 말, ‘꿈의 직장’이라는 벤츠 회사를 나와 사업을 시작했다. 나는 대한민국의 훌륭한 전통 공예품은 물론, 우리가 만든 품목이 독일인의 마음을 충분히 움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독일 전역을 상대로 영업에 들어갔다.

예상대로 독일인들은 난생 처음 보는 한국의 물건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나는 독일 전역에 한국 물품을 대는 도매 사업가로 기반을 쌓을 수 있었다. 또, 마침 수요가 폭증하는 한국의 보온병 제조 회사의 동업 제의를 받아들여, 독일의 보온병 업체가 한국에 노하우를 전할 수 있는 중간 역할을 해줬다. 그 결과 비싼 일제 보온병 일색이던 한국의 보온병 시장은 질좋고 값싼 한국산 보온병이 빠르게 대체할 수 있었다.

독일에 왔던 많은 파독광부는 3년 광산계약이 끝나면 무조건 귀국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나처럼 이곳에 정착해 가정을 갖고, 다양한 직업군으로 진출한 사람은 적었다. 남은 이들은 남자간호사로, 대학교수로 꿈을 이뤄 갔다.
나는 독일에 온 것 자체가 ‘행운아’라고 생각하고, 매사 긍정적으로 독일 생활에 임했다. 벤츠에 입사해서도, 사업을 시작해서도 이런 자세는 내가 독일에서 순탄하게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내가 독일에 정착하는데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은 독일인의 친절한 자세였다. 이방인을 대하는 독일인의 친절한 마음과 자세는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이 배워야 할 덕목이라고 말하고 싶다.

독일인들은 많은 파독광부와 간호사에 대해 아시아인이라고 차별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물론 여기에는 갖은 어려움을 참아내고 성실히 근무했던 우리 젊은이들의 노력이 일조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이방인에 대한 편견 따위는 확실히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영어보다 어렵다고 하는 독일어에 대한 언어적 한계는 잔존했다.

많은 한인 교포 가정은 이런 점에 착안해 2세에게 대한 언어 교육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우리 두 아들을 비롯해 독일에 있는 한인 교포 2세는 대부분 독일어는 물론,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정도는 자유롭게 구사할 정도다. 이제 30대에 접어든 교포 2세의 이같은 능력은 향후 대한민국의 글로벌 발전 전략의 일원으로 잘 활용되기를 바란다.


G20정상회의 개최는 국력의 본보기

1970년 내가 독일에 갔을 때, 독일인이 기억하는 대한민국은 전쟁을 겪은 아시아의 후진국 정도였다. 그러나 올림픽,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이후 대한민국은 이제 보통의 독일인도 코리아를 알 정도의 상상을 초월하는 위상을 가지게 됐다.
  
독일은 대한민국이 경제발전의 본보기로 삼고, 그들의 발전상을 연구하고, 이식하려 했던 나라다. 그러나 G20 대열에 우뚝 서고, 올해 의장국으로 G20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대한민국은 이제, 독일인이 연구하고 배우는 모델로 삼고 있을 정도다. 독일인들은 한국인을 매우 긍정적이며 훌륭한 국민으로 평가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G20정상회의를 통해 지금보다 더 위상을 높이고, 미국, 독일 등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선진국에 진입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나를 비롯한 유럽의 많은 한인 교포들은 G20의장국으로 발전한 조국에 대해 “과거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나왔던 나라”가 아닌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찾아가는 선진국으로 발전했다”는 것에 많은 박수와 격려를 보내고 있다.

더불어 G20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조국에 대한 우리 유럽 한인들의 자부심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우리를 대하는 독일 등 유럽 각국의 현지인들도 과거와 달리 매우 긍정적으로 대한민국과 주재원, 한인들을 대하고 있으며, 대우도 달라졌다. 우리는 이것이 대한민국의 국력이라고 보고 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한인들은 대한민국을 한 번도 잊어 본적이 없으며, 항상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더불어 나와 유럽의 한인 경제인들은 대한민국이 앞으로 유럽 등 해외시장 진출에 현지 동포의 경제인단체와 함심해 시장 개척에 나선다면 지금보다 훨씬 주도적인 시장 선점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유럽은 물론, 미주, 아프리카, 중국 등 대륙별 경제인단체는 대한민국의 현지 진출에 가장 든든한 우군이다. 우리 한인 경제인들도 이제는 중국 화상 못지 않게 각 대륙과 세계 각국에 탄탄한 네트워크와 기반을 갖고 있는 만큼 이들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시장 선점의 성패가 달려 있을 것이다.



▲ 방준혁 유럽한인경제인단체총연합회 회장은


1970년 대학(한양대 공대)를 중퇴하고 파독 광부로 독일에 진출해, 벤츠사 마이스터를 거쳐 현재 (사)유럽한인경제인단체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유럽한인경제인단체총연합회는 유럽 27개국에서 활동 중인 경제단체와 한인사업가 1200여 명으로 구성됐으며, 유럽 현지의 시장동향 및 회원 상호간의 교류 협력과 한국의 위상을 유럽 사회에 높이기 위해 한국의 각 경제인단체, 수출지원단체 등과 경제 협력에 주력하고 있다. 향후 한-EU FTA체결로 대한민국과 유럽의 경제 협력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방준혁 유럽한인경제인단체총연합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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