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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예술칼럼
2023.09.25 10:33
정체성에 대한 고찰; 신디 셔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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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저널 362 정체성에 대한 고찰; 신디 셔먼 2
2. 정체성 1) 로즈 셀라비(Rose Sélavy) 요즘 많은 사람들이 소설이나 영화 또는 게임의 판타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또는 한창 유행하는 웹소설이나 웹툰을 읽으면서 그 속의 주인공들을 롤모델 삼아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해 그들과 비슷한 페르소나(persona)를 써 보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리스의 고대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일컫는 페르소나(persona)를 쓰는 것일까? 간단한 이유 중 하나는 힘든 현실속에서 작은 위안이라도 찾고 싶어서다. 신디 셔먼이 여러 캐릭터로 자신을 분장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처럼 페르소나, 즉 가면을 쓰고 우리도 진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면 뒤의 우리 진짜 모습이 아니라 분장을 통해 페르소나를 통해 또 다른 나를 연습하고 연기한다. 이렇게 가면을 쓰고 벗고 하는 과정은 사실 누구나 거치는 인생의 한 과정이다. 자기가 누구인가를 찾아 가는 과정에서 그리고 자기의 개성화를 이루는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많게는 수천 번 이상의 다른 가면을 쓰고 벗는다.
Man Ray, Portrait de Rrose Sélavy, 1921 (사진출처: Memento) 이것은 ‘샘’(Fountain)으로 유명한 현대 미술의 신화라고 평가받고 있는 다다이스트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이 1921년 여장을 한 모습을 만 레이(Man Ray, 1890-1976)가 찍은 사진 시리즈 중 하나다. ‘에로즈 셀라비’(Rrose Sélavy)는 로즈 셀라비(Rose Sélavy)라고도 쓰는데, 마르셀 뒤샹의 필명이자 저자명 중 하나다. 다다이스트들의 특징 중 하나인 소위 말장난을 좋아했던 뒤샹의 의도대로 이것을 듣는 사람들은 프랑스어의 에로스(Erose)로 착각하기도 했다. 또한 ‘아로제 라 비’(arroser la vie), 즉 ‘인생을 건배합시다’(to make a toast to life)라고도 읽혀졌다. ‘로즈 셀라비’라는 작가명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20년 ‘신선한 과부’(Fresh Widow)에서다. Marcel Duchamp, Fresh Widow, 1920 (사진출처: Tate) 뒤샹은 ‘로즈 셀라지’라는 여자이름을 제목으로 붙이고는 자신을 여자로 표현하고 싶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사실 난 나의 신분을 바꾸고 싶었다. 처음에는 유대인 이름을 사용하려고도 했다. 난 카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종교를 바꾸는 것이 되었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유대인 이름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아예 남성을 여성으로 바꾸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더 쉽겠다고 생각돼서 ‘로즈 셀라비’라고 한 것이다.”
2) ‘깁슨걸’과 ‘플래퍼’ 이름이 우리들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의 일부분-
어떤 것의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그것은 더 이상 그저 어떤 하나가 아니라 의미가 있는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이번 9월 7일에서 10일 동안 열린 키아프 서울(KIAF SEOUL)에서는 정장을 차려입은 한 여성이 갤러리 입구에 서서 그 갤러리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이름을 물어 큰 소리로 그 사람의 이름을 또박또박 호명하는 퍼모먼스를 보여줬다. 나의 한 친구는 보통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 불리다가 그 날 이 퍼모먼스를 통해 자신의 이름이 공공장소에서 크게 울러퍼졌을 때 정체성을 되찾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어릴 적 학교운동장에서 학생들 대표로 나가서 교장선생님께 상을 받았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났다고 하면서 아주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이름은 또한 우리가 이상화된 혈연 영역인 상징계 내에서 하나의 위치를 가지게 한다. 뒤샹이 ‘로즈 셀라비’라는 여자 이름을 사용한 것은 일종의 아버지의 성을 따르며 근친 상간은 금지되어 있는 상징계의 질서와 규정을 거부하는 행위였다. 1914년에서 1918년까지 지속됐던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남자들이 희생되었고 이에 여자들은 남편대신, 아버지대신, 오빠대신 자연스레 집안을 책임지고 이끌어가야만 했다. 뒤샹이 ‘로즈 셀라비’라는 여자 이름을 사용했던 1920년대도 소위 새로운 ‘신여성’ 이라는 계급이 형성되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기품있고 아름다운 ‘깁슨 걸’이 신여성의 이상적인 전형으로 사랑받아 왔다. 1890년대 일러스트레이터 찰스 다나 깁슨에 의해 처음 탕생한 깁슨걸은 미국 여성들의 건강함을 상징하는 큰 키와 잘룩한 허리, 그리고 보다 실용적이고 진취적인 생활 태도 등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전후에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생활을 추구하는 ‘플래퍼’라는 이미지가 유행했다. 이것은 1920년대 코코 샤넬이 디자인한 플래퍼 스타일로 남성 우월적이고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 연연해하지 않고 과감히 자신있게 다리를 드러내는 스타일이었다.
The Gibson Girl Look과 1920년대 코코 샤넬의 플래퍼 드레스 룩 또한, 코르셋에서 해방돼 편안하고 자유롭게 입고 벗을 수 있는 실용적이고 활동적인 저지 원단으로 만들어졌다. 이에 부유층이나 패션계의 셀럽뿐만 아니라 대중들까지 즐겨입는 주도적인 트렌드가 되었다. 뒤샹의 ‘로즈 셀라비’ 발상은 이런 성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사회적 흐름을 잘 반영한 것이다. 신디 셔먼의 자화상도 마르셀 뒤샹의 이 ‘로즈 셀라비’의 초상 사진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Cindy Sherman, Untitled, 2016, dye sublimation metal print, 52 by 46 inches; at Metro Pictures. (플래퍼걸(Flappers)시리즈) 신디 셔먼의 ‘플래퍼걸(Flappers)’ 시리즈에서는 큰 칼라 초상화 사진으로 셔먼은 영화 황금 시대에서 유명하고 독립적인 여성들의 페르소나를 가져왔다. Cindy Sherman, Untitled #581, 2016, Dye sublimation metal print, 156,8 x 116,2 cm, © Cindy Sherman, Courtesy of the artist, Metro Pictures and Sprüth Magers 과장된 메이크업과 현대적인 옷, 섹시한 포즈의 사진 속 여성들은 더 이상 젊지 않다. 이 여자들은 실제로는 1960년대를 살고 있지만, 1920년대에 고착된 나머지 그 시대처럼 플래퍼 스타일 옷을 입고 있다.
3) 허상 Cindy Sherman, Untitled Film Still #27', 1979, reprinted 1998 (사진출처: Tate) 어느 영화에서 본 듯한 이 사진 속 셔먼의 모습은 화장이 지워지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술과 담배에 의지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요즘 우리는 앱을 사용해서 예쁜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심지어 몽환적으로 보이게 하는 셀피를 찍으려고 한다. 그런데, 셔먼은 가감없이 그저 비탄에 빠진 여자가 되었다. 신디 셔먼이 차용한 1940-50년대 필름 느와르(Film Noir)에 나오는 여성상은 돈과 섹스에 집착하거나 변덕스럽고 불안한 이미지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셔먼이 자신의 ‘무제 영화 스틸’ 시리즈를 제작한 1970년대는 락 음악과 바디 아트에 걸쳐 다방면으로 레즈비언, 게이 해방 운동과 성의 자유에 대한 논쟁이 적극적으로 전개된 때였다. 그렇다면 왜 셔먼은 1940-50년대의 필름 느와르의 여성상에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 그것은 이런 전형적인 여성상을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셔먼은 가부장제의 산업사회에서 소비의 주체와 객체로 동시에 존재하는 수동적인 여성상을 페르소사로 채택하여 영화의 스틸과 상업 사진의 현란한 색과 광택을 이용해 그 허상을 더욱 부각시켰다.
3. 페르소나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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