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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저널 와인칼럼
2014.01.20 01:28
박 우리나라의 프랑스 와인 기행 5 : 와인 전시회의 기획자, 와인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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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프랑스 와인 기행> 와인 전시회의 기획자, 와인 큐레이터
“어떤 와인이 맛있어요? 와인을 잘 알고 싶은데 너무 어려워서요.
좀 쉬운 방법이 없나요? ” 필자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이다. 유클리드의 명언을 빌려 답하자면 “와인에는 왕도가
없다”. 많이 마시고, 많이 공부하고, 많이 배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물론 이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훨씬 쉽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와인을 많이 마시는 것, 이것은 다들 할 수 있다. 아니, 이미 다들 많이 마시고 있지 않은가? 이 점에서 프랑스에서 산다는 것은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많이 마시는 것만으로 와인을 잘 알 수 있을까? 물론 가능은 할 것이다. 훌륭한 와인은 그 스스로
우리에게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미술에 대해 배우거나 공부하지 않고, 직접 명작들을 끊임없이 보는 것만을 통해서 미술을 잘 알게 되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와인 강의를 듣거나 와인 서적을 읽고 공부하는 방법이 있다. 이곳 프랑스에는 훌륭한 와인 강의와 서적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는 프랑스어라는 난관을 넘어서야만 가능하다. 어쩌면 이것이 와인의 천국 프랑스에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나라에 있을 때보다 와인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상황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필자가 이곳 프랑스에 사는 한국 교민들에게 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인 커뮤니티의
와인 모임, 그것도 실력 있는 리더가 이끄는 와인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력 있는 리더란 어떤 사람인가? 그것은 좋은 와인을 고르는 안목, 좋은 장소를 섭외하여 적절한 순서로 와인을 배치하는 기획력, 그리고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각각의 와인들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전달력, 모임을 꾸준히 진행하는 성실성 등을 두루 갖춘 사람이라 말할 수 있다. 파리에도 이런 실력 있는 리더가 운영하는 와인 모임이 있어서 와인을 좀 더 알고싶어하는 이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와인 경매사이기도 한 김성중 소믈리에는 약 3년 전에 파리에서 “십시일반”이라는 와인 모임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레스토랑이나 와인 바에서 진행하다가 지금은 안은희 원장이 운영하는 “89 Galerie”에서 모임을 하고 있다. 정기모임은 매회 와인 산지, 품종, 종류, 등급 등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강의를 한 후 시음을 하며 질문과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가끔은 이른바 “번개 모임” 및 와인 산지 여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준비된다.
그는 프랑스 와인 마니아 사이에서는 유명하지만, 아직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보물 같은 와인을 찾아내어 소개하는 일을 즐겨한다. 그렇다보니 책에도 나오지 않는 정보들을 끊임없이 찾아내야 하고, 방문이 거의 허용되지 않는 도멘이나 샤토에 접촉하기 위해 삼고초려를 넘어 칠전팔기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의 그런 노력을 통해서 모임에
참여한 사람은 프랑스 내에서도 구하기가 쉽지 않은 훌륭한 와인들을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지난번 모임 때에는 3년 동안 거의 빠지지 않고 모임에 참여했다는 회원을 만날 수 있었다. 그 회원이 말하길 처음 모임에
참여했을 때 자신은 와인에 대해 거의 몰랐고 큰 관심도 없었는데, 매번 다른 주제의 강의를 듣고 좋은 와인을 마셨더니 이제는 직접 부르고뉴나 보르도의 좋은 도멘이나 샤토를 방문할 정도로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이처럼 잘 기획된 모임에
참여하면 우선 전문가에 의해 선별된 좋은 와인을 만날 수 있고, 그 와인과 그 와인의 생산자에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그 와인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조건과 잘 어울리는 음식 등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와인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커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스스로 공부하고 직접 사서 마시게 된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혼자서 보지 않고, 훌륭한 도슨트나
가이드에게 투어를 받고 나면 미술을 좀 더 공부하고 싶어져서 미술관 나오는 길에 기념품 매장에서 도록을 구입하는 마음과 비슷할 것이다. 무엇이든 마중물이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이런 모임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와인은 혼자 마시는 술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나누는 음료이다. 와인은 맥주와 달리 혼자서 한 병을 다 마시기도 어렵고, 위스키와 달리 한 잔씩 마시며 오래 보관할 수도 없다. 그래서 여럿이서 함께 마셔야 하는 것이다.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 중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소모임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함께 와인을 마시다 보면 로맨스가 시작될지도 모르지 않나? 그리고 일반적인 와인 모임의 경우 남성 회원의 비율이 한참 더 높아서 운영진에서 인위적으로 성비를 맞추기도 한다. 그런데 십시일반은 여타의 와인 모임과 달리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여성이 조금 더 많은 것 같다. 운영자의 탁월한 역량(?) 덕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성중 소믈리에는 자기 자신을 와인 큐레이터(Curator)라고 소개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도슨트(Docent)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관람객들에게 전시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작품과 관련된 설명을 하는 사람이다. 반면 큐레이터는 작품들의
숨겨진 예술사적 가치를 알아볼 능력을 갖추고, 작품을 수집하여 전시를 기획할 뿐만 아니라 재원조달 및 홍보 등 전체적인 매니지먼트를 총괄하는 사람을 말한다. 겉으로 보이는 작품에 대한 설명은 큐레이터의 역할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런 큐레이터의 역할은 필자가 앞서 제시한 실력 있는 리더의 덕목과 거의 일치한다. 와인 모임을 진행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운영자가 이 모임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과 섬세한 준비를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성중 큐레이터가
와인 모임 공지 때 항상 사용하는 표현이 있다. “예술가들이 만들어
내는 레어한 와인”. 예술가들이 정성껏 빚어낸 예술적인 와인들을, 갤러리라는 공간에서 실력 있는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만나는 시간. 와인 전시회(Exposition)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마지막으로 이 모임의 치명적 단점을 하나 이야기하겠다. 예를 들어 평소에 저렴한 가격에 편하게 마시는 로제 와인이라도 마트에서 5유로에 파는 저렴한 것부터 몇십 유로가 훨씬 넘는 고급 제품까지 그 범위가 정말 넓다.
이 모임에서 좋은 와인을 마시다 보면 다시 저렴한 마트 와인으로 돌아가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삶이 팍팍한 파리지앙에게 이보다 더 잔인한 단점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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