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예술산책 두번째,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서는 오랜 동안 서양인들의 문명의 기원에 관한 유일한 참고 문헌이었다.
19세기 이후 고고학적 발굴과 수 많은 연구로 많은 유물과 자료들이 빛을 보게 된다. 이 엄청난 자료들은 우리에게 성서들이 어떻게 쓰여지었는지 알게 한다. 성서는 언어가 동일한 지역의 여러 가지 문명이 3000년 동안 서로 교류하고 공존하는 지역을 기반으로 근동 중동 지방에서 태어난다.
성서가 생겨난 메소포타미아와 나일강 유역에서 초기 문명을 일으킨 동기 유발에는 무엇일 있었을까 하는 의문과 그리고 이 모든 문명의 시초에 신의 역할은 무엇인가?
성서의 세계 창조는 현대 과학의 창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성서적 진리와 과학적 진리는 별개의 진리다. 우주가 빅뱅으로 생겨 났다든지 아니면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생성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성서의 세계에서는 답답한 우문이다.
신화나 성경은 거짓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신화나 성경은 우리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태초에 세상은 어떠하였으며 지금은 어떤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해답을 준다. 우리가 왜 지금 여기 있는지, 우리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왜 일하는지, 왜 불행과 행복과 삶과 죽음이 있는 것인지, 왜 항상 당장 행복이 함께하는 것이 아닌지 그러면서 당장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왜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있는지 등등의 질문에 답을 주고 있다.
성서나 신화에 의하면 태초에 혼돈(Chaos)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성서의 여호와가 말한다. 그가 존재들의 이름을 부르면 그들은 있었다. 여호와는 순서를 정하고 나누어 놓았다. 낮과 밤, 땅과 바다와 하늘 그리고 하늘에 빛을 식물들과 동물들 그리고 마지막에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만들었다. 창조된 세상의 주인으로 누리고 지키는 자로 인간을 만들었다. 그는 지구의 한 구석에 에덴이라는 동산을 만들어 주고 그곳의 정원사로 일구고 돌보며 살게 하였다. (창2,15) 그리고 준비한 많은 과일 나무의 열매를 먹게 해 주었다. 하지만 하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심어 이미 에덴에서 인간 타락의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었다.
장삐에리(Domenico Zampieri) 1581-1641
아담과 이브를 야단치는 하느님
(Dieu réprimandant Adam et Eve )1623년 경. 95x75cm 동판 유화, 그르노블 박물관
나폴리 태생의 바로크 시대의 화가 장피에리가 그렸다 1693년 프랑스 왕 루이14세의 소장품으로 들어 왔다.
연극의 무대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주는 이 그림은 에덴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하늘은 손가락을 들어 금지된 열매를 서리해 먹은 우리의 첫 번째 조상들을 야단치는 형상으로 나타난다. 인생길 가면서 항상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인 "네가 어디 있느냐?" (창3,9)는 철학적 질문은 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첫 번째 질문이었다.
하늘이 둘 째 손가락으로 아담을 책망하는 하나님의 형상은 시스티나 성당의 미켈란젤로의 작품 천지창조에서 가져왔다. 이 부분 복사는 르네상스의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에 대한 찬미를 의미한다.
작품의 이야기 전개는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대각선을 그리며 내려 간다. 하늘에는 천사들과 날개 달린 머리만 표현된 천사들이 자리 잡고 있다. 하늘의 두 천사는 몸짓으로 대화하고 있다. 오늘의 염려가 가득한 한 천사가 다른 천사에게 이 원죄의 사건을 보여 준다. 그러나 두 번째 천사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미래에 다가올 좋은 날들이 올 것을 예고한다.
인간의 아들이 와서 구원을 보여 줄 것을 확신하는 소식이다. 하느님의 위치는 과거와 미래의 경계에 자리잡고 하늘과 땅의 경계에 놓였다. 오른 쪽 아래 공간은 양과 사자와 말 등 동물로 채워 넣는다. 세 마리 동물들은 동물의 세계를 보여 주는 상징들이다. 아담과 동물들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이 땅에서 살아간다. 사자 곁에 누워 있는 양은 이사야(11,6-8)가 이야기한 조화로운 약속의 말씀을 환기시킨다. 동물과 식물을 지배하며 에덴에 사는 인간의 모습이다. 뒤편 배경과 원경은 안개와 같은 기포속에 묻혀있다.
냇가와 숲에는 다양한 작은 동물들의 세밀화가 그려져 있다.
여호와가 동산을 산책하는 소리를 듣고 아담과 이브는 자기들이 벌거벗은 사실을 보고 깨닫고 부끄러움으로 숨었다. 금단의 열매를 따 먹고 눈이 밝아 져서 처음 느낀 인간의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그들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창3,7) 옷을 입는 행위는 정숙함의 시작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불순종을 책망할 때 아담은 자기를 도우라고 만들어 주신 여자가 열매를 주어 먹었다고 여인에게 책임을 돌린다.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은 별로 선택이 없었음을 고백한다. 당신께서 내가 외롭고 적적할 때 심심치 말라고 만들어 준 여성 때문에 그리되었으니 일부 하늘이 잘못한 부분도 있다는 항변이다. 그리고 두 손으로 자기의 여자를 가리킨다. 남편에게 고자질 당한 이브는 자기를 달콤한 말로 두 번이나 시험한 뱀 때문에 그랬다고 두 번 째 손가락으로 뱀을 가리키며 즉각 책임을 전가한다. 성서가 보여준 우리의 첫 번 째 조상들은 갖은 핑계를 대고 책임을 떠 넘기는 모습을 보여 준다.
카라치 형제의 제자인 장피에리는 거대한 구성을 가지는 자연에 관심이 많다. 카라치 형제들처럼 그림의 중요한 구성원 가운데 자연을 명료하게 표현한다. 나뭇잎이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그리고 서로 구별되어 그려진다. 강렬한 색채로 자연에 새롭게 다가가고 회화의 새로운 성취를 이루어 놓은 주목해야 할 예술가다. 색체 예술가로 완벽한 경지에 도달한 그림이다.
에덴의 평안과 조화는 여호와가 둘 째 손가락을 들고 아담과 이브를 힐난하면서 깨진다. 들어 올린 손가락은 두 죄인에 대한 신의 분노를 보여준다. 하늘의 벌로 인간은 불멸을 잃었다. 남자는 에덴에서 쫓겨나 노동의 수고와 땀으로 먹고 사는 법을 배웠다. 하늘이 에덴의 정원사를 내보내며 퇴직금으로 지급한 것은 부부를 위한 동물의 가죽옷이 전부였다. (창3,21) 그리고 여자는 아기를 출산하는 고통으로 인간들의 세대를 이어가게 되었다.
호기심 많은 이브 덕분에 우리 인류는 에덴에서 나와 넓은 세상 구경할 수 있게 되었고 세상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브는 사과 한 알로 인하여 에덴을 나왔지만 세상에 나온 인간은 온갖 재료로 요리를 해 먹는다. 하늘이 준 건강한 재료들만 먹어도 되지만 우리는 항상 사탄의 유혹에 귀를 열고 있다. 갖은 소스를 만들어 건강을 담보로 맛을 찾고 있다. 손짓에 대한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하지만 손가락질 한다는 것은 그리 아름다운 표현이 아니다. 두 명의 천사도 검지 손가락으로 한 명을 입을 가리고 한 명은 인간들의 실수한 모습을 가리키며 고자질하고 있다.
남자는 두 손바닥은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은 이브를 향하고 있다. 아담의 빈 손은 자신의 무소유를 주장하는 것이다. 여인도 하늘이 준 것이고 사과도 하늘이 준 여인이 준 것이고 지금의 상태는 자기는 아무 것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답답함을 하소연하고 있다. 억지로 만들어 준 부부가 잘 못된 일에는 연대책임을 지게 된 것은 이미 에덴에서 시작되었다.
하느님의 손가락도 아담의 창조에서 인간의 손가락과 교통하고 있었다. 이 그림에서는 단지 방향만 하늘을 향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나마 요즈음의 표현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시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어쩌면 고통스럽게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을 지도 모른다. 신의 형상에 나타난 손짓은 한 손은 인간을 비난하고 문책하고 벌하지만 다른 한 손은 인류가살아 가야 할 지구를 붙들고 인류를 보호하시고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메시아를 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뜻한다.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에서 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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